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화 수묵으로 감상하는 국화
산수화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사군자 그림이다.
그것은 산수화를 그리는 화가들이 사군자를 그리며
그것은 산수화와 사군자가 不可分의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산수화와 마찬가지로
왜 이 네 가지의 식물을 불변의 소재(不變의 素材)로 하여
그려야 되었는가에 대한 理由가 설명되지 못하였다.
문인(文人)들의 곧은 節介나 어떤 性稟을 나타내는 것으로 說明되었다.
그러나 산수화에 대한 藝術意慾이 막연했던 것처럼
이 사군자 그림에 대한 것도 막연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사군자란 무엇인가?
동양사람들은 식물 중 人間이 가장 존경하는 것을 골라서 사군자라고 하였다.
사군자(四君子)란 매(梅), 란(蘭),국(菊), 죽(竹)을 말하는 것인데
眞善美貞에 비유하여
美미는 ( 蘭)난草을 대표하고 (善)선은 梅花를 대표하고
(眞)진은 菊花(국화)를 대표하고 (貞)정은(竹)대나무를 대표한다.
그리고 그 성격 역시 霜雪에 피어나 매화와 같은 계통이다.
습화상(習畵上)의 순서는 난,죽,국,매로 되어있다.
즉, 난의 용필법(用筆法)이 가장 단순,간략하고 다음이 죽,
다음이 국, 매의 순서로 나간다.
이 화초들은 범상한 화초와 달라서 그 자태와 향기의 맑기와 곧기가
마치 군자(君子)의 인품(人品)과 지조(志操)를 상징한다고 하여
사군자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이 네개의 군자가 무엇을 뜻하는 말인가를 정확히 집어보면,
君은 尹과 口를 합친 會意文子로서
尹은 사물의 주동적 상태(主動的 狀態)를 말하는 것이며,
口는 氣가 出入하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결국
군자는 주동력을 마음대로 驅使할 수 있는실력을 갖춘 자리를 뜻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태가 결국 음양신,즉, 해,달의 技能을 조화시킬 수있는
제 3의 자리를 의미 한다고 말을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군자란 해,달의 子인 星을 가리키는 것이된다. 木,火,金,水星이다.
土星은 兩性으로서 사방신의 의 補佐를 받는 존재이며
사방신을 대표하는 존재로 토성까지 넣으면 五君子가 된다.
사군자를 네 方位에 배치한다면
네 방위로 보면 대나무가 북쪽. 매화가 동쪽, 난초가 남쪽, 국화가 서쪽.
북쪽이 12월, 동쪽이 3월, 남쪽이 6월, 서쪽이 9월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사실상 이 네 개의 식물은 바로 그러한 계절에 맞는 것이다.
이를 테면 대나무는 1,2월에, 매화는 2,3월에,
난초는 5,6월에, 국화는 9.10월에 각각 피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매화는 봄을,난초는 여름을 ,국화는 가을을,
대나무는 겨울을 상징하는 식물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매화가 봄의 神인 木星, 난초가 여름의 神인 火星,
국화가 가을의 神인 金星,그리고 대나무가 겨울의 神인 水星을
표상(表象)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체적으로 이러한 사군자 그림이 神政的인 世界觀을 主題로 하는
예술의욕(藝術意慾)에 의해서 그려졌다는 사실이며
따라서 이 네 개의 植物像은 반드시
하나의 독립적인 정치적인 의미를 지녔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사군자가 성행하게 된 것은 이조(李朝)중기 이후인데 ,
이는 이조사회가 숭문천기(崇文賤技)사상을 진작시킨
유교(儒敎)적 바탕 위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간결하고 담백한 것을 좋아한 이조사회의 문인사대부들은
그들의 문방(文房)을 직접 이런 담백한 조형미로서 꾸몄다.
이조 문방가구들은 한결같이 그 디자인이나 구조가 간결하고 장식이 적으며
담백한 조형미가 넘치고 있는데
이와같은 모든 것이 사군자의 특성과 유관(有關)한 것으로 보인다.
사군자의 기원은 다음에...
오늘은 깊어만 가는 가을에 어울리는 대표적인 꽃-화초로서 국화를 올려드립니다.
菊-
예부터 梅,蘭,竹을 그려온 문인 묵객은 많았으나
菊만을 유독 그려온 이는 많지 않다.
怪石이나 花卉그림에 곁들인 것으로서 淸朝에 와서 문인화가들 중에
특히 화훼류를 전문적으로 다룬 이가 많은데 이 중 菊을 많이 그린 이가 있다.
이조시대의 문인 묵객들 가운데서도 菊만을 전문적으로 다루었다기보다는
화훼화를 그릴 때 특히 菊을 곁드려 그리게 된 경우가 많다.
