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담했던 시절의 빛바랜 사진들
우리 근대사에 6.25 이후, 참담했던 시절의 빛바랜 사진들이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어려운 세대를 이끌어오신 아버지,어머님......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이땅에 전쟁의 참화는 다시는 없어야 합니다.
지금도 밝혀지는 전쟁범죄들, 이제와서 누가 북한군, 국군, 소련군, 미군들이 저지른 만행을 구분하여 욕할 수 있겠습니까.
전쟁은 하나의 집단화된 인간의 폭력일 뿐, 정의도 애국으로도 미화될 수 없는 인류사의 비극이라 생각합니다.
다시한번 한국전쟁 57주년을 맞아 빛바랜 사진들로부터 그날의 참상을 되집어 봅니다.
<해방>
1945. 9. 9. 미군이 서울에 입성하고 있다
1948. 5. 31. 국회 개원식 날 국회의사당 앞에서 서북청년단들이 소련 철수를 주장하며 데모하고 있다
<발발>
탱크를 앞세우고 남으로 밀고 내려오고 있는 인민군. 소련은 지금까지 북침설을 공식적으로 지지해왔으나 최근들어 중립적인 입장으로 바뀌었으며 다시 남침설이 등장하고 있다. (■ 촬영일자 : 19500701 )
인민군 탱크들 - 1950년 6월 28일 중앙청을 거쳐 남대문을 향하여 달리고 있는 인민군 탱크들.
6.25 전쟁때 서울 시가지를 통과하는 T-34-85형 인민군 탱크. 중량32t, 최대시속 50km, 승무원 4명으로 인민군 전력의 핵심이었다.
1950. 8. 22. 불을 뿜는 전함
<전투>
1950.9. 15. 인천상륙작전을 함상에서 진두 지휘하는 맥아더 장군
1950. 9. 18. 인천에 상륙하기 위해 전함에서 병사들이 하선하고 있다
1950. 9. 16. 인천에 상륙한 후 시가지를 활보하는 유엔군들
1950. 9. 16. 인천시가지에서 생포한 북한군들
<수복>
1950. 9. 27. 경인가도에서 국군 수복을 환영하는 사람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태극기를 들고 공산당 격퇴를 환영하는 마을 주민들.
평양공략을 위해 마지막 점검을 하고 있는 국군1사단 장병들 - 평양 제2의 관문인 보통문이 보인다.(1950.10.17)
<피난>
피난을 가는 일가족의 전형적인 모습.
이렇게 지게에 가재도구를 싣고.
수백리 길을 걸어서 피난을 떠나야 했다.
▲ 1950. 8. 24. 모정 무한, 젖을 먹이는 어머니
1950. 8. 23. 머리에 이고 등에 업고 앞에 붙들고... 고단한 피난 행렬
다큐극장 '한국전쟁' - 피난길에 지친 한가족이 연합군이 배급한 급식으로 허기를 메우는 모습.
1950. 8. 15. 마산 부근, 피난민들이 배를 기다리고 있다
1950. 8. 11. 그해 여름 피난민들의 움막
1950. 8. 15. 피난민 행렬
1950. 12. 27. 인천항에서 출발해 부산항에 도착한 피난민들
흥남철수광경. 흥남부두에 몰려나온 피난민들이 `유엔`군의 `LST`를 다투어 타고 있다. 이 사진은 미공개 기록사진 중의 하나다.
1950. 7. 29. 경북 영덕, 포화에 쫓기는 피난민
1951. 1. 5. 1.4 후퇴 피난민 행렬
1951. 1. 5. 언 한강을 피난민들이 걸어서 건너고 있다
강원 강릉. 1951년 1월 4일 중공군에 밀려 유엔군이 후퇴하자 자유를 향하여 남으로 내려오는 피난민들. |
1951. 1. 5. 서울. 꽁꽁 언 한강을 피난민들이 건너 남하하고 있다
1951. 1.4. 한강나루터에서 건너야 할 강을 바라보는 피난민 아이들
1951. 1. 6. 수원역에서 남행열차를 기다리는 피난민들
1951. 1. 4. 무개화차에 몰린 피난민들
군인은 북쪽으로, 피난민은 남쪽으로 6.25가 터진지 열흘이 지나서 미군은 처음으로 오산 죽미령에서 인민군과 싸웠으나 중과부적이었다. 계속 남하하는 북한 침략군을 저지하기 위해 북으로 행진하는 미군들과 그 정반대 방향으로 피난 가는 사람들의 표정이 무겁다. (미국 국립문서보관소 사진)
6·25 전쟁 중 인천항에 정박해 있는 메러디스 빅토리호 - 흥남철수 성공뒤엔 `기적의 배`가...59명 정원 메레디스 빅토리호 피란민 1만4000명 자유의 품으로 인도. 1만4000명의 피란민은 물도 약도 없이 3일간의 항해 끝에 부산항에 닿았다.
