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그리고 성

죽었다 깨어나도 못할일들

문성식 2011. 6. 9. 17:12

머리카락으로 짚신은 삼아줄 수 있어도, 이것만은 도저히 해줄 수 없다고 한다.
아무리 사랑해도 해줄 수 없는 섹스와 그것의 기술에 관해 해볼만큼 해본 그녀들이 입을 열었다.



가끔 섹스 중에 그와 나는 힘 겨루기를 한다. 힘으로 치자면 물론 그에게 당할 재간이 없지만 그래도 쉽게 ‘뒤집어’지지 않으려고 등으로 모든 힘을 모은다. 나는 정상위, 그러니까 얼굴을 마주보며 키스도 할 수 있는 그런 자세가 가장 안정적이고 좋다. 그의 등도 힘껏 안을 수 있고. 하지만 남편은 처음엔 ‘정상’적으로 잘 나가다가 은근슬쩍 뒤집으려고 한다. 뒤로 하고 싶은 거다. 그의 말로는 뒤로 하면 그의 성감대라는 페니스 시작 부근의 언저리가 엉덩이에 강하게 마찰되어 쉽게 ‘오르는’데다가 그의 양손이 내 가슴을 안을 수 있어 좋다고. 그러나 나는 뒤집히기가 싫다. 뒤집혀 그에게 엉덩이를 허락하고 있노라면 나는 거대한 구멍 같다. 그의 열정을 위한 구멍. 무언가를 느끼고 못 느끼고를 떠나서 그 자세 자체가 비굴하게 느껴진다. 게다가 체력적으로 그 자세는 매우 힘들다. 힘든 내색을 하면 그는 다시 뒤집어주는 아량을 베풀지만, 불판 위의 고기도 한 번씩만 뒤집혀야 육즙이 살아있다는데 그렇게 몇 번 뒤집히다보면 하기 싫다. 아예 뒤집어 뒤로 시작하자고 할 때는 말한다. 죽어도 그건 싫다고. 김지연(내과의사)

 
1, 3, 6, 9, 12월에 보너스가 나오는 직업의 남편을 가진 친구는 일년에 다섯 번, 보너스가 나온 날, 큰맘먹고 애널 섹스를 한다고 했다. 결혼 전, 유학 시절부터 8년을 함께 살아 온 남편과 안 해본 것 없이 다양한 섹스를 즐긴 나지만 도저히 할 수 없는 게 애널 섹스였는데 무려, 일년에 다섯 번이나 애널 섹스를 허하는 친구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심지어 그녀는 애널 섹스가 꽤 괜찮은 느낌이 있다고도 했다. 나는 보너스 아니라 보너스 할아버지가 나온 날이라고 해도 못 한다. 그 돈으로 그게 가능한 여자, 혹은 남자를 사라고 하겠다. 남편이 가끔 한 번만 하자고 하지만 잊을 수 없는 체험의 기억은 한동안 아예 섹스 자체를 하고 싶지 않게 만들었다. 이유를 알 수 없이 너무 들뜬 섹스를 하게 된 어느 날 저녁, 남편은 게이 친구의 말을 들은 게 틀림없는 애널 섹스의 강력한 자극에 대해 말했다. 그리고 바세린이 충분한 조력자가 되어 줄 거라며 꼬드겼다. 최고조였던 나의 흥분은 그것을 허락했고 그 결과로 며칠간 화장실에도 갈 수 없는, 어정쩡한 자세로 지내야 했다. 비명에 환호하게 길들여진 섹스하는 남자의 본성은 비명과 교성을 분별해내지 못하고 깊이 움직였다. 언제나 밖으로 무언가를 빼내던 그 기관에 밖에서 무엇이 들어온다는 것은 생경하고 불쾌했다. 무엇보다도 매우 아팠다. 그 짧은 순간에 그는 강한 자극에 대한 확신을 얻었는지 가끔 요구하는데 그때마다 이혼하고 게이와 살게 되면 그때 하라고 말한다. 죽어도 못 해준다. 더 잊을 수 없는 것은 애널을 끝낸 그의 콘돔 끝에 남아있던 어떤 것.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이 서로 함께 봐서는 안 될, 그야말로 ‘변’이었다. 전은주(MD)

