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목 | 중요민속자료 제140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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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충북 영동군 영동읍 계산리 417 |
소재지 | 영동읍 |
지정일 | 1984.01.10 |
수량 | 일곽 |
시대 | 조선시대 |
소유자 | 송재휘 |
관리자 | 박두근 |
자료출처 및 참조 | 문화재청 |
충북 영동군 영동읍永同邑 계산리에 있는 조선시대 후기의 주택
이 집은 ㄱ자형의 안채와 광채가 널찍이 둘러앉아 전체적으로 튼ㅁ자 모양을 이루지만 이것은 안살림에 해당하는 부분이고 바깥살림에 해당하는 외부공간은 변형이 많이 진행되어서 그 전체적으로 원형을 알기는 힘들다. 건축년대는 망와의 기록에 따르면 을유삼월(乙酉三月)(1885년)과 병술삼월(丙戌三月)(1886년) 두 종류가 보이므로 19세기 말 건물로 생각된다.
안채의 평면구성은 남도방식에 따라 안채머리에 사랑공간을 덧붙인 것으로 보인다. 서쪽 아래로부터 부엌, 안방, 웃방, 2간대청, 건넌방을 일직선으로 놓고 남쪽으로 꺾어져서 작은방, 대청, 아래·윗사랑방으로 구성되었다. 부엌은 전후퇴를 터서 쓰며 상부에는 다락을 시설했다. 측벽은 처마 밑을 이용하여 내밀어 쌓고 복판에 살강을 만들었다. 안방과 웃방은 4짝미서기로 구분하며 뒷퇴에는 각각 골방을 만들어 두었다. 웃방과 대청 사이는 분합문(分閤門)으로 개방할 수 있도록 계획되었고 대청(大廳)의 앞쪽도 고주 사이에 분합문을 달았다. 앞퇴에는 안방에서 대청까지, 건넌방과 작은방에는 좌우퇴 모두에 툇마루를 깔았으며 뒤쪽에는 안방에서 건넌방까지 쪽마루를 놓았다. 건넌방 옆의 모퇴에는 역시 토광(장방(藏房))을 시설한 바 중부지역에서 자주보는 수법이다. 사랑방 역시 우퇴는 툇마루이고 안쪽에는 쪽마루를 깔았는데 툇마루가 사랑대청에서 연결되지 않고 출입문을 지나 구분되게끔 계획했다. 사랑대청의 안(좌)퇴는 토방으로 해서 굴묵공간으로 이용한다.
구조는 가로 세로 모두 2고주5량(대청 중앙만 1고주5량)으로서 납도리집이다. 도리 아래에는 장혀를 받쳤는데 종도리만은 장혀 밑에 헛창방을 보내고 사이에 소로를 끼웠다. 이것은 19세기 말에야 일반 살림집에서 쓰기 시작했던 기법이다. 회첨 처리는 회첨추녀 없이 서까래를 겹쳐 얹는 고식기법을 쓰며 기둥 높이과 마루 높이는 비교적 낮게 만들었다. 초석은 높은 화강암 네모주초에 네모기둥을 세웠으며 댓돌도 낮게 한벌로 돌렸다. 지붕은 합각골기와집인데 남도 풍습을 따라 내림마루 끝을 투박하게 올렸다.
광채는 부엌 서쪽에 뒤뜰을 둘러싸는 형상으로 배치되며 맞걸이 3량 맞배지붕 기와집이다. 모두 11간의 ㄱ자형 집인데 전면 동쪽으로부터 부엌, 2간 구들로 되고 나머지 서쪽 날개는 광채로 쓰였던 듯 싶으나 보존상태가 나빠서 좀 더 면밀한 관찰이 요구된다. 그러나 그 치목 솜씨는 꽤 고전적 맛을 풍긴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안채 건넌방 동쪽에 마련되는 뒷간으로서 단간 초가 사모지붕으로 만들었는데 모양이 아름답다. 출입문은 판장문이고 벽도 빈지널이며 서까래는 네모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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