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69.jpg 경상북도 경주시 현곡면 남사리에 있는 신라시대의 석탑. 높이 4.07m.

 

남사리의 깊숙한 골짜기에 위치한 신라 일반형 석탑으로 절 이름은 알 수 없다.

석탑은 1975년도에 보수·복원되었는데, 이때 상층기단 북쪽의 중석(中石)만 새로 보충되었을 뿐 나머지는 노반(露盤 : 탑의 최상부 옥개석 위에 놓아 복발·앙화·상륜 등을 받치는 장식)까지 완존한 상태이다. 기단의 폭은 230㎝로서 아담한 탑이다.

사역의 규모나 금당의 위치도 확인할 수 없으나, 가람의 형태는 산지(山地)의 협곡을 이용하였다. 석탑의 구조는 먼저 하층기단의 저석(底石)·중석(中石)·갑석(甲石)이 모두 붙어서 4매석으로 구성되었으며, 우주(隅柱) 2주와 탱주(撑柱) 1주가 모각(模刻)되었다.

기단부(基壇部)의 굄도 이 시대의 일반적 형태였던 호형(弧形)과 각형(角形)의 2단형식을 취하였다. 상층기단은 4매의 중석으로 짜여졌으며, 각 면에 1주의 탱주와 두 우주를 모각하였고, 2매석으로 구성된 갑석은 부연(副椽 : 탑 기단의 갑석 하부에 두른 쇠시리)을 지녔다. 탑신굄 또한 하층기단과 동일한 형식이다.

탑신부(塔身部)는 3층까지 모두 1석의 탑신과 옥개(屋蓋)로 이룩되었으며, 탑신 역시 일반석탑과 마찬가지로 두 우주를 모각하였다. 옥개석의 층급받침은 4단이며 상부의 탑신굄은 모두 각형의 2단형식이다. 옥개석의 반전(反轉)은 심한 편으로서 말기적인 석탑형식을 반영하고 있다.

상륜부(相輪部)는 노반만 남아 있을 뿐 나머지는 모두 없어져 그 형태를 알 수 없다. 기단부에 비하여 탑신부의 형식이 다소 가냘픈 느낌을 면하지 못하나 각 부의 양식적 수법은 9세기 말기의 석탑으로 추정된다.

국도 경주에서 그리 멀지 않은 산골짜기에 위치한 이 석탑은 당시 일기 시작한 귀족들의 기복을 위하여 건립된 원찰(願刹)의 성격으로 이해되나, 아직 현장 유적에 대한 해명은 미진한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