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65.jpg 태백산맥(太白山脈)에는 목재를 중요자재로 하는 여러가지 유형의 집들이 있다. 귀틀집도 그중의 하나이며 지붕에 굴피를 잇거나 너와를 이은 것들도 그중의 한 유형이 된다.

신리(新里)에는 1970년대초만 하여도 이런 여러 유형의 집들이 존재하였으나 지금은 대부분 개조되고 문화재로 지정된 집만이 예스러운 모습을 지닌 채로 남아있다. 이중 국가에서 매입한 가옥 2동은 규모가 큰 것과 작은 것이 있으나 이들은 너와집이라 통칭되는 것으로 귀틀집과 다르다.

완연한 가구식(架構式)이며 곧은 적송(赤松)을 알맞은 크기로 잘라 적절히 사용하여서 비산비야(非山非野)에서는 부윤대택(富潤大宅)에서 조차 볼수 없을만큼의 완벽한 조영을 하였다. 두 집은 그 평면구성이 대동소이(大同小異)한데 안동지방(安東地方)에서 까치구멍집이라 속칭(俗稱)되는 유형의 평면과 흡사하다. 이러한 유형은 이 지역이 거의 북방한계선(北方限界線)에 해당하여서 더 북쪽에서는 크게 눈에 뜨이지 않는 특징을 지녔다. 그런 의미에서도 이 부락에서 이 유형의 평면형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학문적으로 매우 값이 높다.

까치구멍집 평면은 정면이 3간(間)이고 측면이 세줄박이가 보통이다. 대문은 가운데 외벽에 있다. 문을 들어서면 1간넓이의 봉당이 있고, 그 우측엔 부엌이 있는데 반간(半間)쯤 앞쪽으로 확대하여서 바깥에서 보면 그만큼이 돌출되어 있다. 좌측엔 외양간이 있다. 또 작은방에 불땔 아궁이가 있는데 여기에 가마솥을 걸고 소죽을 끓인다. 외양간과 봉당과의 사이는 여물 주는 구이통이 있어 소가 나올 수 없게 막았다. 소는 바깥벽의 판벽(板璧)에 빈지들인 문을 열고 나다닌다. 봉당 다음이 마루이다. 마루는 이간통(二間通)에 계속되기도 한다. 우측에 안방이, 좌측에 사랑방이 있다. 세줄박이째의 우측은 웃방이거나 도장방이 되고 좌측은 고방이 되어 세간살이들을 보존한다.

신리의 집도 이 원칙에 따랐으나 중앙의 마루를 한간만 하고 다음에 방이 들어앉았다. 이점이 특색이 된다. 이 방의 좌우에는 원칙에 따라 방이 있다. 신리의 큰집에서는 좌측방 아래에도 작은 마루가 있고 난간을 설치하였으며 서쪽으로 나가는 문을 내었다. 이 합각아래로 출입하게 된 문을 두었다는 데에 학술적인 큰 의미가 있다. 이 집의 소유였다고 하는 통방아가 개울가에 있다. 물이 차면 공이가 치켜졌다가 물이 쏟아지면 앞이 무거워 내려 꽂히면서 공이가 확의 곡식을 찧게된 구조이다. 찧여지는 곡식이 비바람에 피해입지 않도록 쇠뿔 모양의 오가리를 지어 풍우를 가려주었다. 이들 집에는 전에 사용하였던 여러 도구들이 있다. 주루막, 방우리, 중태, 채독, 김치독, 작두, 베틀, 가마니틀, 설피, 창, 낫, 도끼 등이 있다. 채독은 네모진 바닥에 항아리처럼 배부르게 싸리로 엮고 멍게흙을 바른 것이며 김치독은 지름 70∼80㎝ 크기의 피나무를 속을 파서 만들고 밑을 받쳐준 구조이다. 칡 등으로 탱기틀면 바닥과 몸체가 밀착하여 김치국물이 흘러나가지 않는다. 산골짜기에서, 오지독을 구하기 어려울뿐만 아니라 지독한 추위에 얼어서 터질 염려가 있어 이 나무김치독이 애용되었다. 설피는 눈이 쌓인 위로 다니기 편리한 것으로 이것을 신고 창으로 사냥을 하기도 하였다.
 

중요민속자료 33-1

물레방아

윤영원 씨 집 밖으로 잇대어 물레방아간이 있다. 물레방아는 바퀴 지름이 195㎝, 궁굴목의 길이가 420㎝ 크기이다. 2개의 확 위에 공이 2개가 고정되어 있다.

중요민속자료 33-2

통방아

개울가에는 강문봉 씨 집의 소유였다고 하는 통방아가 있다. 크기는 물받이를 포함한 방앗대 길이가 505㎝, 방아머리 끝부분이 가로 38㎝ × 세로 50㎝, 방아공 길이가 63㎝이다. 물이 차면 공이가 치켜졌다가 물이 쏟아지면 앞이 무거워 내려 꽂히면서 공이가 확의 곡식을 찧게 만들었다.

