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701_0059.jpg 충청남도 공주시 반죽동 대통사지(大通寺址)에 있었던 백제시대의 석조. 높이 0.75m, 지름 1.88m. 국립공주박물관 소장.

이 석조는 원래 대통사지(大通寺址)의 금당지(金堂址)와 강당지(講堂址) 사이에 있었던 백제의 유물이다.

석조대좌(石造臺座) 위에 원주형(圓柱形)으로 된 받침기둥을 세웠고, 그 위에 놓여진 둥글고 큰 이 석조는 한 개의 화강암(花崗岩) 내부를 파내어 만든 것이다.

대석은 정교하게 치석하였는데 한 변의 길이가 0.86m인 방형의 지대석 위에 원형의 탱석을 세웠다. 탱석은 높이 0.35m, 지름 0.71m의 원주형으로서 외면 상부에 약간의 평면간지를 남기고 나머지 전면에는 전형적인 백제수법에다 12판의 입상형(立狀形)으로 복련문(覆蓮文)을 양각하였는데, 특히 그 연판의 조각이 풍려하며 끝을 반전시키고 있음은 공주지방출토의 여러 백제 연화문와당과도 같은 양식과 기법을 보이고 있다.

이 위에 놓인 원형석조는 하나의 돌로 조성되어 내부를 파낸 것인데, 안지름 1.55m, 깊이 0.56m, 주연 두께가 0.165m로서 전체의 형태는 넓적한 대접을 크게 확대한 것 같은 인상을 준다. 내부 주위 벽에는 아무런 조식이 없고 밑바닥 면도 평평하게 치석하였다.

바깥면에는 상변에 굽처럼 넓적한 테를 양각하였다. 그리고 표면 중앙에는 2조의 선대(線帶)를 굵게 조각하여 돌리고 그 선문상에 같은 간격으로 네 군데에 연화문원좌(蓮花文圓座)를 배치하였는데, 이 연화원좌는 중심에 소문(素文)의 원좌를 양각하고 그 주변에 단엽 8판의 복련을 조각한 것이다.

통일신라시대의 장방형 석조와는 달리 연화문을 장식한 탱석 위에 놓인 이 석조는 외면에도 풍만한 연판과 단아한 선조문(線條文)을 돌려 귀족적인 아취를 풍기고 있다. 현재 풍화에 의하여 조식문양이 다소 희미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