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화,산수화

단원 김홍도의 작품들

문성식 2014. 1. 8.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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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문가들이 호랑이 그림 중 세계최고라고 하는 '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

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 김홍도 비단에 채색 90.4x43.8cm 호암미술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극사실주의(極寫實主義)"로 표현한 이 그림은 

수천 수만 번의 초인적인 집중력으로 호랑이의 털을세밀하게 표현한 점과

소나무 가운데 가로로 나있는 호랑이 발톱 자국을 표현할 만큼의 사실적인 묘사는 보는 이에게 경외심마저 느끼게 합니다.

호랑이에게 쫓겨 도망치다 절벽에서 떨어져 겨우 목숨을 건진 후 다시 만난 정조에게

자신의 목숨과 맞바꿀뻔한 호랑이 그림을 선물했다고 전해지는

물론 김홍도가 실제 호랑이를 보고 그린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에게 풍속화가 정도로만 알려진 김홍도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1745(영조 21)~? 조선 후기의 대표적 화가

 

산수·도석인물(道釋人物)·풍속·화조 등 여러 분야에 걸쳐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으며,

그의 화풍은 조선 후기 화단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의 작품은 현재 200여 점 정도 알려져 있는데

화풍상의 변화는 50세를 중심으로 전후 2기로 크게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산수화의 경우에는 전기에는 원체화적(院體畵的) 경향을 띤 정형산수를 많이 그렸는데,

1778년 작인 〈서원아집도 西園雅集圖〉 6폭병풍과 선면화(扇面畵) 등에 잘 나타난다.

50세 이후의 후기에는 한국적 정서가 담긴 진경산수를 즐겨 그리면서 단원법(檀園法)이라 불리는

보다 개성이 강한 화풍을 이룩하였다.

그의 후기 산수화풍은 석법(石法)과 수파묘(水波描) 등에서

정선(鄭敾)·심사정(沈師正)·이인상(李麟祥)의 영향이 부분적으로 발견되지만

고도의 회화감각으로 처리된 탁월한 공간구성과 변형된 하엽준(荷葉), 수묵의 능숙한 처리,

강한 먹선의 강조와 맑고 투명한 담채의 효과 등을 통해 독창성을 발휘하였다.

또한 그는 만년에 이르러 명승의 실경에서 농촌이나 전원 등 생활주변의 풍경을 사생하는 데로 관심을 바꾸었으며

이러한 사경산수 속에 풍속과 인물, 영모화조 등을 그려넣어

한국적 서정과 정취가 물씬 풍기는 일상사의 점경으로 승화시키기도 했다.


산수뿐만 아니라 도석인물화에서도 자신만의 특이한 경지를 개척했다.

도석인물은 전기에는 주로 신선도를 많이 그렸는데,

굵고 힘차면서도 거친 느낌을 주는 옷주름과 바람에 나부끼는 옷자락 그리고 티없이 천진한 얼굴모습 등으로 특징지어지는

이 시기의 신선묘사법은 1776년에 그린 〈군선도병 群仙圖屛〉(호암미술관 소장, 국보 제139호)에서 전형적으로 찾아볼 수 있다.

후기가 되면 화폭의 규모도 작아지고 소방하면서 농익은 필치로 바뀌게 된다.


김홍도의 회화사적 비중을 한결 높여주고 있는 분야는 풍속화이다.

조선 후기 서민들의 생활상과 생업의 광경을 간략하면서도 짜임새있는 구도 위에 풍부한 해학적 감정과 더불어 표현된

 그의 풍속화들은 정선이 이룩했던 진경산수화의 전통과 나란히 조선 후기 화단의 새로운 경향을 가장 잘 대변해준다.

당시 속화체(俗畵體)로도 불렸던 그의 풍속화풍은 현실적인 소재를 소박한 생활정서와 풍류적 감성이 가미된

생동감 넘치는 기법으로 창출했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된다.



<평가 및 영향>

홍백화(洪白華)의 글과 조희룡(趙熙龍)의 〈호산외기 壺山外記〉에 의하면,

김홍도는 외모가 수려하고 풍채가 좋았으며 또한 도량이 넓고 활달해서 마치 신선처럼 보였다고 한다.

스승인 강세황으로부터는 '근대명수'(近代名手) 또는 '우리나라 금세(今世)의 신필'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그리고 정조는 '회사(繪事)에 속하는 일이면 모두 홍도에게 주장하게 했다'고 할 만큼 그를 총애했다.

김홍도가 이룩했던 한국적 감각의 화풍과 경향들은 그의 아들인 김양기(金良驥)를 비롯하여

신윤복(申潤福)·김득신(金得臣)·김석신(金碩臣)·이명기(李命基)·이재관(李在寬)·이수민(李壽民)·유운홍(劉運弘)·엄치욱(嚴致郁)·

이한철(李漢喆)·유숙(劉淑) 등 조선 후기와 말기의 여러 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면서

한국화 발전에 탁월한 발자취를 남겼다.

안견(安堅)·정선·장승업(張承業)과 함께 조선시대의 4대 화가로 손꼽힌다.

그의 영향을 받았거나 그의 화풍을 추종했던 화가들을 가리켜 김홍도파 또는 단원파(檀園波)라 하기도 한다.

앞서 언급한 작품들 외에 그의 대표작으로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단원풍속도첩〉(보물 제527호)과 개인소장의 〈단원도〉(1784년작)·〈금강사군첩〉·〈섭우도 涉牛圖〉·

〈기로세련계도 耆老世聯圖〉(1804년작), 간송미술관 소장의 〈무이귀도도 武夷歸棹圖〉,

호암미술관 소장의 〈단원화첩〉(1796년작, 보물 제782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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