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 술 이야기

청주

문성식 2012. 3. 14. 05:51

청주

청주 뜨는 모습.

 

 

사케는 청주이고, 전통주는 약주다?

 

프랑스 등 유럽의 와인 열풍에 이어 일본주 ‘사케’의 시장 점유율이 지속적으로 증가추세라고 한다. 이와 같은 현상의 배경을 두고 전문가들은 일본 식당의 증가와 함께 막걸리시장의 활성화를 꼽고 있다. 국내의 막걸리 소비증가와 사케의 소비증가가 상관관계에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우리의 “막걸리 소비의 활성화가 위기에 처해 있는 전통주(약주, 청주)시장의 활성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와는 사뭇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전통주(약주, 청주)시장의 활성화가 이뤄지지 않는 이유로, “막걸리 등 전통주를 편하게 마시고 즐길 수 있는 국내의 전문 막걸리샾이나 전통주점 등의 공간이 태부족이다.”는 지적과 함께, “막걸리의 제조방식이 입국 등 일본주 사케의 제조방식과 유사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지적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케=청주’ 라는 우리의 인식에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청주’는 곧 ‘고급술’ 또는 ‘손님 접대와 같은 중요의식에 없어서는 안되는 중요한 술’이라는 의식이 깔려 있는데다, 특히 술을 빚어 본 사람이라면 청주야말로 가장 기본적인 술이자, 실용가치가 높은 술이기 때문에 누구라 할 것 없이 부가가치가 가장 높은 청주를 빚고자 한다는 것이다. 전통주의 근간은 누가 뭐라 해도 청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케가 청주라는 인식에 비해 ‘전통주=약주’라는 인식이 있다. 그러니 “우리나라에는 약주는 있어도 청주가 없다.”는 얘기가 나오게 된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일제에 의한 ‘주세법’ 시행으로 사라진 우리의 청주

 

우리나라 사람들은 조상숭배를 중요한 덕목으로 인식하여, 명절과 집안제사에 정성껏 빚은 맑은 술(淸酒)을 천신하는 것을 하나의 예법으로 지켜왔다. 천지신명에게 의지하고 보살핌에 대한 최고의 성의표시로써 맑은 술 이상의 현물이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맑은 술 곧 청주는 조상들이 주식으로 먹어왔던 쌀밥이 술의 원료이자, 이 쌀로 빚은 술이 가장 순수한 향기를 간직한다는 인식에서 쌀술인 맑고 향기로운 청주를 제물로 천신(薦新)했던 것이다. 그러기에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도 조상제사나 차례에는 반드시 찹쌀이나 멥쌀을 이용한 청주를 빚고자 했고, 아무리 간단하고 쌀을 적게 사용하더라도 맑은 술을 얻고자 정성을 쏟았던 노력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양조학적 분류기준인 원료측면에서 보자면, 전통주는 전분질인 쌀로 빚은 만큼 ‘맥주(麥酒)’ ‘고량주(高粱酒)’처럼 당질에 따라 “미주(米酒)”라고 해야 옳다. 하지만 쌀로 빚은 맑은 술을 “청주”로 인식한 데에는, 우리 조상들의 뛰어난 안목과 양조철학이 고스란히 녹아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일제에 의한 ‘주세법’이 시행되면서 조선 땅에서는 가양주를 빚지 못하게 되자, 양조장제도의 도입으로 공장에서 생산 판매하는 술을 사다 쓸 수 밖에 없었다. 당시 주세법은 “조선주”는 ‘탁주(濁酒)’, ‘약주(藥酒)’. ‘소주(燒酒)’ ‘혼성주(混成酒)’로 묶어 주종분류를 단순화시키는 한편으로, “일본주”에 ‘청주’를 포함시킴으로써, 수천 년을 이어왔던 전통주의 근간이였던 청주는 사라지고 말았다. 그 결과 명절 차례와 집안제사에 정성껏 빚은 청주를 천신(薦新)하는 것을 예법으로 알았던 사람들은, 너나없이 “정종(正宗)”이란 상품명의 일본주(청주)를 사다 제사와 차례를 지내는가 하면, 음복을 할 때에도 데워서 마시는, 차마 웃지 못할 풍습이 생겨났다. 이 땅의 청주가 사라지면서 일본주 정종을 사다 차례와 제사를 지내고, 일본인들의 음주습관까지 의식 없이 따라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로써 ‘일본청주’가 우리 술의 ‘청주’자리를 차지하기에 이르렀으며, 이 주류분류 기준을 지금까지도 고수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이제라도 청주라는 의미를 다시 되새겨 주세법에 “청주”의 자리를 되찾아줌으로써, 전통주의 근간을 다시 세우고, 무엇보다 전통주의 브랜드가치를 제고시켜야 한다.

