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李) 참판댁(參判宅)으로 불리는 이 가옥은 전형적인 조선(朝鮮) 후기(後期)의 이 지방 상류주택(上流住宅)으로, 지금은 사랑채와 행랑채만이 남아 있으나 원래는 안채와 사당(祠堂) 등이 모두 갖추어져 있었다. 행랑채는 일자형(一字形)이며 중앙에 솟을대문을 내었는데 문 위의 인방(引榜) 부분에 투각(透刻)된 문양장식이 눈길을 끈다. 사랑채는 정면 7칸, 측면 2칸으로 일자형이며, 고종(高宗) 8년(1871)에 건립되었다는 상량문(上樑文)이 남아 있다. 평면은 방이 앞 뒤 두 줄로 병립된 형태로 가운데 대청을 중심으로 양쪽에 온돌방을 두었다. 구조는 2고주5량(二高柱五樑)으로 자연석 주초(柱礎) 위에 네모기둥을 올린 민도리집이다. 대청과 방 사이의 불발기문이 특히 섬세하게 가공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