6·25전쟁 중 북한주민들의 자유를 향한 피난. |
남으로...남으로... 50년 7월29일
북한동포의 목숨 건 남하 행렬 - 1950년 12월4일 평양을 철수하는 국군과 유엔군을 따라 북한동포들은 이렇게 부서진 대동강 다리를 결사적으로 건너 남하하기 시작했다.
서울시민들 - 51년 1. 4 후퇴때 서울시민들이 철도에서 피난하고 있는 모습 - 이고...지고..피란행렬. 51년 1.4후퇴 때 서울시민들이 철도를 따라 피란하고 있다. 피란보따리 위에 어린이가 앉아 있는 모습도 보인다.
한국전쟁 때 거제도에 도착한 흥남철수 당시의 피난민 모습 (게재/등록일 : 19510101)
임시수도 부산의 천막촌. 1951년
<죽음>
삶과 죽음이 무시로 교차하는 전쟁에서
운이 좋은 사람들은 살아나고,
운이 다한 사람들은 한 점 흙으로 돌아갔다 (*)
가족의 죽음
▲ 1950년 10월 10일 함흥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시체더미에서 울부짖으며 가족을 찾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6·25전쟁 중 1950년 10월 19일 북한군은 함흥에서 300명의 사상범들을 동굴 속에 가두고 질식사시켰다. | |
▲ 1950. 10. 22. 평양, 북한 주민의 학살 현장
6·25전쟁 중 1950년 9월 27일 전주에서 북한군에 사살된 희생자 가족들의 절규. |
▲ 1950. 11. 13. 함흥 덕산광산, 482명을 생매장한 갱도에서 시신을 꺼내 늘어놓은 것을 한 아버지가 아들을 찾고 있다. '제발 내 아들이 아니기를...'
▲ 1950. 11. 13. 지아비가 생매장된 갱도 어귀에서 오열하는 지어미. '날라는 어찌 살라하고 가시리잇고'
▲ 1950. 7. 29. 경북 영덕, 논두렁에 머리를 처박고 죽은 북한군 병사
▲ 1950. 8. 25. 폭격에 불타고 기총소사에 죽어가다
▲ 1950. 9. 16. 월미도에 나뒹구는 북한군 시신들
대전에서의 참혹한 학살현장, 다수의 어린아이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ㅠ
전쟁도 아니었다. 아니 전쟁이란 다 이렇다
어느나라 전쟁에 이처럼 민간인들 학살한 적이 있었던가?
어쩌면 남과 북이 한 형제자매일 수도 있는데, 이것은 이념도 국익도 아니다 그저 짐승적 만행이었을 뿐이다. 잔인한 우리의 인간성 ㅠ
<폐허>
폐허속의 서울
중앙청앞의 아낙네들
1950. 10. 1. 남대문에서 바라본 서울역
1950. 9. 30. 서울의 아침, 폐허가 된 시가지에 사람들이 부산하게 오가고 있다
1950. 1. 3. 1·4 후퇴를 앞두고 불타고 있는 서울시가지
불타는 서울 ㅠ 울부짖는 아낙네 ㅠ 엉엉우는 고아
1950. 8. 15. 전란으로 폐허가 된 마을
쌕쌕이의 융단 폭격으로 초토가 된 경북 왜관
폐허속에서 노숙하는 전란민 가족(1950년 9월)
완전 폐허가 되어버린 서울시가와 전난민들(1950년 9월28일 서울수복당시)
<고아>
전쟁은 체면이나 양심, 도덕률.
이런 것과는 거리가 먼 곳에 현실로 존재한다.