 

 

청주의 발효 종료 단계. 밥알이 다시 가라앉기 시작한다.

술과 밥알찌꺼기, 누룩찌꺼기를 분리하는 작업의 모습.

 

 

깨끗하고 신선한 향기-청향(淸香)을 자랑했던 전통 청주에 관심 가져야

전통주를 빚어 본 사람이면 다 아는 기본적인 상식이지만, 찹쌀을 비롯하여 멥쌀 등 쌀이 주재료의 중심이고, 지리적 환경과 먹고 사는 형편에 따라 조나 수수, 기장으로 양조를 해왔는데, 통과의례를 비롯하여 각종 중요의식에 사용하는 술은 대개 다 찹쌀이거나 멥쌀로 양조를 해왔으며 맑은 술을 빚어 상에 올린다. 그런데 술빚기에 사용되는 쌀이나 물, 누룩 가운데 어느 것 한 가지도 좋은 냄새나 향기, 좋은 맛을 갖고 있는 재료가 없다. 그런데도 이들 재료가 어우러져 발효과정을 통해서 이뤄내는 조화는, 오미로 표현되는 복잡한 ‘맛’ 외에도 오묘한 ‘향기’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향기는 우리가 지금까지 잘못 인식해 왔던 누룩향(麯子香)이 아니라,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향기요, 과실의 향기라는 것이다. 이러한 꽃향기와 과실 향기를 우리 조상들은 방향(芳香)이라고 칭해 왔고, 이러한 방향 가운데 가장 깨끗하고 신선한 향기를 ‘청향(淸香)’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사실은 여러 고서와 선비들의 시문집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또한 우리나라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의 하나인 문배주라는 술이름에서 우리 전통주가 과실향기를 갖는 방향주라는 사실을 엿볼 수 있다. 문배주는 차조와 차수수를 주원료로 하고 누룩과 물을 합하여 3차례 빚는 삼양주(三釀酒)를 증류한 증류식 소주인데, 이 소주에서 ‘문배의 향기가 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문배는 야생 토종 돌배를 가리킨다.

 

결국 ‘전통주는 한국인이 주식으로 삼는 쌀로 빚는 술’이라는 뜻이면서 동시에 ‘쌀과 재래누룩, 물로 빚는 술에서 가장 고급스럽고 신비스런 청향이 난다’는 인식에서 우리 조상들은 집집마다 빚어 온 가양주와 고유의 비법을 지키려 애를 썼던 것이다. 따라서 아직까지도 우리 전통주의 향기가 누룩향(麯子香)이라는 그릇된 인식을 갖고 있는 한, 일본의 사케를 뛰어넘을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따라서 우리가 잃어버린 전통 청주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좀 더 깊은 관심을 보여야 할 때다.


나아가 지금까지 보다 손쉽고 빠르게, 값싸게 빚는 방법의 술을 능사로 여기고 전부로 알았다면, 이제부터는 보다 부가가치가 높고 특히 맑고 향기가 좋았던 전통 청주의 잃어버린 양조기법을 찾는 일에 골몰해야 한다. 그 길이 우리가 마시는 수입와인과 위스키, 고급 사케에 쏟아버렸던 달러를 찾는 일이고, 궁극에는 우리 전통주도 브랜드가치를 높여서 세계시장에 내놓아 달러를 벌어들여야 하는 시기를 맞이했기 때문이다.

 

 

박록담
시인, 한국전통주연구소장, 숙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교수.

'차 , 술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약주문화민족  (0) 2012.03.14
방향  (0) 2012.03.14
전통 양주법  (0) 2012.03.14
누륵술  (0) 2012.03.14
전통주의 종류(2)  (0) 2012.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