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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창간 45주년 특집_남한땅 7정맥 ①호남정맥 | 호남정맥 구간종주 르포] 연지곤지 찍은 새색시 같은 호남의 산줄기여!

문성식 2015. 5. 28. 16:37
[山창간 45주년 특집_남한땅 7정맥 ①호남정맥 | 호남정맥 구간종주 르포] 연지곤지 찍은 새색시 같은 호남의 산줄기여!
한치~일림산(삼비산)~사자산~제암산~감나무재 19km

	사자산 정상 근처에서 본 장흥 일대.
▲ 사자산 정상 근처에서 본 장흥 일대. 오른편으로 덩치 큰 천관산을 낮은 산줄기들이 에워싼 모습이 보인다.

작열하는 태양은 무자비했다. 가혹한 오르막에선 도망칠 곳이 없었다. 복날의 몽둥이질처럼 가혹한 햇살에 숨이 탁탁 막혔다. 산을 잘못 택했다는 후회가 밀려오던 찰나, 스핑크스가 나타났다.


사자산 정상에는 사자가 있었다. 정상에서 장흥을 향해 뻗은 지능선이 한 마리의 사자였다. 그래서 능선 끝에 솟은 암봉의 이름도 ‘사자두봉’이다. 그제야 등산지도에 사자산 곁에 ‘미봉’이라 표시한 까닭이 이해되었다. 정상은 사자의 꼬리(尾)인 셈이다. 사방으로 펼쳐지는 말로 설명하기 힘든 풍경은 아름다울 ‘미(美)’자를 써도 모자람 없다. 사자의 포효를 뒤로하고 다음 산으로 간다.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막강한 땡볕 아래 비박 짐을 메고 걷는 데는 사연이 있다. 


정맥꾼들이 발굴한 명산


호남정맥을 대표할 만한 산줄기를 찾아 취재하기로 했다. 후보로 꼽힌 산은 호남의 상징성을 띠는 광주 무등산, 장안산과 함께 호남정맥 최고봉으로 꼽히는 광양 백운산(1,228m), 호남정맥 최고의 스타인 내장산이다. 그 이름만으로도 호남의 대표성을 가진 산들이다. 좀 더 호남정맥과 맞아떨어지는 특별한 구간을 뽑고 싶었다. 그 결과가 일림산~사자산~제암산 구간이다.


앞의 산들은 호남정맥이 산꾼들에게 알려지기 전부터 유명했던 명산이었다. 반면 일림산~제암산 구간은 무명 산이었다가 호남정맥을 종주하는 산꾼들에게 “이렇게 멋진 산이 있다니” 하고 발견되며 유명해졌다. 호남정맥이 발굴한 산인 것이다. 게다가 호남정맥은 1,000m대 고산이 주를 이루는 산줄기가 아니다. 비교적 낮은 산줄기가 구불구불 이어지며 사람과 어울려 사는 이미지가 더 강했다. 호남정맥과 딱 맞아떨어지는 산줄기가 이곳이다.



	들머리인 한치주차장의 등산안내판.
▲ 들머리인 한치주차장의 등산안내판.

	신록이 우거진 호남정맥의 능선길.
▲ 신록이 우거진 호남정맥의 능선길.

산행 코스 잡기가 쉽지 않았다. 한치에서 시작해 여러 산을 넘어 시목치로 가면, 도로에서 시작해 도로에서 산행이 끝나므로 가장 자연스런 코스지만, 19km로 거리가 멀었다. 결국 정면 승부해 1박2일간 비박종주하기로 했다.


즐거운 고행을 함께할 이는 김시우 치악산구조대 고문과 안명선 대산련 대외협력위원이다. 특히 김시우 고문은 최근 영원프라자 원주점을 인수해 바쁜 상황에도 ‘의리’를 지켜 포터 역할을 자처하며 동행했다.


한치주차장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야산처럼 초라한 산길이다. 정맥에선 대간과 달리 낮고 허름한 산줄기가 많다. 심지어 건물이 들어서는 등 인위적인 시설로 능선을 찾기가 곤란한 구간도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산자분수령을 두 발로 확인하는 과정이다. 이 낮고 허름한 산줄기가 한강이나 섬진강을 만든 생명의 산줄기라는 놀라움을 목도하는 과정이다.


