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

인생과 믿음 / 김수환 추기경

문성식 2011. 11. 23. 20:47

     
    
      인생과 믿음 거창한 제목입니다. 종교인들이 흔히 지껄이는 소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우리는 모두 원하든 원하지 않든 한 생을 살아갑니다. 그래서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인생입니다. 성경에 "사람이 온 세상을 얻는다 해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마태 16,26)라는 말씀이 있듯이 내가 만일 원하는 것을 다 가졌다 해도 이 생을 잃어버리면 가진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인생을 아는 것, 즉 인생의 의미를 아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근본적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것을 우리는 어디서 배워 알 수 있습니까? 학교에서 배웁니까? 가정에서 배웁니까? 어떤 때는 이를 가장 깊이 가르쳐야 할 교회에서조차 배우기 힘든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인생의 의미는 배운다기보다는 깨닫는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믿음으로써만 깨달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생은 내가 임의로 택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생을 주신 하느님, 그 하느님을 믿고, 그 믿음 속에 깊이 살아갈 때, 비로소 우리는 삶의 의미를 깊이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생을 주신 하느님의 은총의 빛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바로 문제가 생깁니다. '하느님은 참으로 계시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또는, 설령 계신다 해도 그분이 나와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도대체 하느님은 어떤 분이신가? 정말 믿을 만한 분인가? 등등 여러 가지 질문이 쏟아져 나올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물론 계십니다. 그분은 생명과 사랑이시고 사랑으로 우리 모두를 만드셨으며 지금도 우리들 하나하나를 극진히 사랑하신다는 것, 뿐더러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당신 외아들을 우리에게 보내셔서 사람이 되게 하셨는데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그분이시라는 것, 그리고 예수님은 성서에서 말하는 대로 우리 죄 때문에 십자가가에서 죽기까지 하셨으며, 그러나 또한 성서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3일 만에 부활하시어 지금도 우리 가운데 우리를 구원하시는 참 생명, 영적 생명으로 살아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계실 뿐 아니라 그분은 나의 존재의 바탕이요, 나의 구원, 생명이라는 것, 더구나 멀리 저 하늘에 계시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인생과 인류 역사 속에 깊이 들어와 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영혼 깊이에서 그분은 언제나 나를 부르고 계십니다. 하느님이 있어서 '나'의 삶은 의미가 있고, 어떤 처지에 있든 값진 것입니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병들고 가난하여 사람들 눈에는 비록 보잘 것 없는 존재, 폐품같은 존재로 보일지라도 하느님에게는 쓸모없는 존재란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가 값집니다. 건강한 사람뿐 아니라 병약한 사람도 천치도 불구자도 나병 환자도 똑같이 값진 인간이며, 혹 살인강도 같은 중죄인이라 해도 그 누구에게나 하느님은 다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시고 빛을 주십니다. - 김수환 추기경 잠언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