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

제 2 장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도록 - 4 -

문성식 2011. 2. 21. 00:09

 

그리스도를 끝까지 따르며(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종신 서원 강론)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열다섯 분의 수녀님들이 종신 서원을 하는 거룩한 미사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수녀님들이 오늘 바치는 종신 서원의 뜻 그대로 죽기까지 수도 성소에 충실하며 사랑과 봉사에 모든 것을 바치는 거룩한 수녀님들이 되실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수녀님들은 스스로 예수 성심 시녀들이라고 부릅니다. 그것은 아마도 겸손과 사랑 자체이신 예수님의 마음을 닮아서 모든 이에게 겸손되이 사랑으로 봉사하는 성심의 여종들이라는 뜻일 것입니다.

버림받은 자를 위한 봉헌
한 15, 16년 전 저는 신부로서 서정길 대주교님의 분부를 받들고 이 수도원에 와서 그 때도 착복 또는 서원을 앞둔 수녀님들을 약 30여 명 면접한 일이 있습니다. 제가 여기 왔을 때에는 수녀님들의 영성에 대해서 일종의 호기심을 가졌습니다. 나쁘게 말하면 이 수도원에 뚜렷한 영성이 있을까 하는 의심도 곁들인 호기심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에게는 "왜 하필 이 수도원에 왔느냐?" 당시로 말하면 이 수도원은 전체적으로 교육 수준도 다른 수녀원에 비해서 낮은 편이라 교회 내에서도 이류 수녀원이라는 평도 있을 때였기 때문에 "왜 다른 수녀원에 가지 않고 왜 이 수녀원에 왔느냐? 그런 멸시를 받을 각오를 하고 왔느냐? 그런 평이 있다는 것을 알고 왔느냐?" 하는 식으로 직설적으로 물어 보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 그런 평을 알고 왔다는 이도 있었고 모르고 왔다는 이도 있었지만 한결같은 답은 그런 평에는 구애받음 없이 "이 수녀회는 의지할 곳 없는 어린이나 노인들, 불구자, 심지어 나환자 등 가장 보잘것없는 이들에게-세상 다른 곳에서는 잘 돌보지 않는 사람들, 버림받은 사람들을 예수님의 마음으로 형제적 사랑으로 돌보는 수도회이기에 왔습니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때 참으로 감명을 받았습니다. 이 수도회 수녀님들이 이같이 겸손과 사랑의 마음을 가진 한 이 수녀회는 반드시 하느님의 은총 속에 크게 성장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과연 오늘 이 수도회는 이 정신의 바탕 위에 크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저는 또 이 수도회의 근본 정신은 `빵 부스러기 정신'이라고 들었습니다. 마태오 복음 15장 21절에서 28절에 보면 가나안 여자의 믿음에 관한 아름다운 이야기가 나옵니다. 중병에 걸린 딸을 위해서 "주님, 제 딸을 구해 주십시오."라고 간청하는 여자에게 주님은 그 여자가 이방인의 여자임을 아시고 "나는 이스라엘 백성을 먼저 돌보러 왔다." 하시고 거절했습니다. 그렇게 거절을 당하면서도 다시 도움을 청하는 여자에게 이번에는 매정하게 "자녀들이 먹을 빵을 강아지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고 아주 멸시하다시피 거절하셨습니다. 그 때 여자는 "주님, 그렇긴 합니다만 강아지도 주인의 상에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주워 먹지 않습니까." 하고 말했습니다. 이 말에 예수님은 깊이 감동하시어 "여인아, 참으로 네 믿음이 장하다. 네 소원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그 순간에 그 여인의 딸이 나았습니다. 이 장면이야말로 예수님의 많은 기적 중에서도 정말 아름답습니다. 이 빵 부스러기에서 여인의 깊은 믿음과 또한 겸손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정신을 이 수도회는 지니고 산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지금도 이 정신이 살아 있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살아 있기를 바랍니다. 그 어느 편이든 저는 오늘 종신 서원하는 수녀님들, 나아가서는 이 수도회가 이 같은 깊은 믿음과 겸손, 그리고 앞서 말한 가장 보잘것없는 이들에게 바치는 사랑의 정신을 가지시기를 참으로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빵 부스러기가 된 그리스도
빵 부스러기에 우리는 여인의 깊은 믿음과 겸손을 볼 뿐 아니라, 예수님 스스로를 봅니다. 왜냐하면 어떤 의미로 예수님이 바로 그 빵 부스러기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은혜는 곧 예수님 자체이십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일부인 무엇을 주심으로써 남을 구하시는 것이 아니고 당신 전부를 주심으로써 구하십니다. 여인의 딸을 고쳐 준 것은 예수님의 기적의 능력만이 아니라, 그것은 사랑이요 사랑으로 당신 자신을 주심으로써 이룩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친히, 비록 강아지일망정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빵 부스러기라도 얻을 수 있지 않습니까 하는 여인에게 당신을 주심으로 당신이 빵 부스러기와 같이 되신 것입니다. 이것은 앞에 말한 이 수도회의 정신, 즉 가장 보잘것없는 이들, 다른 어디서도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 인간으로서의 인정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여러분만은 받아들이고 사랑으로 돕는 정신과 같은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현세적 가치관으로 볼 때에는 부스러기 인생과 같습니다. 잘 먹고 잘 입는 부자들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쓰잘 데 없는 부스러기와 같은 존재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바로 먼저 이들을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래서 루가 복음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성령이 내게 내리셨다.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주께서 나를 보내시어 묶인 사람들에게 해방을 알려 주고 눈먼 사람들은 보게 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주며,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스스로 가난한 자, 묶인 자, 억눌린 자 되시고 사회로부터 버림받고 소외된 자 되셨습니다. 드디어 누구도 용납하지 않는 대죄인과 같이 만인의 조소와 천시 속에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그는 참으로 이사야가 말했듯이 거기서 으스러졌습니다. 그는 몸소 우리의 허약함을 지시고 우리의 병고를 짊어지셨습니다. 그는 진실히 부서진 존재, 부서진 빵 부스러기가 되신 것입니다. 부서지고 짓이겨진 빵이 되셨습니다. 그 때문에 예수님은 마태오 복음 25장에서 보듯이 굶주린 자, 헐벗은 자, 목마른 자, 나그네같이 고독한 자, 옥에 갇힌 자와 당신을 동일시하시고 "그들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곧 나에게 해준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서원하는 수녀님들의 종신 서원은 바로 이 같은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오늘 성모 통고 축일이 말하듯이 성모 마리아와 같이 예수님을 그 탄생에서 십자가까지 따르는 것입니다. 특히 십자가를 목표 삼아서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스스로를 가장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남을 위해 쪼개지고 부서진 빵처럼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전적인 자기 봉헌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의 길을 남김없이 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럴 때만이 진실히 자신을 빵 부스러기처럼 가난한 자들의 식사를 위해 내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또한 성모 마리아의 길입니다. 오늘은 때마침 그 성모님의 통고 축일입니다. 성모님의 통고란 바로 성모님께서 그리스도와 함께 오늘 복음에서 보듯이 십자가의 고통까지 남김없이 나누시는 것입니다. 그런 성모님이었기에 성모님은 육신으로만이 아니라 영적으로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시는 어머니 되시고 교회의 어머니, 하느님 백성 전체의 어머니 되십니다.

(1980. 9.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