유치원에 다녀야 할 나이의 어린이가 깡통을 들고 거리에 나가
낯선 얼굴들에게 손바닥을 벌려야 했다.
고아들의 식사는 초근목피, 나무뿌리라도 먹어야 산다.
그리고 잡초보다 모질 게 살아남아야 했다.
아이를 업은 소녀의 손에 쥐어진 나무뿌리는
이 가족의 한 끼 식사일까, 아니면 땔감일까 ?
추위와 배고픔에 지친 어린 형제가
골목에서 해바라기를 하고 있다
전란통에 용케도 살아남은 이 소년 소녀들은
시민 혁명과 쿠데타, 군사 독재와 경제 기적의
한복판을 질풍노도처럼
관통하여
'의지의 한국인'을 세계에 알리는 주역이 되었다.
부모님은 피난통에 돌아가시고,
살던 집은 폭격으로 다 부서져 폐허가 된 터에
어린 소년이 버려진 채 눈물을 훔치고 있다.
고난의 1950 년대를 몸으로 때우며 살아온
이 민족의 처절한 단면이다.
찬 이슬을 피할 수 있는 곳이라면 헛간이라도 좋았다.
행색은 초라해도 카메라를 강하게 의식하는
이 초롱초롱한 눈매의 자매들은
지금쯤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까?
개털모자에 항공모함같은 헝겊 군화,
곳곳을 기운 이 복장이
1950년대 유년시절을 보냈던
대부분 한국인의 자화상이었다.
추위만 이길 수 있다면
누더기가 다 된 솜바지라도 좋다.
판자로 얼기설기 엮어 지은 2층 건물 곳곳에
피난민이 바글대고 있다.
고함 한번 치면 풀썩 주저앉을 듯 위태로운 건물 모습이
위기에 처한 조국의 모습을 상징하는 듯하다.
추위와 배고픔에 지친 한 아이가 탈진 했는지
기둥에 머리를 기대고 있다.
마치 요즘 북한 장마당의
꽃제비를 연상케 하는 모습이다.
미군 병사가 한 소년을 목욕 시키고 있다.
소년은 카메라를 들이대자
잔뜩 겁을 먹었는지 얼굴 표정이 굳어 있다.
▲ 1950. 10. 서울 근교, 전쟁은 모든 걸 삼켜버렸다. 학교 교실마저도 불타버렸다. 엄마가 일터로 가자 소녀는 하는 수 없이 동생을 데리고 학교로 가서 운동장에서 수업을 받고 있다. ⓒ2006 nara
6.25당시 국수먹고 있는 아이
▲ 1950. 8. 8. 누가 이 아이를 버리게 했을까?
1950. 11. 2. 거리에 버려진 아이들이 트럭에 실려 고아원으로 가고 있다
이게 유토피아? 인천 상륙작전이 끝난 뒤 한 해병이 파괴된 인천 시내를 순찰하다가 어린 아이와 만난다. 치열한 전투에서 살아남은 행운아들이다. '유토피아'(이상향)이라는 다방 간판이 폐허가 된 거리 풍경과 아이러니칼한 대조를 이루고있다. (미국 국립 문서보관소 사진)
엄마의 주검앞에 마냥 울고 있는 남매, 이들을 누가 이렇게 만들었는가?