<목구멍 깊숙이>가 포르노의 고전이자 명화의 반열에 든 유명작품이라는 말에 속지는 않았었다. 아무리 성감을 느끼는 신체 부위가 얼굴 생김처럼 다양한 것이라고 해도 목구멍을 통해서만 오르가슴을 느낀다는 게 말이나 되나? 양치질하다가 슬쩍 목젖만 건드려도 토할 것 같은데 목구멍에 페니스를 넣는다고? 불가해한 일이었다. 그러나 열심히 예습과 심화학습을 시킨 남자친구의 노력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었다. 나에게는 욕실에서 하는 것이 판타지이듯이, 그의 판타지는 오럴 섹스, 그것도 목구멍 깊숙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럴을 아주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즐기고 싶은 섹스는 아니었다. 일단 그 자세부터가 싫다. 로맨틱하게 키스를 하다가도 그가 내 머리를 슬슬 누르기 시작하면 슬금슬금 화가 난다. 머리를 세지 않게 아래로 미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밑으로 내려가, 그의 성난 페니스 보고, 만지고, 입에 넣어야 하는 것은 괴롭다. 상처가 날까봐 이가 닿지 않도록 입술로 오르내리다보면 오르가슴은커녕 기분이 다 싸늘하게 식는다. 그는 그것도 모르고 비행중이다. 참을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입 속에 들어오는 그의 치모다. 사실, 입 속에 있을 때는 불편함에 지나지 않지만 삼킬 수는 없으니 손가락으로 빼내야 할 때, 잘 꺼내어지지 않는 그것을 손가락으로 걸러내야 할 때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다. 게다가 사정? 그 맛을 보고 나면 한동안은 실온저장된 이온음료는 입에도 못 댄다. 그래도 그의 벅찬 숨소리를 들으면 멈출 수는 없지만 거기까지다. 더는 할 수 없다. 이지선(번역가)

씩씩과 박력이 미덕이라고 해도 마초는 싫었다. 울룩불룩한 가슴에 진동을 줘서 가슴 근육을 쿨렁쿨렁하던 막내삼촌의 기억은 별로였다. 마초들의 전형적인 외모는 물론, 배려 없는 행동이 남자답다고 여기는 그들의 대 이성관도 신물났다. 그래서 만나 사랑에 빠져 살고 있는 남편은 사랑스러운 애완견 타입이다. 언제나 다감하고 따뜻하고 충직하게 나를 지켜준다. 그러나 그의 살갑고, 그래서 때로는 아기 같은 행동이 불편한 순간도 있다. 귀엽고 천진한 모습이 침대에서 이어지면 영 파이다. 침대에서만은 마초이길 바랐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기가 엄마 젖을 먹는 형태의 애무를 해 올 때면 그의 등을 토닥여 줘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다. 거의 쭐쭐 소리가 나게 그러고 있는 남편을 보면, 짜증만 난다. 애정결핍 같은 정서적 결함이 있는 것 같다. 남자 어른, 그러니까 남편은 아내의 가슴을 모성으로 볼 수는 있어도, 자신이 체험해서는 안된다. 섹슈얼한 느낌은 그런 것으로 완전히 사라진다. 몇 번 얘기했지만 남편은 혀 짧은 소리로 “자기는 시더?” 한다. 나는 ‘시타!’ 안현정(대학원생)

