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오늘의 말씀과 묵상 / 연중 제14주간 화요일(7/05)

문성식 2011. 7. 6. 06:58




연중 제14주간 화요일(7/05)






    말씀의 초대
    야곱이 야뽁의 강물을 건너다가 어떤 사람을 만나 밤새 씨름을 한다. 그는 야곱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준다. 이 이름의 뜻은 ‘하느님께서 싸우시기를!’ 또는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강하게 드러내시기를!’이다. 이름은 그 사람의 소명과 운명을 표현한다(제1독서). 바리사이들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기적의 능력을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께서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이러한 기적을 행한다고 소문을 낸다. 그들은 가엾은 이들을 지극히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참모습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복음).
    제1독서
    <네가 하느님과 겨루어 이겼으니, 너의 이름은 이스라엘이라 불릴 것이다.>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32,23-33 그 무렵 야곱은 밤에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데리고 야뽁 건널목을 건넜다. 야곱은 이렇게 그들을 이끌어 내를 건네 보낸 다음, 자기에게 딸린 모든 것도 건네 보냈다. 그러나 야곱은 혼자 남아 있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나타나 동이 틀 때까지 야곱과 씨름을 하였다. 그는 야곱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야곱의 엉덩이뼈를 쳤다. 그래서 야곱은 그와 씨름을 하다 엉덩이뼈를 다치게 되었다. 그가 “동이 트려고 하니 나를 놓아 다오.” 하고 말하였지만, 야곱은 “저에게 축복해 주시지 않으면 놓아 드리지 않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가 야곱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 하고 묻자, “야곱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그가 말하였다. “네가 하느님과 겨루고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으니, 너의 이름은 이제 더 이상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 불릴 것이다.” 야곱이 “당신의 이름을 알려 주십시오.” 하고 여쭈었지만, 그는 “내 이름은 무엇 때문에 물어보느냐?” 하고는, 그곳에서 야곱에게 복을 내려 주었다. 야곱은 “내가 서로 얼굴을 맞대고 하느님을 뵈었는데도 내 목숨을 건졌구나.” 하면서, 그곳의 이름을 프니엘이라 하였다. 야곱이 프니엘을 지날 때 해가 그의 위로 떠올랐다. 그는 엉덩이뼈 때문에 절뚝거렸다.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들은 오늘날까지도 짐승의 엉덩이뼈에 있는 허벅지 힘줄을 먹지 않는다. 그분께서 야곱의 허벅지 힘줄이 있는 엉덩이뼈를 치셨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32-38 그때에 사람들이 마귀 들려 말못하는 사람 하나를 예수님께 데려왔다. 마귀가 쫓겨나자 말못하는 이가 말을 하였다. 그러자 군중은 놀라워하며, “이런 일은 이스라엘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바리사이들은, “저 사람은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하였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데리고 온 말 못하는 사람을 고쳐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그 사람을 사로잡고 있던 마귀를 쫓아내시자 그가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야말로 막혔던 말문이 터진 것이지요. 예수님께서 고쳐 주시는 모습을 보고, 바리사이들은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서 저런 일을 한다며 빈정거립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모든 비웃음과 빈정거림에도 아랑곳하시지 않습니다. 그분께 중요한 것은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하여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며 당신의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천주교 신자들은 마귀에 사로잡혀 있지는 않지만, 많은 경우 하느님 말씀을 잘 전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주변의 눈치를 보느라 식사 때 감사 기도도 못 바치고, 신자라는 사실을 밝히기조차 꺼립니다. 자신이 없어서 이웃 사람을 성당으로 초대하지도 못하고, 짧은 화살기도를 소리 내어 바치기도 어려워합니다. 이런 모습들은 겸손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세상 것에 사로잡혀서 영적인 것에는 말문이 막혀 있는 것이지요. 정말로 주님을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그리고 복음 선포가 우리의 사명이라고 확신한다면 사람들의 눈치가 왜 두렵겠습니까? 세상 것이 마음속에 꽉 차 있어서 영적인 벙어리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현대판 마귀 들린 사람입니다. 우리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그 가치의 순서를 매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주님을 첫 자리에 두고 성령께 용기를 주시라고 청해야 합니다. 이웃과 나누는 대화는 ‘세속적인 대화’에서 ‘영적인 대화’로 바꾸어 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마음만 바꾸면 성령께서 반드시 도와주십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세상 아파하는 이들이 / 김태진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