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케는 청주이고, 전통주는 약주다?
프랑스 등 유럽의 와인 열풍에 이어 일본주 ‘사케’의 시장 점유율이 지속적으로 증가추세라고 한다. 이와 같은 현상의 배경을 두고 전문가들은 일본 식당의 증가와 함께 막걸리시장의 활성화를 꼽고 있다. 국내의 막걸리 소비증가와 사케의 소비증가가 상관관계에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우리의 “막걸리 소비의 활성화가 위기에 처해 있는 전통주(약주, 청주)시장의 활성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와는 사뭇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전통주(약주, 청주)시장의 활성화가 이뤄지지 않는 이유로, “막걸리 등 전통주를 편하게 마시고 즐길 수 있는 국내의 전문 막걸리샾이나 전통주점 등의 공간이 태부족이다.”는 지적과 함께, “막걸리의 제조방식이 입국 등 일본주 사케의 제조방식과 유사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지적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케=청주’ 라는 우리의 인식에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청주’는 곧 ‘고급술’ 또는 ‘손님 접대와 같은 중요의식에 없어서는 안되는 중요한 술’이라는 의식이 깔려 있는데다, 특히 술을 빚어 본 사람이라면 청주야말로 가장 기본적인 술이자, 실용가치가 높은 술이기 때문에 누구라 할 것 없이 부가가치가 가장 높은 청주를 빚고자 한다는 것이다. 전통주의 근간은 누가 뭐라 해도 청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케가 청주라는 인식에 비해 ‘전통주=약주’라는 인식이 있다. 그러니 “우리나라에는 약주는 있어도 청주가 없다.”는 얘기가 나오게 된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일제에 의한 ‘주세법’ 시행으로 사라진 우리의 청주
우리나라 사람들은 조상숭배를 중요한 덕목으로 인식하여, 명절과 집안제사에 정성껏 빚은 맑은 술(淸酒)을 천신하는 것을 하나의 예법으로 지켜왔다. 천지신명에게 의지하고 보살핌에 대한 최고의 성의표시로써 맑은 술 이상의 현물이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맑은 술 곧 청주는 조상들이 주식으로 먹어왔던 쌀밥이 술의 원료이자, 이 쌀로 빚은 술이 가장 순수한 향기를 간직한다는 인식에서 쌀술인 맑고 향기로운 청주를 제물로 천신(薦新)했던 것이다. 그러기에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도 조상제사나 차례에는 반드시 찹쌀이나 멥쌀을 이용한 청주를 빚고자 했고, 아무리 간단하고 쌀을 적게 사용하더라도 맑은 술을 얻고자 정성을 쏟았던 노력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양조학적 분류기준인 원료측면에서 보자면, 전통주는 전분질인 쌀로 빚은 만큼 ‘맥주(麥酒)’ ‘고량주(高粱酒)’처럼 당질에 따라 “미주(米酒)”라고 해야 옳다. 하지만 쌀로 빚은 맑은 술을 “청주”로 인식한 데에는, 우리 조상들의 뛰어난 안목과 양조철학이 고스란히 녹아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일제에 의한 ‘주세법’이 시행되면서 조선 땅에서는 가양주를 빚지 못하게 되자, 양조장제도의 도입으로 공장에서 생산 판매하는 술을 사다 쓸 수 밖에 없었다. 당시 주세법은 “조선주”는 ‘탁주(濁酒)’, ‘약주(藥酒)’. ‘소주(燒酒)’ ‘혼성주(混成酒)’로 묶어 주종분류를 단순화시키는 한편으로, “일본주”에 ‘청주’를 포함시킴으로써, 수천 년을 이어왔던 전통주의 근간이였던 청주는 사라지고 말았다. 그 결과 명절 차례와 집안제사에 정성껏 빚은 청주를 천신(薦新)하는 것을 예법으로 알았던 사람들은, 너나없이 “정종(正宗)”이란 상품명의 일본주(청주)를 사다 제사와 차례를 지내는가 하면, 음복을 할 때에도 데워서 마시는, 차마 웃지 못할 풍습이 생겨났다. 이 땅의 청주가 사라지면서 일본주 정종을 사다 차례와 제사를 지내고, 일본인들의 음주습관까지 의식 없이 따라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로써 ‘일본청주’가 우리 술의 ‘청주’자리를 차지하기에 이르렀으며, 이 주류분류 기준을 지금까지도 고수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이제라도 청주라는 의미를 다시 되새겨 주세법에 “청주”의 자리를 되찾아줌으로써, 전통주의 근간을 다시 세우고, 무엇보다 전통주의 브랜드가치를 제고시켜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