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얼굴
사람의 얼굴에서 신의 모습을 본다는 말도 있지만,
사람의 얼굴을 말없이 바라보노라면
문득 안스럽고 가엾은 연민의 정을 느낄 때가 많다.
개인적이거나 사회적인 처지로 보아
몹시 미운 놈일지라도 한참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으면,
미운 생각은 어디라도 돌려 세위보면 그 뒤뜰에는
우수의 그늘이.
인간적인 비애가 서려 있다
얼굴은 가려진 내면의 세계를 드러내고 있다
환한 얼굴과 싱그러운 미소로써
기쁨에 넘치는 속뜰을 드러내고
그늘진 표정과 쓸쓸한 눈매로써
우수에 잠긴 속마음을 표현한다
그러므로 얼굴은 얼의 꼴이다.
요즈음, 만나는 사람마다
사는 재미가 없다고들 한다 그러고보니
얼굴마다 수심이 서리고 굳어 있는 것 같다
이것이 80년대의 얼굴인가.
우리가 기대하던 그런 얼굴이란 말인가
내 입에서도 곧잘 재미없는 세상이란 소리가 새어 나온다
언제는 깨가 쏟아지게 신나고 재미있는 세상이었던 것처럼
한입 두입 <재미없는 세상>이라고 뇔때,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 세상은 돌림병처럼
온통 재미없는 것으로 가득 채워지고 말 것이다 .
그렇지 않아도 별로 재미가 없는 세상을
말로써 거듭거듭 다질 때,
어쩌다 움터 나올 재미도 그 싹을 틔울 수 없게 된다.
어차피 우리가 사는 세상은 낙원이 아닌 사바세계.
사바세계란 그 어원은 범어에서 온 말인데
'참고 견디면서 살아가는 세상'이란 뜻이다
참고 견디면서 살아온 데 길이 든 우리는,
또 참고 견디면서 살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 법정 스님 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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