국화는 식물 중에서 가장 진화한 것으로
동양에서는 일찍부터 관상용(觀賞用)으로 취급되어오던 꽃이다.
陶淵明의 詩에
採菊東籬下(채국동리하)悠然見南山(유연견남산)이란 구절이 있다.
동편 울타리 밑에서 국화를 따다가 우두커니 남산을 바라본다는 이 정취는
동양이 아니면 도저히 우러나올 수 없는 것이다.
동편 울밑에 심는다는 것은
국화의 본성이 西方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山林經濟養花篇에 기록되어 있다.
菊花의 별명이 東籬佳色(동리가색)이라한 것도 이러한 연유에서 붙여진 것이다.
국화는 원래가 가을에 피어나는 꽃으로
예부터 백화가 시들고 서리가 나는 철에 홀로 핀다 하여
만향(晩香)이니 오상화(傲霜花)니 선선상중국(鮮鮮霜中菊) 등으로 상탄되어 왔으며,
인간이 가장 좋아하는 4 가지 식물 중에서
국화가 들어 있는 것은 그의 높은 절개 때문이다.
춘하春夏의 좋은 계절을 다 보내고
홀로 늦가을 상설 속에 절개를 지키며 피어 있는
지조가 인간의 마음에 들어 지조 높은 은일(隱逸)선비들이 즐겨 그렸다.
그러나 사군자 중에서도 국화는 독특하다.
왜냐하면 난,죽은 墨에 妙味(묘미)가 있는데 비해
菊은 기품(氣品)에 묘미가 있기 때문이다.
꽃이 가진 천연적 품성에 따라 많은 이명(異名)을 갖고 있다.
제여화(帝女花),중양화(重陽花), 절화(節花),금화(金花) 등이 그러한 이름이다.
菊은 그 종류도 엄청나게 많으며 꽃에도 대형,중형,소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국화는 가을에 피는 것이 정상인데 하국(夏菊)이라 해서 여름에 피는 것과
한국(寒菊)이라해서 초겨울에 피는 것도 있다.
국화의 기원은 모호하나 회화로서의 발전은
아마도 그 근원을 唐代로 보아야 옳을 것이다.
원래 국화는 중국이 그 산지라서 당대(唐代)에 우리나라에 이식되었다고는 하나
한편 신라菊과 고려菊이 중국 땅에 건너갔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본다면
벌써 이 땅에서의 국화의 역사는 오래 된 것같다.
백제시대에는 국을 일본에 전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오늘날 일본에서의 국화의 성행은 그 기원이 실로 백제(百濟)로 부터라고 할 수있다.
색은 황,백 ,홍,자,흑 등이 있으나
국의 본색은 황(黃)이며 황국(黃菊)을 으뜸으로 치며
그 중 가장 많은 것이 황국이다.
그러므로 <국화가 누렇게 피면 게도 살찐다>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자연의 감상(鑑賞)을 시각과 미각에 결부시킨 것이다.
국을 두고 일명 황화라고 부르는 소이다.
보통 추국이 되는 시절을 계절 중 가장 호계절(好季節)로 여겼으며
문인묵객들은 화엽(花葉)을 前茶(전다)로 하여 마시는 취미도 있었는데
화엽차를 많이 마시면 장수한다는 비결이 있어 한가한 뜰에 재배하고
애완(愛玩) 또는 감삼용(鑑賞用)으로 즐겨왔다.
일찌기 한(漢나라에서는 重九日(9월9일)에 국화주를 먹는 풍습이 있었으며
진(晋)의 시인 도연명(陶淵明)은 상국애주(賞菊愛酒家)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외에도 국화와 술은 많은 문인, 학자,묵객들과 깊은 인연을 갖고 내려와
최근 항간에서도 국화주(菊花酒)라는 말이 생기게 된 것같다.
또 고래(古來)로 부터 문인(文人)과 묵객(墨客)들은
꽃이 피기 전에 달에게 술을 물어보라고 하였고(花前把酒月)
국화를 대하면 술 생각이 떠 오른다(賞菊愛酒)라고 읖었다.
그리는 법은 후에 미술 강좌에서.
국화의 종류는 대단히 많다. 야생국(野生菊)과 정원국(庭園菊)이 다르며
근래에는 배접술이 발달하여 많은 종류의 국화가 출현하였다.
국화는 春季에 땅에서 솟아 늦가을 즉 重陽節 즈음에 꽃이 피어나는 植物이다.
하국(夏菊)도 있기는 하지만 추국과 같은 氣韻이 없다.
또 한국(寒菊)도 있기는 하지만 추국의 만개종(晩開種)이다.
채색화(비단) -겸재 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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