아미봉은 표지석 같은 것이 없다. 경치도 없어 지도를 눈여겨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다. 일림산이 다가올수록 그늘이 벗겨진다. 드문드문 볕을 막아 주던 야윈 나무들이 줄어든다.



	626.8m봉에서 일림산으로 이어진 경치 좋은 능선길.
▲ 626.8m봉에서 일림산으로 이어진 경치 좋은 능선길.

	제암산과 일림산
▲ 1 임금의 봉우리인 제암산 바위 주변을 철쭉이 화사하게 수놓았다. 2 일림산으로 이어진 바윗길 뒤로 시원한 보성만이 펼쳐진다.

부잣집 정원에 온 듯 산이 확 바뀌었다. 조경을 한 것 같은 철쭉평원과 잔디밭이 눈을 즐겁게 한다. 데크 전망대에 서자 보성 앞바다가 드러난다. 바다와 철쭉이 어우러진 풍경은 국내에서도 흔치 않다. 인기를 보여 주듯  많은 등산객이 다녀 등산로가 반질반질하다. 완만한 편이지만 봉우리인건 분명한데 정상 표지석 같은 것이 전혀 없다. 이정표에 ‘현위치 626고지’라고 적혀 있는 게 전부다.


여기서 1.5km를 더 가면 667.5m봉이 있는데 이 두 봉우리를 두고 장흥과 보성에서 ‘산이름 논란’이 있었다. 보성은 ‘일림산’, 장흥은 ‘삼비산’이 맞다고 주장했다. 결국 전남 지명심의위원회를 거쳐 국토지리정보원 중앙지명위원회까지 논란이 계속되었다.


2005년 중앙지명위원회는 ‘대동지지 등 주요 문헌과 고증에서 일관되게 일림산으로 표기해 왔고, 장흥군이 주장하는 삼비산이란 명칭은 최근 <장흥읍지> 등에서 나타났을 뿐’이라며 일림산으로 확정 고시했다. 현재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 667.5m봉을 일림산이라 표기하고 있다. 현지에도 산림청에서 세운 일림산 안내판과 보성군에서 세운 일림산 표지석만 있다.


시야가 툭 터지는 철쭉평원의 연속이다. 막바지 철쭉이라 드문드문 핑크빛이 남아 있지만 산의 타고난 미모는 지울 수 없다. 능선의 부드러운 굴곡이 여성스럽게 이어진다. 거대한 왕릉처럼 솟은 봉우리가 일림산 정상이다. 산을 철쭉이 감싸고 있다. 눈부신 핑크빛 왕릉이다.



	스핑크스처럼 앉은 한 마리 사자를 닮은 사자산.
▲ 스핑크스처럼 앉은 한 마리 사자를 닮은 사자산. 왼쪽 끝 봉우리가 사자두봉이며 오른쪽 사자산 정상이 꼬리인 미봉이다.

	일림산
▲ 1 분홍색으로 예쁘게 화장을 한 일림산을 걷는 일행들의 표정이 밝다. 2 많은 등산객이 다닌 탓에 산길이 뚜렷하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정상에 올라서자 땀 값하는 경치가 펼쳐진다. 바다를 향해 흘러내린 지능선, 풋풋한 시골처녀 같은 연분홍 철쭉, 이것들이 신록과 어우러져 눈부시다. 파노라마로 살피며 풍경을 야금야금 맛본다. 분홍 솜사탕처럼 달콤한 쾌락이 몸속으로 번진다.


오늘의 비박지는 골치 아래 임도다. 골치산에는 큰봉우리라 적힌 이정표가 있다. 뒤돌아보니 일림산이 펑퍼짐한 산세로 베풂의 덕을 보여 준다. 작은봉이라 적힌 곳에 닿자 볏짚으로 지붕을 만든 이국적인 정자가 쉬었다 가라 한다. 흔히 볼 수 없는 형태라 이곳 사람들의 개성과 해학이 느껴진다.


골치에서 능선을 버리고 180m 보성 쪽으로 내려서자 임도다. 계곡에서 물을 떠온다. 계곡에 풍덩 뛰어들어 땀에 범벅된 뜨거운 몸을 식히고 싶지만, 수통에 물을 담을 정도의 수량이다. 비박이 처음인 김종연 사진기자와 베테랑인 김시우, 안명선씨가 두런두런 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밤이 깊어간다.


