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기독교 기본교리 제10장 구원론(하)

문성식 2021. 3. 5. 09:30

 

 

 

     기독교 기본교리 제10장 구원(하)

 

 확신(Assurance)과 안전(Security)

신약에서 가장 큰 위안을 주는 교리 중 하나는 사람이 일단 구원받으면 다시는 잃어버린 바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지금" 구원받았다는 것을 아는 것이 확신입니다. 또 자기가 "영원토록" 구원받았다는 것을 아는 것이 안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전자는 가지고 있지만 후자는 불가능하다거나 혹은 받기엔 너무 염치없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불행하게도 자칭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사람들 중 어떤 이들은, 이 두 가지 중 어느 것도 소유하지 못했습니다. 이 진리에 대한 문제들의 대부분은 잘못된 가르침, 타고난 두려움, 그리고 구원이 정말 무엇인지 오해하고 있는 것들로부터 생깁니다.

확신에 대해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요일 5:13, 3:1과 요 3:36, 5:24을 주의해서 상고해보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들은 확신에 대한 유명한 구절 중 일부입니다. 물론 더 있습니다. 믿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주로 확신을 얻게 됩니다. 우리 구원의 기초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입니다만, 우리 확신의 기초는 하나님께서 그렇다고 친히 말씀해주시는 것입니다("나 보내신 이를 믿는…").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시거나 마음을 바꾸실 수가 없는 분입니다.


구원의 또 다른 두 가지 증거로 그리스도인의 체험과 성령님의 내적인 증거입니다. 체험은 우리의 감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우리 감정은 날씨와 건강과 환경에 따라 변합니다), 하나님께 속한 것들을 깊이 의식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만일 누군가 가진 교리가 잘못되었다든지 혹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떠나서 살고 있다면 물론 그가 겪는 체험은 별로 격려가 되지 못할 것입니다!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체험에는 형제 사랑과(요일 3:14, 롬 8:29), 성경을 이해하고 간절히 사모하는 것(고전 2:14), 죄에 대해 책망을 받는 것(요일 1:5-10, 3:7-14), 착한 행실(약 2:14-16), 하나님이 자기 아버지임을 의식하는 것(마 11:27)과 자기 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를 의식하는 것(고후 13:5), 그리고 그리스도를 믿는 이 믿음을 다른 사람들도 함께 가지기를 간절히 소원하는 것 등이 들어갑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속에서 하시는 사역은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케 하는 것과(롬5:5), 우리를 인도하는 것과(롬 8:14), 우리에게 증거 하시는 것(롬 8:16)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회심할 때 느낀 감정이나 우리가 들은 설교방식이 나 또는 우리가 복음을 완전히 이해했는가 보다는, 우리가 무엇을 믿는가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얻는 구원의 복음을 믿었습니까? 우리가 믿음의 손을 내밀어 주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선물로서 구원을 받았습니까? 만일 그렇게 했다면 우리는 구원받았다는 절대적인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영원한 안전에 대해 상고해 보겠습니다. 지금 구원을 받았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고 새 생명의 증거들도 가진 많은 사람들이 가장 중요한 의문을 아직도 갖고 있습니다. 곧 "진실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혹 그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나?" 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타락한 사람"은 구원을 잃고 지옥에 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만일 우리가 무조건적인 영생을 확신한다면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 없기 때문에 계속 죄를 지으며 살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 자녀를 징계하시되 때로 죽게도 하시며 이렇게 하심으로써 자기 자녀들의 죄를 다루신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부정한 자와 호색하는 자는 다만 거짓 신자요 십자가의 원수일뿐입니다(엡 5:5,6, 빌 3:18,19).


성경은 안전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씀할까요? 요10:27,28과 벧전 1:5, 요 11:26, 딤후 1:12, 히 7:25, 유 24절을 읽어보십시오. 이 구절들 중 맨 마지막 말씀에 나오는 "능히… 하실 자"라는 부분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안전의 참된 열쇠입니다. 신자들은 그 믿음 가운데서 인내해야 됩니다. 신자는 실제로 이렇게 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를 보존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내의 이러한 양면성은 빌 2:12,13에서 보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끝까지 인내함으로 구원을 이루는 것은(수학 문제 풀이처럼)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초자연적으로 역사하고 계시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이와 같이 디모데후서 2:19에서도 말씀하기를 그리스도인으로 자처하는 사람들은 악에서 떠나야 합니다(사람 편에서). 이는 주께서 자기 백성들이 누구인지 아시기 때문입니다(하나님 편에서).


사람이 일단 구원받으면 영원히 구원받은 것이라고 가르쳐 주는 다른 구절들이 많이 있습니다. 만일 구원이 조건적이라면 "영원한 생명"이라는 말조차도 모순이 되고 말 것입니다. 로마서8:31-39은 네 가지 수사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과 더불어 거기에 대한 하나님의 답도 제시하고 있으며 이 모두는 어떤 것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끊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의심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다른 구절들로는 요 6:37,39, 롬 11:29, 고전 1:8,9, 빌 1:6, 엡 4:30이 있습니다.


