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토릭 성지

경북 칠곡군***한국 천주교 순교자 聖地 순례ㅡ칠곡군 지천면 연화리ㅡ신나무골 순교자 聖地

문성식 2022. 8. 27. 09:07

한국 천주교 순교聖地ㅡ경북 칠곡군 지천면 연화리ㅡ신나무골 순교자 성지




영호남 지방의 선교 요람지인 신나무골에는 1815년 을해박해 때 성 김대건 신부님의 증조부인 순교자 김종한 안드레아 가정이 옥바라지를 하기 위해 살기 시작하였고, 1827년 정해박해 이후 서울과 경기도, 충청도에서 피난 온 신자들이 이곳에 교우촌을 이루며 살았다.


1837년 싸스땅 신부와 성 홍병주 베드로, 성 홍영주 바오로 회장 등 역대 파리 외방 전교회 신부들과 전교회장들이 이곳을 왕래하며 전교하였고, 1849년부터 1861년까지 최양업 신부가 경상도 지방포교 활동을 위해 거점으로 삼았던 곳이다


그리고 1860년 경상도 지방 박해 때 이곳에서 한티로 피난하여 순교한 이선이 엘리사벳과 그의 장남 배도령 스테파노가 살았던 곳이기도 하다.


유서 깊은 교유촌인 이곳 신나무골은 좁게는 칠곡군 지천면 연화동 중화리(中和里)를 중심으로 한 '신나무골'을 의미하지만 넓게는 도암, 완정, 왜관의 가실, 동명의 어골 등 인근의 신자촌을 모두 포함하기도 한다.


대구에서 서북 방향으로 약 20킬로미터가량 떨어진 신나무골은 박해 시대 교우촌으로서 필수적인 조건인 외지고 깊숙한 산골이라는 점 외에도 대구 읍내에서 하루 거리라는 점에서 교통의 편리성 또한 교우촌으로서 매우 장점이었다.


신나무골 성지 위치도


▲신나무골 성지


▲신나무골 성지


▲신나무골 성지


▲신나무골 성지 안내판


▲신나무골 성지 안내판


▲이선이 엘리사벳의 묘


신나무골에는 병인박해 당시 큰아들과 함께 작두에 목이 잘려 순교한 이선이 엘리사벳의 유해가 묻혀있다.


1860년 경상도 지방 박해 때 이곳에서 한티로 피난하여 순교한 이선이 엘리사벳과 그의 장남 배도령 스테파노가 살았던 곳이기도 하다. 생나무를 깎아 만든 14처와 묘소 한쪽에 잘 보존돼 있는 옛 제대가 있다.


이선이의 남편인 성산 배씨(星山裵氏) 배정모는 원래 성주가 고향이었으나 칠곡으로 옮겨 와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그리 넉넉하지는 못했으나 착실한 신앙 생활을 해 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던 중 1861년 경상도 지방에 박해가 일어났는데 칠곡읍은 특히 칠곡 고을을 중심으로 관아(官衙)가 있었기 때문에 신자들에 대한 감시가 꽤 심했다. 배씨 가족은 박해를 피하기 위해 칠곡읍에서 20여리 떨어진 신나무골로 피난을 했지만 이곳에도 포졸들이 들이닥쳐 신자들은 경황없이 뿔뿔이 흩어졌다.


배정모와 부인 이선이 그리고 세 아이는 한티 쪽으로 쫓기는 발걸음을 서둘렀다. 2월의 매서운 겨울 바람 속에서 이들은 갖은 고생 끝에 한티의 사기굴이라는 곳에 도착해 잠시 숨을 돌렸으나 결국은 뒤따라 온 포졸들에게 잡히고 만다.


굴 밖으로 끌려 나온 이들을 향해 포졸들이 "성교를 버리지 않으면 죽여 버리겠다."고 엄포를 놓자 겁에 질린 배정모는 배교를 하고 풀려난다. 하지만 부인 이선이와 맏아들 배도령은 "죽어도 성교를 믿겠다."고 하며 신앙을 지킨다. 그 대가는 너무도 가혹했다.


포졸들은 그 자리에서 시퍼런 작두날로 이들의 목을 잘라 모자가 한자리에서 순교하게 된다. 남편은 가슴을 후벼파는 뼈저린 아픔 속에 부인과 맏아들의 시체를 그 자리에 묻었다가 얼마 후 선산이 있는 대구시 북구 읍내동(안양동) 산21번지에 위지한 선산에 모셔져 있었다.


그러다가 신나무골 성역화 사업의 일환으로 1984년 왜관 성 베네딕도 수도회의 주선으로 이곳 신나무골로 이장된 것이다.


▲이선이 엘리사벳의 묘


▲이선이 엘리사벳의 묘


▲이선이 엘리사벳의 묘


▲이선이 엘리사벳의 묘


▲이선이 엘리사벳의 묘


▲이선이 엘리사벳의 묘 / 성모상


▼십자가의 길


▼십자가의 길


십자가의 길 1처


십자가의 길 2처


십자가의 길 3처


십자가의 길 4처


십자가의 길 5처


십자가의 길 6처


십자가의 길 7처


십자가의 길 8처


십자가의 길 9처


십자가의 길 10처


십자가의 길 11처


십자가의 길 12처


십자가의 길 13처


십자가의 길 14처


▲대구교회 첫 본당터


▲대구교회 첫 본당터


▲본당 터


▲본당 터


▲대구교회 첫 본당터


▲성모 상


▲대구 교회


▲김보록 신부 흉상


▲이주연 야보고


▲전시실


▲신나무골 성지마을


▲신나무골 성지마을


▲신나무골 성지마을


천주교 대구교회 첫 본당터


천주교 대구교회 첫 본당터


천주교 대구교회 첫 본당터


천주교 대구교회 첫 본당터


▲대구 천주교 요람지 기념비 


신나무골 성지로 건너가면 오른편에 이선이(엘리사벳)의 묘가 있고 마을안에는 대구의 첫 본당터라는 옛 건물이 있다. 사제관과 신나무골 학당 등 이곳에 처음으로 본당이 생겼을 때 성당이 지역주민에게 어떤 일을 했었는지 알 수 있다.


