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 술 이야기

전통주의 정의

문성식 2012. 3. 14. 05:41

전통주의 정의

발효중인 술독.

 

 

전통주란? 민족생활의 공감(共感)으로 형성된 술

‘전통주(傳統酒)’라는 용어의 정의에 대해 아직까지 법적 또는 문화적으로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거나 대중적으로 합의된 바는 없다. 그럼에도 우리가 전통주라고 말하는 주류에 대해 자전적 해석을 빌면, ‘계통을 이어받아 전하는 술’의 의미와 ‘관습 가운데서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특히 높은 규범적 의미를 지닌 술’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현재의 양조분야와 관련된 주세법에 근거하여 살펴보면, 전통주는 ‘무형문화재’와 ‘전통식품 명인’, ‘제주도개발특별법에 의한 주류’, 그리고 ‘관광토속주’에 대해 “민속주(民俗酒)”로 규정되어 있다. 따라서 주세법 상의 민속주가 대중이 지칭하고 인식하고 있는 전통주의 범주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는데, 사실상 이들 업무를 주관하고 있는 부처마다 다른 명칭과 의미를 부여하고 있어, 일반인들로서는 그 성격을 쉽게 파악하기가 쉽지는 않다.

 

전통주에 대한 정의는 전통주의 발달과 그 배경을 살핌으로써 그 방법을 모색해 볼 수 있다고 생각된다. 전통주는 역사와 전통적으로 세시풍속(歲時風俗)을 바탕으로 발달과 변화를 거듭해왔다. 세시풍속이란 ‘일상생활에 있어서, 계절변화에 맞추어 관습적으로 되풀이되는 민속’을 가리킨다. 이는 인간이 같은 자연환경과 역사 속에서 생업과 언어생활을 함께 해오는 동안에 동질성(同質性)의 생활관습을 갖게 되는 것이므로, 민중의 생활사가 되기도 한다. 따라서 ‘민족생활의 공감(共感)으로 형성된 술’이 전통주라고 할 수 있으며, 오랜 세월 동안 생활에서 체험하고 학습해야만 했기 때문에 선택되었을 것이고, 그러기에 전통주에도 우리 민족의 공감성(共感性)과 문화성이 배여 있다는 것이다.

 

우리 민족의 공감성과 문화성이 깃든 전통주로, 봄이면 씨 뿌리고 가을에 거두는 농경세시(農耕歲時)에 사용되었던 ‘농주’를 시작으로, 계절세시(季節歲時)에 따른 술로는 청명주두견주, 이화주, 국화주 등이 있고, 명절세시(名節歲時)와 술은 뗄래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로써, 음력 정월의 설날의 도소주를 비롯하여 단오날의 창포주, 추석날의 ‘햅쌀술’ 등 그때마다 다른 재료와 술 빚는 법을 달리하는가 하면, 목적과 용도에 따른 술을 빚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전통주가 우리 고유의 관습이자 전통문화의 한 가지로 자리잡게 되었다는 사실의 반증이다.

 

두견주(진달래꽃 술) 빚는 모습. 고두밥으로 빚은 밑술에 찹쌀고두밥과 진달래꽃을 넣고 빚는 장면이다.

완성된 두견주. 두견주는 삼월삼짇날의 절기주이다.

 

 

양조목적과 쓰는 용도에 따라 다른 전통주

 

전통주는 오랜 세월 조상 대대로 가문과 집안마다의 고유한 비법으로 대물림 해 온 가양주(家釀酒: 집에서 빚은 술)와 그 문화에서 그 정의를 찾을 수 있으며, 이는 전통주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자 장점이기도 하다.

 

가양주는 자신의 사회적 생활환경과 거주지에 따른 지리적, 기후적 환경에 따라 각기 다른 양조방법과 종류, 음주문화를 형성해 왔다. 예를 들면, 자신의 형편에 따라 농사를 짓고 생산한 멥쌀이나 찹쌀, 보리쌀, 좁쌀 등의 재료를 주식으로 이용해 온 식이다. 전통주는 이들 주식이 되는 재료로 빚고자 하는 술의 주원료로 삼았으며, 씻고 불려서 찌거나 끓이기도 하고, 가루로 빻은 뒤 삶거나 찌거나 끓이거나 하여 익힌 뒤에 누룩과 물을 섞고, 고루 버무려 독이나 항아리에 담아 발효시키는 방법을 기본으로 한다. 물론 여기에 다시 쌀이나 누룩, 물 등을 더 보태기도 하여 향기와 맛이 좋은 고급술을 빚는가 하면, 필요에 따라서는 꽃이나 한약재 등을 넣고 다시 발효시킨 향약주(香`藥酒)를 빚기도 한다.

 

이렇게 해서 익힌 술은 양조목적과 쓰는 용도에 따라 그 형태가 달라지는데, 맑게 떠낸 청주(淸酒)는 제사나 차례, 부모봉양과 반주 또는 귀한 손님 접대에 사용하고, 누룩과 밥찌꺼기만을 제거하여 만든 탁주(濁酒)는 집안 행사나 농사실 등 가용으로 사용해 왔다. 또 기후적으로 추운 지방에서는 추위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술을 증류하여 소주를 만들어 즐기기도 하였고, 더운 지방에서는 도수가 낮은 탁주와 막걸리를 애용해 왔다. 물론 이때의 술은 일체의 인위적 가공품이나 합성첨가물을 사용하지 않은 자연발효식품으로서 음주에 따른 폐해가 덜하다.

 

가향주의 하나인 백화주를 제조하는 모습.

 

 

이러한 가양주와 그 이용은 전국적으로 거의 동일하게 이뤄졌으므로, 전통주의 전형적인 제조법으로, 또 고유한 음주문화로 자리잡았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다른 나라의 양조역사와 음주문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의 경우도 이들 가양주가 유명세를 타면서 마을과 향리의 술로 이름을 얻게 되었고, 지역적 특성과 산물을 반영한 토속주로 정착되었다. 특히 ‘이름난 가문에서 명주가 난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사대부나 부유층에서는 자주 술을 빚게 되어 양조기술이 뛰어나게 됨과 동시에, 고급 재료를 많이 사용하는가 하면, 여러 번에 걸쳐 술을 빚는 중양주를 즐김으로써 전국적인 명성을 얻은 명가명주(名家銘酒)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전통주는 고유한 생활문화의 하나로써, 또 세시풍속과 식문화적인 관점에서 볼 때도 “우리 땅에서 생산되고 한국인이 주식(主食)으로 삼는 쌀을 주재료로 하고, 전통누룩을 발효제로 하되, 전통성을 간직하면서도 우리 민족이 오랜 세월 동안 갈고 닦아 온 고유한 양조방법을 바탕으로, 자연물 이외의 그 어떤 인위적인 가공품이나 식품첨가물을 사용하지 않은 자연발효에 의한 술”로 정의할 수 있겠다.

 

 

 

박록담
시인, 한국전통주연구소장, 숙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