10464.jpg 고려시대의 석탑. 높이 3.92m. 간송미술관(澗松美術館) 소장.

 

원래 경북(慶北) 문경군(聞慶郡) 문경면(聞慶面) 관음리(觀音里)에 있었는데, 일제(日帝)때 다른 곳으로 옮겨 가려는 것을 고(故) 전형필씨(全鎣弼氏)가 이를 수습하여 현재의 위치에 세워 놓았다.

 

지대석(地臺石)은 2단인데 하단은 5매의 판석(板石), 상단은 4매의 판석으로 각각 구성하였다.

기단(基壇)은 2층이고, 하층기단 중석(中石) 하단에는 1단의 턱을 만들어 아마도 굄을 표시한 듯하며, 각 면에는 지선(地線)에서 안으로 솟아오르는 꽃모양을 장식한 안상(眼象) 3구씩을 탱주(撑柱 : 받침기둥) 없이 조각하였다.

하층기단 갑석(甲石)은 2매의 판석으로 덮었고, 경사진 상면에는 모퉁이를 향하여 가늘게 우동형(隅棟形)이 조각되었으며, 중앙에는 3단의 굄이 있으나 매우 낮다. 상층기단 중석은 각 면 1매씩 4매의 판석을 세워서 구성하고, 각 면에는 우주(隅柱 : 모서리기둥)와 탱주 1주씩을 모각(模刻)하였다.

상층기단 갑석은 1매의 판석이며, 밑에는 반원형의 낙수홈을 팠고, 상면 중앙에는 탑신(塔身) 굄이 있으나 신라석탑과는 양식상 차이가 있다. 탑신부는 옥신석(屋身石)과 옥개석(屋蓋石)이 각각 1석씩이다.

옥신의 각 층에는 우주형이 모각되었고, 초층 옥신석 남면에는 작고 얕은 형식적인 자물쇠모양을 새겨 문짝을 나타내려는 의도를 보이나 표시는 없어 약식이다. 옥개석 처마는 두꺼운 편이나 밑은 수평이고, 이면에 낙수홈이 있으며, 받침은 4층까지 5단이고 5층은 4단이다.

그러나 5층 옥개석은 4층까지의 옥개석에 비하여 처마가 얇고 밑이 반전(反轉)되는 등 양식상 큰 차이가 있다. 따라서, 5층 옥개석은 다른 탑의 옥개석을 썼음이 분명하다.

상륜부(相輪部)는 노반(露盤 : 탑의 최상부 옥개석 위에 놓아 복발·앙화·상륜 등을 받치는 장식)과 복발(覆鉢 : 탑의 노반 위에 놓은, 엎은 주발 모양의 장식)만 남았고 그 이상은 남아 있지 않다.

이 탑은 경상북도 문경에서 옮겼다고 하나 정확한 원위치와 옮긴 연월일, 또 그 경위 등은 전혀 알 수 없다. 그러나 상하의 비례가 매우 아름답고 작풍(作風)이 착실하며, 하층기단 중석에 있는 안상의 수법은 고려시대 전반기의 특징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