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70.jpg 경상북도 경주시 건천읍 용명리에 있는 신라시대의 석탑. 높이 5.6m.

 

사지 주변은 마을의 가옥이 산재하여 사역의 규모를 확인할 수 없다. 동리의 옛이름이 명장리(明莊里)였으므로, 과거에는 탑명을 명장리삼층석탑이라 하였던 점으로 미루어볼 때 용명사라는 명칭 역시 확실하지 않다.

따라서, 이 사지를 명장사(明莊寺) 터라 하는 이도 있으나 이것 역시 확실하지 않다. 석탑의 형태는 2층기단 위에 3층의 탑신부를 형성한 일반형 석탑으로 기단부에 약간의 손상이 있을 뿐 거의 완전한 편이다. 하층기단의 너비는 일변 349㎝의 방형기단을 형성하였다.

기단부는 여러 장의 돌로써 축조되었으며, 상하 기단 모두 2개의 탱주(撑柱 : 받침기둥)와 우주(隅柱 : 모서리기둥)를 모각(模刻)하였다. 하층기단 갑석의 굄은 호형(弧形)과 각형(角形)의 2단이며, 상층기단의 탑신굄은 각형 2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탑신부의 옥개석(屋蓋石)과 탑신은 모두 독립된 1석이며, 옥개석의 층급받침은 5단을 형성하여 신라 전성기의 양식을 그대로 반영하였으나 연대는 더욱 내려오고 있다. 옥개석의 상부 탑신굄은 각형 2단이며 낙수면의 곡선이 강하다.

상륜부(相輪部)는 일반 석탑과 마찬가지로 노반(露盤 : 탑의 최상부 옥개석 위에 놓아 복발·앙화·상륜 등을 받치는 장식) 이상이 없어졌다. 석탑은 1943년 해체 수리되었으며, 당시 탑신부에서 불경이 발견되었다고는 하나 현재 그 소장처는 자세하지 않다.

불경은 신라 또는 고려시대의 사경(寫經)으로 짐작되며, 이로 미루어 보아 석탑 내부에는 사리장엄이 이룩된 것으로 짐작되나, 장엄구(莊嚴具)의 행방에 대해서도 자세하지 않다.

석탑은 그 현상으로 보아 현존 위치가 원위치로 추정되고 있으며, 석재의 결구수법이나 양식에 있어서도 통일신라시대의 견실한 석탑이다. 통일기에 성행한 원당(願堂)과 같은 성격의 사찰에 건립된 석탑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