아침 햇살이 레이저처럼 강하게 쏘아붙이며 한낮의 더위를 예고한다. 다들 컨디션이 좋지 않다. 일교차가 커 감기에 걸린 이도 있고 몸이 아파 잠을 못 잔 이도 있다. 하산을 권해도 걸으면 낫는다며 배낭을 둘러멘다. 다시 골치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현지 이정표에는 이곳을 ‘골치재’라고 표기했다. ‘치’와 ‘재’, ‘령’은 모두 고개를 뜻하는 것이라 골치재, 한치재라고 표기하는 것은 동어반복이다.



	사자산 데크 전망대에서 본 보성 일대.
▲ 사자산 데크 전망대에서 본 보성 일대. 옹골찬 바위와 푸른 저수지가 잘 어울린다.

압도적인 제왕의 전망대


5월이 맞는 걸까? 8월이라 해도 믿을 법한 압도적인 태양이 내리쬔다. 사자에게 가는 길이 쉬울 리 없다. 왁자지껄 시끄러운 등산객 무리를 얼른 지나쳐 사자산에 오른다. 묘한 산세의 사자꼬리를 지나 다음 산으로 향한다. 철쭉이 떨어진 철쭉 군락지가 이어진다. 간재를 지나자 아이들 소리로 가득하다. 장흥의 초등학교에서 체험학습을 왔다는 아이들이 곳곳에서 김밥을 먹는다. 일림산 철쭉의 화려함을 맛 본 탓에 곰재산 철쭉은 작은 화원처럼 느껴진다.


하산할 것 마냥 능선의 고도가 뚝 떨어진다. 대형배낭을 메고 어떻게 끌어올린 고도인데, 뚝뚝 떨어질 때마다 한숨도 늘어간다. 힘들지만 이것이 산줄기 종주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곰재에서 제암산자연휴양림으로 하산하고픈 유혹을 버리고 오르막에 접어든다. 이번 산행의 최고봉인 제암산(778.5m)은 순순히 정상을 내줄 생각이 없다. 그늘 한 점 없는 가파른 오르막에 잔잔한 돌까지 깔려 있어 고행길이다. 한 발 한 발 올리는 것이 낯설다. 도망칠 곳은 없으므로 죽자고 달려드는 막연한 오르막에 심장 박동을 맞춘다. 능선의 흐름에 몸을 맡기자, 몸의 고통이 사라진다. 


제암산 정상은 멀리서도 눈에 띄는 험준한 바위, 마치 돌을 쌓아 만든 네모난 석성 같다. 험상궂은 바위성을 둘러싼 건 여린 철쭉이다. 다가가 보면 곧 꽃잎이 떨어질듯 흐물흐물하다. 아직 봄날은 가지 않았다고 무자비한 뙤약볕에 아름다운 시위를 벌이고 있다.


제암산 정상의 바위는 임금 제(帝) 자 모양의 3층 형태를 한 높이 30m 정도 되는 바위다. 바위를 향해 주변의 여러 바위와 봉우리들이 임금에게 공손히 절을 하는 모양새라 그렇게 불린다.



	곰재산에서 제암산으로 이어진 철쭉동산.
▲ 곰재산에서 제암산으로 이어진 철쭉동산.

정상이 눈앞인데 ‘암벽등반금지’라는 문구가 막는다. 정상이 몇 m 남지 않았는데 고정로프나 계단 같은 시설이 전혀 없는 순수 암릉구간이다. 그렇다고 정상을 아래에서 보고만 갈 순 없다. 배낭을 풀어놓고 바위에 붙는다. 워킹구간의 바위치곤 위태로운 코스지만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으나, 툭 튀어나온 바위를 가슴에 안고 지나는 곳에서 긴장감이 돈다. 올라온 보람이 있어 정상은 칼로 사선으로 베어낸 듯 넓은 너럭바위다.주변 산군을 압도하는 제왕격의 산임을 눈으로 확인한다. 달콤한 분홍 산줄기를 눈으로 싹싹 쓸어 모아 가슴에 담는다. 마치 허공에 떠있는 성처럼 압도적인 전망대다.