중요민속자료 33-3

채독

네모진 바닥에 항아리처럼 배부르게 싸리로 엮어 만든 저장용구이다. 높이 137㎝, 입지름 70㎝, 둘레 280㎝ 정도 크기이며, 주로 옥수수, 콩, 감자 등을 저장한다.

중요민속자료 33-4

나무통

김치독은 지름 70∼80㎝ 크기의 피나무를 속을 파서 만들고 밑을 받쳐준 구조이다. 칡 등으로 탱기틀면 바닥과 몸체가 밀착하여 김치국물이 흘러나가지 않는다. 산골짜기에서 오지독을 구하기 어려울뿐만 아니라 지독한 추위에 얼어서 터질 염려가 있어 이 나무김치독이 애용되었다.

중요민속자료 33-5

화티

성냥 따위의 도구가 없을 당시 불씨를 보존하기 위해 부엌(정지) 옆에 만들어 놓은 불씨 보관 장소다. 돌을 쌓고 흙으로 발라 높이 77㎝, 가로 87㎝, 길이 95㎝ 정도로 만든다. 난방을 겸한 고정된 화로와 같은 것이다

중요민속자료 33-6

살티

눈이 쌓였을 때 눈길을 다니기 편하게 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짚신 위에 물푸레나무를 휘어 만들고, 피나무껍질을 끈으로 쓴다.

중요민속자료 33-7

 

중요민속자료 33-8

코클

방안을 밝히면서 따뜻하게 하기 위해 방 한쪽 모퉁이에 설치한 시설이다. 방바닥에서 30㎝ 정도 높이에 판자로 받침을 만들고 그 위에 아래가 넓고 위는 좁게 천장 밑까지 쌓아 만든다. 굴뚝 모양으로 연기는 부엌으로 뽑는다.

중요민속자료 33-9

주루막

새끼 따위로 촘촘히 엮어 멜끈을 달아 물건을 나르는데 쓰던 도구이다. 주둥이를 죌 수 있도록 고리를 만들고 죄는 끈을 건다. 강원도 산간마을에서 많이 쓰며 곡물이나 감자를 나를 때, 약초를 캐거나 사냥을 나갈 때 주로 사용한다.

중요민속자료 33-10

너와집

국가에서 매입한 가옥(家屋) 2동(棟)은 규모가 큰 것과 작은 것이 있으나 이들은 너와집이라 통칭되는 것으로 귀틀집과 다르다. 완연한 가구식(架構式)이며 곧은 적송(赤松)을 알맞은 크기로 잘라 적절히 사용하여서 비산비야(非山非野)에서는 부윤대택(富潤大宅)에서 조차 볼 수 없을만큼의 완벽한 조영을 하였다.

두 집은 그 평면구성이 대동소이(大同小異)한데 안동지방(安東地方)에서 까치구멍집이라 속칭(俗稱)되는 유형의 평면과 흡사하다.

이러한 유형은 이 지역이 거의 북방한계선(北方限界線)에 해당하여서 더 북쪽에서는 크게 눈에 뜨이지 않는 특징을 지녔다. 그런 의미에서도 이 부락에서 이 유형의 평면형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학문적으로 매우 값이 높다.

까치구멍집 평면은 정면이 3간(間)이고 측면이 세줄박이가 보통이다. 대문(大門)은 가운데 외벽(外壁)에 있다. 문을 들어서면 1간(間) 넓이의 봉당이 있고, 그 우측엔 부엌이 있는데 반간(半間)쯤 앞쪽으로 확대하여서 바깥에서 보면 그만큼이 돌출되어 있다. 좌측엔 외양간이 있다. 또 작은방에 불땔 아궁이가 있는데 여기에 가마솥을 걸고 소죽을 끓인다. 외양간과 봉당과의 사이는 여물 주는 구이통이있어 소가 나올 수 없게 막았다. 소는 바깥벽의 판벽(板壁)에 빈지들인 문을 열고 나다닌다.

봉당 다음이 마루이다. 마루는 이간통(二間通)에 계속되기도 한다. 우측에 안방이, 좌측에 사랑방이 있다. 세줄박이째의 우측은 웃방이거나 도장방이 되고 좌측은 고방이 되어 세간살이들을 보존한다.

신리의 집도 이 원칙에 따랐으나 중앙의 마루를 한간만 하고 다음에 방이 들어앉았다. 이점이 특색이 된다. 이 방의 좌우에는 원칙에 따라 방이 있다.

신리의 큰집에서는 좌측방 아래에도 작은 마루가 있고 난간을 설치하였으며 서쪽으로 나가는 문을 내었다. 이 합각아래로 출입하게 된 문을 두었다는 데에 학술적인 큰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