후배위라는 전문 용어를 쓰고 싶지는 않지만 나는 그것을 하기 원하는 남자친구와 매번 섹스 중에 싸운다. 처음에도 싫었지만 그의 흥을 깰 수 없어 참았지만 요즘은 꼭 싸움으로 끝난다. 단지 뒤로 하는 자세만을 좋아한다면 싸움까지는 안 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꼭 내가 가장 싫어하는 포지션으로 진행하려고 한다. 자신은 서 있고 나는 무릎을 꿇려 기는 자세로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정점에 이르는 가장 싫은 행동은 중간 중간 진행을 중단하면서 그 사이에 엉덩이를 찰싹 소리가 나게 때리는 것이다. 그때마다 나는 그에게 변태라고 단정짓고 싸운다. 그는 싸움에 대응하지 않고 내 엉덩이가 어떻고 저떻고 하면서 환심사기에 애를 쓴다. 어쨌든 그가 지나치게 상승 기운을 타는 날이라면 처음부터 시작도 하지 않는다. 그가 군주고 나는 그를 받드는 궁녀가 아니다. 엉덩이를 맞은 날이면 노예 같은 기분이 들어 자면서도 불쾌하다. 아무리 말해도 못 알아듣는 척하지만 계속 엉덩이를 그렇게 찰싹 소리가 날 정도로 때린다면 나는 그와 섹스뿐만 아니라 관계 자체를 재고할 만큼 예민해 있다. 그것만 관둔다면 그는 굉장히 괜찮은 사람인데… 이미란(은행원)

난, 아무리 죽고 못 사는 사이라고 해도 용변이나 목욕할 때말고는 벗지 않는, 그래서 자신도 잘 보지 못하는 그곳을 서로에게 보이고, 또 접촉하고 한다는 사실이 결혼한 지 2년이 되었지만 때때로 어색하다. 남편은 그런 내가 처음에는 말할 수 없이 사랑스럽게 느껴졌단다. 나는 진짜로 창피했던 것인데 남편은 볼이 분홍색인 새색시의 신선함을 느꼈나 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남편은 그런 내가 답답하고 촌스럽단다. 그가 원하는 것이 그것이 아니라면 나도 점진적으로 개방하려고 했다. 하지만 단지 보겠다는 것만으로도 기겁을 하겠는데 그는 성인 영화에서나 볼 것 같은 식스티 나인의 자세를 집요하게 요구한다. 그것만은 죽어도 못하겠다. 그건 사랑이 아닌 것 같다. 커닐링구스만으로도 나는 한동안 애를 먹었다. 결혼 후 얼마 되지 않아 벌어진 일이라 다음 날 아침, 식탁에서 그의 얼굴을 보기조차 민망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견디기 어려웠던 건 면도하지 않은 얼굴을 그곳에 부벼올 때의 말할 수 없는 따가움을 그는 모를 것이다. 얼굴을 묻고 있다는 것도 괴로운데 물리적으로 아프기까지 했다. 그런데 교차자세라니… 나는 그것은 못한다. 죽어도 죽어도 못한다. 문주영(출판기획자)

<섹스 앤 더 시티>를 함께 보는 것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저런 여자들이 어디 있냐던 남자친구가 나중에는 먼저 채널을 찾았다. 그리고는 합법적으로 포르노를 보는 듯한 눈으로 즐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는 그런 날 함께 자게 되면 아까 사만다가 말야, 샬롯의 그 남자가 이랬던 거겠지 한다. 섹스가 어떤 영적인 감정의 교환은 아니더라도 그렇게 장난하듯, 역할 놀이하듯 하는 섹스에 나는 함께 즐거울 수가 없었다. 특히 샬롯의 모든 게 괜찮았지만 섹스 중에 심한 욕설을 자신도 모르게 하는 남자친구의 에피소드가 나왔을 때는 괴로웠다. 갑자기 섹스 중에 천박한 말을 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하더니 나중에는 그 말에 스스로 흥분이 되는지 정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장난으로 웃으며 넘겼지만 불쾌했다. 그 혼자 그런다면 화를 내고 말면 그만일텐데 사만다처럼 하길, 미란다처럼 움직이길 바라면 그만두고 싶다. 나는 그가 빅이 되길 원하지 않는데 그는 왜 내가 캐리여야 더 흥분하는지 이해할 길이 없다. 그러다가 그는 간호사 놀이, 지하철 교복 여학생 놀이도 하자고 할 것 같다. 나는 절대로 그와 함께 같이 욕을 하며 섹스를 할 생각이 없다. 장지숙(웹 디자이너)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직업은 그대로 두고 이름의 한 글자씩을 바꾼 가명을 썼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