한국전쟁 발발 56주년을 앞두고 당시의 상처들을 담은 사진집 2권이 사진전문 눈빛 출판사에서 발간됐다.소설가 박도씨가 2004년 2월 미국 국립문서기록보관청(NARA)의 사진자료실에서 찾아낸 한국전쟁 사진들을 모아 펴낸 '나를 울린 한국전쟁 100장면' 사진은 이미 숨진 엄마의 시신을 붙잡고 하염없이 울고 있는 어린 남매의 모습. 이들은 이곳을 지나던 영국군과 호주군에 의해 안전한 곳으로 데려갔다.//문화/ -눈빛출판사 제공- 2006.6.20 (서울=연합뉴스)
(전쟁의 비참함을 보여주는 전쟁 고아의 모습. 1950년 9월 28일 서울 모습)
이때의 조무라기들이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우리의 5-60대 선대들이다. 그들의 무서움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휴전>
38선을 긋는 순간 - 유엔군 연락장교 제임스 레이 대령(왼쪽)과 인민군 연락장교 장춘산(오른쪽)이 판문점에서 휴전선을 정하는 협정을 시작하고 지도에 38선을 긋고 있다.(1951.11.26)
1953년 7월 27일 하오 10시 정각부터 12분간에 걸쳐 조인된 정전협정문의 서명
<통계>
6.25 한국전쟁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북한이 38선 전역에 걸쳐 남침을 개시하면서 시작된 전쟁
전쟁기간 : 1950년 6월 25일 ~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 (3년 1개월)
전쟁과정 : 1950.6.25 북한의 남침 → 연합군 파견(1950.7.7)→ 낙동강 전투(1950.7.25) →
1950.9.15 인천상륙작전 → 1950.9.28 서울 탈환 → 중공군 남하(1950.11.02) →51.6.23 소련 유엔대표 휴전회담 제의 → 휴전회담(1952.01.02) →1953.7.27 휴전협정
한국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민주, 공산이념의 대결이라는 냉전 체제속에서 소련과 중공의
지원을 받은 북한의 김일성이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기습남침을 자행함으로써 일어났다.
전쟁초기 북한군은 우세한 군사력으로 개전 3일만에 수도 서울을 점령하고 두달로 채 안되어 낙동
강선까지 남진하였다. 그러나 우리 국군은 군사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온 국민과 함께 총력전으로 공산 침략군에 대행하여 싸웠다. 유엔은 북한의 불법남침을 응징하기 위해 한국에 대한 군사원조안을 결의했고, 이에 21개국이 유엔의 깃발아래 한국을 지원함으로써 공산군을 격퇴하고 조국과 자유를 수호할 수 있었다.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휴전협정이 조인됨으로써 3년1개월간의 한국전쟁은 종전이 아닌 휴전 상태로 남게되었다.
6.25당시 남·북한 군사력 비교
|
구 분 |
국 군 |
북한공산군 |
비 고 |
병 력 |
육 군 |
8개사단(22개연대) 67,416명 기타지원부대 27,588명 |
10개사단(30개연대) 120,880명 특수부대 61,820명 |
2 : 1 |
해 군 |
7,715명 |
4,700명 |
1 : 1.7 | |
공 군 |
1,897명 |
2,000명 |
1.1 : 1 | |
해 병 대 |
1,166명 |
9,000명 |
7.8 : 1 | |
총 계 |
105,752명 |
198,380명 |
2 : 1 | |
중 요 장 비 |
각종박격포 |
960문 |
1,727문 |
1.8 : 1 |
곡 사 포 |
91문 |
552문 |
9 : 1 | |
고 사 포 |
- |
36문 |
- | |
대 전 차 포 |
140문 |
550문 |
3.9 : 1 | |
탱 크 |
- |
242대 |
- | |
장 갑 차 |
27대 |
54대 |
2 : 1 | |
자 주 포 |
- |
176문 |
- | |
항 공 기 |
10대 |
211대 |
20 : 1 | |
함 정 |
28척 |
30척 |
1.1 : 1 |
UN 16개 참전국 (군사지원국)
: 미국, 영국,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프랑스, 그리스, 터어키, 이디오피아, 뉴질랜드
오스트렐리아, 남아프라카공화국, 태국, 필리핀, 캐나다, 콜럼비아
의료지원국
: 덴마크, 인도, 이탈리아, 노르웨이, 스웨덴
피해현황
◆ 인명피해
민 간 인 |
군 인 |
경 찰 |
합 계 |
991,068명 |
988,920명 |
16,816명 |
1,996,804명 |
◆ 군 인
구 분 |
국 군 |
UN 군 |
북 한 군 |
중 공 군 |
사 망 |
147,039명 |
35,737명 |
520,000명 |
900,000명 |
부 상 |
709,975명 |
115,068명 |
406,000명 |
- |
실 종 |
131,907명 |
1,554명 |
- |
- |
총 계 |
988,920명 |
152,359명 |
926,000명 |
900,000명 |
◆ 재산피해
학교 및 주요건물 |
사찰 및 교회 |
대.소도시 |
촌락 (읍, 면) |
22,437개소 |
5,236개소 |
50개소 |
5,400개소 |
출처 :정다운 사람들끼리 원문보기▶ 글쓴이 :양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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