사람이 자기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처럼 보이는 구절들이 일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만, 이것은 문맥을 무시한 채 그 구절들만 따로 떼어 이해할 때 생기는 오해일 따름입니다.
마태복음24:13은 흔히 그 문맥을 무시한 채 인용하여 교회시대에 대해서 잘못 적용하고 있는 구절입니다. "구원받은"이란 단어는 헬라어로 "건짐 받은"이란 단어와 동일합니다. 이 구절은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자들이 자행하는 대학살과 환난을 견디어내는 유대인들이 건져내어 질 것이라고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정말 믿는 자들임을 나타내는 것은 바로 그들이 "끝까지 견디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에스겔 33:7,8을 써서 만일 우리가 잃어버린 바 된 영혼들에게 경고하지 않는다면 우리 자신의 영혼도 잃어버리고 말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이 구절은 이스라엘을 경고하라고 선지자 에스겔에게 가르치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들의 교회에게 말씀하는 것도 아니며, 에스겔이 자기 영혼의 구원을 잃게 될 것이란 말씀도 아닙니다. 물론 그리스도인들은 잃어버린 바 된 영혼들에게 경고해야 되지만, 에스겔서가 그렇게 해야 할 증거를 담고 있는 책은 아닙니다!


디모데전서 4:1,2은 배도자들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믿는다고 거짓으로 고백하지만 실제로 거듭난 적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 구절에서 "그 믿음"이라 한 것은 그리스도께 대한 개인적인 믿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배도자들에게는 이 개인적인 믿음이 없음), 기독교인다운 신앙을 가리키는 것임을 주목하십시오.
베드로후서 2:1-22에 나오는 거짓 교사들은 단지 잠정적인 측면에서만 사신 바 되었습니다. 이 구절에서는 이 사람들이 실제로 거듭난 적이 있었는지 전혀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 사람들이 개들이라고 불리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먼저 이들이 부정한 이방인임을 보여줍니다.


믿는 자의 영원한 안전을 부인하고 있다고 제시되는 많은 구절들이 사실은 단지 믿는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이나 개심(改心)한 사람들을 가리키고 있으며 이들은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마태복음 13:1-8은 넘어지는 자들에 대한 예를 들고 있지만 이들이 진짜 구원을 받았음을 보여주는 말씀은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5:1,2와 히 3:6에 있는 굳게 지키는 것이 구원받았다는 증거이기는 하지만 구원받는 조건은 아닙니다.


요 15:6은(어떤 사람들에게) 가지가 제하여져서 잃어버린 바 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리스도는 여기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제자들에게 열매 맺는 것에 대해 말씀하고 계시지 구원에 대해 말씀하시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가지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열매 맺는 자리에서 쫓겨나 던지우게 됩니다.
히브리서 6:1-8은 믿는 자들이 구원으로부터 "떨어져서" 잃어버린 바 될 수 있다고 가르치는데 흔히 사용되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견해는 히브리서 전체의 맥락과 반대되는 것입니다. 이 서신은 그리스도께서 죽으신지 얼마 되지 않아 유대 배경을 가진 신자들에게 쓴 것이며 몇 가지 매우 특별한 권면과 경고를 담고 있습니다. 이 서신은 믿는 자들에게 유대교의 의식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실재성 속에서 성장하라는 권고를 하고 있습니다(히 6:1-3). 이 서신에는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거짓으로 고백하는 유대인들에게 주는 매우 심한 경고도 몇 가지 들어 있습니다(히 2:1-3, 3:7-13, 6:4-8, 10:26-31).

 

이런 사람들은 지적으로는 복음의 비췸을 얻었습니다(그러나 영적으로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이들은 하늘의 은사를 맛보았고, 겉으로는 성령에 참여하였으며,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그리스도와 사도들의 능력 있는 역사와 이적들)도 맛보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영적인 기회를 가졌으면서도 이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베푸시는 복 받기를 거부하고 유대교의 죽은 의식으로 돌아가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이런 사람들 게는 소망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모든 것을 주셨지만 이들은 의도적으로 자기들에게 베풀어진 기회의 문을 닫고 말았습니다. 구원으로 들어가는 문간에 서서 이들은 그리스도를 배척하는 쪽을 택했으며 그리하여 현저하게 그리스도를 욕보였습니다(히 6:6 하반절).


이 구절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들에게 적용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오늘날 기독교를 연구하고 자기 주위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목도(目睹)하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그리스도를 거부하기로 결심을 굳히고 있는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더 이상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직 영원한 심판만이 있을 뿐입니다.
갈라디아서5:4은 "은혜에서 떨어지는 것"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은혜로 사는 고차원적인 삶에서 율법주의라는 열등한 삶의 원리로 추락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떨어진다"는 말에 들어있는 개념은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골 1:21-23이나 고전 9:27, 그리고 요 13:8과 같은 구절들도 가끔 이것과 관련해 인용되기도 합니다만, 사실 이 구절들은 믿는 자들이 상급을 잃어버리거나 아니면 교제가 끊어지게 되는 것에 대해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삼위일체의 각 위께서 지니신 속성과 하시는 일이 영원하고 확실한 구원을 보장해주고 있습니다. 구원의 성격 자체가 영원한 안전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이 구원은 근원이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택정받은 것과 연관이 있으며 또한 이 구원은 전적으로 은혜로 말미암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무슨 내세울 것이 있어 구원을 얻은 것이 아닙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무슨 부끄러운 점이 있다고 해서 구원을 잃어버리는 것도 아닙니다. 구원은 다 이루어진 것입니다(요 19:30).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안전을 주신 것은 그분을 예배하고 찬양하는 일에 분발케 하기 위함이며(유 24,25: 벧전 1:3-5), 거룩한 삶을 살게 하는 자극제로서(엡 4:30, 시 55:23), 또 그분을 섬기려는 동기가 일어나게 하려고 주신 것임을 친히 우리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고전 15:58). 우리의 영혼과 섬김에 대한 상급은 안전합니다. 우리는 "결코 멸망치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