신나무골은 1894년 왜관 가실 본당 소속의 공소였다가 1926년 왜관 본당에 소속되었고 1968년 신동 본당이 설립된 후에는 다시 신동 본당에 속하게 되어 지금에 이른다.


1973년 성지 개발 기금을 모금하면서 시작된 신나무골 성역화는 1977년 제1차 사업을 완수하고 이곳에 영남 교회 선교 요람 기념비를 세웠다.


1984년 한국 천주교회 창립 200주년을 맞아 왜관 성 베네딕도 수도회의 주선으로 순교자 이선이(엘리사벳)의 묘소를 이장하고 대구 본당의 첫 본당 터를 복원하여 로베르 신부의 사제관과 신나무골 학당, 전시관을 복원했으며 로베르 신부의 흉상을 건립했다.


1831년 조선 교구 창설 후 1837년부터는 파리 외방 전교회 소속 샤스탕 신부가 신나무골과 언양 등지에 머물면서 한반도 남쪽 지역을 맡아서 순회 전교를 하기 시작했다.


1839년 기해박해로 샤스탕 신부가 순교한 후에는 다블뤼 신부가, 1849년부터 1861년 6월까지 12년간은 최양업 신부가 신나무골을 방문하여 성사를 주곤 했다.


최 신부가 과로로 쓰러진 후에는 다시 다블뤼 신부와 리델 신부가 이 지역을 맡아 오다가 1866년 병인박해로 신나무골의 신자들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하지만 박해가 잦아들면서 신자들은 다시 신나무골로 모여들었고 1882년부터는 삼남 지방 선교에 지대한 역할을 한 로베르(Robert, 金保 ) 신부가 순회 전교를 하기 시작했다.


1896년 한불 조약으로 신앙의 자유가 어느 정도 보장이 되면서 로베르 신부는 이곳 신나무골을 거점으로 삼아 활발한 전교 활동을 펼쳤다. 그 후 30여 년에 걸친 로베르 신부의 사목 활동은 이 지역에 복음이 확고히 자리 잡는 데 거의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보록 (로베르) 신부상


1815년 을해박해 당시 청송의 노래산, 진보의 머루산, 일월산중의 우련밭과 곧은정에 살던 신자들이 박해를 만나 200여 명이 체포된다.


그러나 그들 중 많은 신자들이 배교, 석방되거나 옥사해 겨우 33명만이 대구 감영으로 이송된다. 이 때 체포된 신자들의 가족이나 다른 신자들이 임진왜란 때의 피난지이기도 했던 신나무골로 숨어들었던 것으로 학자들은 추측하고 있다.


신나무골은 1815년, 1827년의 지방박해인 경상도 교난과 1839년 기해박해를 겪던 교우들이 피난 하여 살았던 곳으로, 1886년 대구로 부임된 로베르트 신부가 이곳에 체류함으로써 전교기지이자 신앙의 요람이 된 곳이다.


또 1850년경의 박해를 피하여 온 10여 호의 교우 가족들이 옹기를 굽고 화전을 일구며 생활한 흔적이 남아 있어, 교난을 피해 산중으로 은거한 신자들을 돌보던 다블뤼 안 주교, 최양업 신부, 리델 이 신부가 영남 일대를 다닐 때 한티에 전교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한티에서 30리 떨어진 신나무골의 교우들도 한티 공소에서 성사를 본 것으로 추측된다.


▲샤스땅 신부


▲다블뤼 주교


▲최양업 신부


▲이복명 주교


▲이선이 엘리사벳 유언


▲1882~~1885년 교세통계


▲전시관 내부


▲이성이 엘리사벳 두개골 사진


▲엘리사벳 이장 사진


▲이선이 이장 기록


▲이선이 족보


▲기도실


▲명상의 집


영남지방의 복음화에 헌신했던 로베르 신부는 또한 교육 사업에도 큰 관심을 기울여 속칭 '연화 서당'이라 불리는 신나무골 학당을 설립했다. 이 학당에서는 1920년 신동에 초등 학교가 설립될 때까지 한문을 포함한 천주교 교리도 가르쳤으며 서양의 학문을 많이 가르쳤다. 신나무골 학당은 신학교를 제외하고 한국에서 가장 먼저 외국의 학문을 가르친 학당이었다.


▲엘리사벳 의 집


▲엘리사벳 의 집


▲엘리사벳 의 집


◆십자가의 길 14 처(The Via Dolorosa)


제1지점 : 빌라도 법정에서 예수가 재판을 받은 곳.


제2지점 : 예수가 가시관을 쓰고 홍포를 입고 희롱당한 곳.


제3지점 :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가다 처음 쓰러진 곳.


제4지점 : 예수가 슬퍼하는 마리아를 만난 곳.


제5지점 : 시몬이 예수 대신 십자가를 진 곳.


제6지점 : 성 베로니카 여인이 예수의 얼굴을 닦아준 곳.


제7지점 : 예수가 두번째로 쓰러진 곳.


제8지점 : 예수가 여인들을 위로한 곳.


제9지점 : 예수가 세번째로 쓰러진 곳.


제10지점 : 예수가 옷 벗김을 당한 곳.


제11지점 :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힌 곳.


제12지점 : 예수가 십자가 위에서 운명한 곳.


제13지점 : 예수의 시신을 놓았던 곳.


제14지점 : 예수가 묻힌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