잔치는 끝났다. 잔칫상을 치우고 마무리하는 일만 남았다. 일반 등산객들은 모두 편한 길로 하산했지만 우리는 남은 능선을 간다. 정맥 종주는 먹고 싶은 것만 먹을 수 없다.취향과 상관없이 모든 산줄기를 꾸역꾸역 삼켜야 한다. 시루봉을 넘어서 작은산으로 향한다. 능선의 오르내림은 점점 가혹하다. 한 줌의 그늘도 허락지 않아 얼굴과 목이 따갑다. 능선 양옆으로 보성과 장흥의 차분한 풍경이 계속 말을 걸지만, 얼른 하산해 그늘에서 차가운 맥주 한 모금 마시고픈 마음 간절하다.


작은산을 넘어 시목치(감나무재)로 돌격한다. 내려서는 능선은 길찾기가 까다롭지만 정맥길이 유일한 등산로라 쉽게 내려선다. 모성애의 일림산, 포효하는 사자산, 압도적인 제암산을 철쭉에 버무려 모두 삼킨 탓에 속이 든든하다.



	일림산(삼비산)~사자산~제암산 개념도
▲ 일림산(삼비산)~사자산~제암산 개념도

산행길잡이


오르내림 많은 땡볕 산행


호남정맥 한치에서 시목치 구간은 19.4km로 당일산행으로는 긴 편이다. 오르내림이 많고 땡볕에 노출되는 곳이 많아 이틀에 나눠 산행하는 것이 좋다. 비박이나 야영을 한다면 골치에서 물이 가깝다. 골치에서 임도로 내려가 임도에서 오른쪽을 바라보면 ‘용추골주차장 1.3km’ 이정표가 있다. 이정표를 따라 몇 발짝 가면 졸졸 흐르는 작은 개울이 있다.


등산로가 선명하고 이정표가 많아 길찾기는 쉽다. 다만 664m봉을 현지 표지석과 이정표는 대부분 일림산이라 표기하는데, 사자산에서 제암산 인근의 이정표에서는 ‘삼비산’이라 표기했다. 햇볕에 노출된 곳이 대부분이므로 모자나 선크림 등을 준비하고 물을 충분히 준비해야 한다.


시목치는 현지에서 한글로 풀어 감나무재로 불린다. 감나무재 직전 갈림길에서 주차장 이정표를 따르면 1.2km를 가서 레미콘공장(대성아스콘)이 나온다. 갈림길에서 능선 따라 직진해 감나무재로 가거나 주차장 이정표 반대편 하산길로 내려가길 권한다.  


교통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보성행 버스가 주말 기준 1일 2회(08:10, 15:10) 운행한다. 평일은 1회(15:10)만 운행한다. 5시간 걸리며 요금은 3만2,900원.
광주종합버스터미널(062-360-8114)에서는 1일(06:30~21:40) 30분 간격으로 보성행 버스가 운행한다. 1시간 30분 걸리며 요금은 8,400원.
보성터미널에서 한치행 버스는 1일 3회(06:00, 12:10, 15:40) 운행하는 군내버스를 이용한다. 산행이 끝나는 감나무재에서는 도로 따라 동쪽으로 1km 가면 장동초교 앞에 버스정류소가 있다. 장흥버스터미널행 버스는 아침 6시와 7시에만 운행하므로 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더 낫다. 택시를 타고 한치재 주차장으로 돌아갈 경우 요금이 1만3,000원 정도 나온다. 문의 장동택시 061-862-0044, 862-1300.


숙식(지역번호 061) 제암산자연휴양림(852-4434)이 들머리와 날머리에서 가장 가깝다. 사전 예약을 통해 이용 가능하다. 장흥읍이나 보성읍 일원의 숙박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용추폭포 등산로 초입의 용추폭포가든(852-1114)은 3~4인 가족이 사용할 수 있는 콘도식 객실 2개와 민박용 방 5개를 갖췄다.  날머리인 감나무재에서 도로 따라 남쪽으로 600m 가면 감나무재식당(862-2827)이 있다. 날머리에서 가장 가까운 식당이다. 보성읍내의 식당으로 터미널 근처의 온수정(852-7339)이 유명하다. 백반(7,000원)이 가격 대비 반찬이 푸짐하며 삼겹살, 오리로스, 닭볶음탕 등의 메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