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

제 2 장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도록- 2 -

문성식 2011. 2. 21. 00:14

그리스도의 투명체로서(사제 총회 강론)

 

 

오늘날 우리 나라는 너무 혼란스럽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이 모든 분야가 그렇고 가치관 부재에 온갖 범죄가 범람하고 모두가 개인적 집단적 이기주의에 빠져 있고 때문에 부익부 빈익빈의 격차는 더욱 심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우리 사회는 대단히 어둡습니다. 앞날이 어떻게 될지, 어쩌면 모두가 망할지도 모른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혼동되어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무엇이 구제책입니까? 어제 우리 주교 회의에서 어떤 주교님이 말씀하신 대로 누가 기적을 행한다고 될 것 같지 않고 누가 논리 정연한 이론을 편다고 사람들이 그것에 감복할 것 같지를 않습니다. 사회 정의를 외치고 비판을 하는 것도 이제는 사회에 참된 변화를 가져오는 데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무엇이 사회를 바꿀 수 있느냐? 저는 여기서 이봉우 신부님이 번역한 책 `상처입은 치유자'에 나오는 상처입은 치유자 이야기를 상기합니다. 어느 랍비가 선지자 엘리야에게 가서 나눈 이야기로서 자기도 상처입고 있으면서 자기도 치유가 필요하면서 자기만을 생각하지 않고 남을 생각할 줄 아는 마음, 남에게 향하여 열린 마음, 남과 고통을 나눌 줄 아는 마음, 그런 마음의 사랑, 이것이 오늘의 우리 사회와 우리 자신을 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마음을 지니고 이런 사랑을 살기 위하여 그리스도는 참으로 우리의 표양입니다. 우리의 길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는 우리가 찾는 진리 자체, 구원 자체 바로 우리의 생명이십니다. 그분은 사실 우리에게 있어서도 사도 바오로의 말씀대로 생의 전부입니다. 특히 우리들 사제들에게 있어서 그분은 참으로 생의 전부가 되어야 합니다. 신자들이 우리 사제에게 기대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신부님들의 모습에 어딘가 그리스도의 면모를 보는 것입니다. Transparens Christi 사제는 실로 그리스도의 투명체가 되어야 합니다. 사제의 삶의 모습에서 속인들에게서 보는 세속적인 것이 풍겨서는 안 됩니다. 사제의 삶의 모습에서 부자 기를 느끼게 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제는 참으로 복음의 예수님, 가난한 예수님, 겸손한 예수님, 병자나 죄인과 버림받은 이들에게 가까운 예수님, 이러한 예수님과 닮아야 합니다. 더 나아가 사제에게서는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시는 그 예수님의 모습을 어디선가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어둠 속에 절망 속에 빛이 될 수 있고 죽음 속에 부활의 기쁜 소식을 힘차게 선포할 수 있습니다. 누구에게 보다 앞서 사제인 우리에게 있어 그리스도는 길이십니다. 우리는 진정 그리스도와 함께 길을 가야 합니다. 함께 살아야 합니다. 함께 고통을 겪고 함께 죽어야 합니다. 그 때 우리는 예수를 닮은 사제로 백성 앞에 설 수 있습니다.

(1990. 11.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