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교구 > 인언민 마르티노 사적지
간략설명 | 기쁜 마음으로 천주님께 목숨을 바친 순교자의 고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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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번주소 | 충청남도 예산군 삽교읍 용동리 270-23 |
전화번호 | (041)338-1924 |
팩스번호 | (041)338-1923 |
홈페이지 | http://cafe.daum.net/sapkyocatolic |
관련기관 | 삽교 성당 |
관련주소 | 충청남도 예산군 삽교읍 신가꽃산길 111 |
현재 삽교 성당 관할구역인 용동 3리의 배나드리 교우촌 인근 용동 2리 일명 하룡 마을에는 순교자 인언민 마르티노 사적지가 있다. 이곳은 본래 예산 본당 관할의 주례 공소 강당이 있던 곳이었다. 1967년 예산 본당에서 삽교 본당이 분가되면서 공소가 폐지되고 강당이 헐리게 되자 공주에서 체포되어 해미에서 순교한 인언민 마르티노 순교자를 기념하는 사적지로 조성하였다. 용동리는 2014년 8월 16일 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동료 123위와 함께 시복된 인언민 마르티노 순교자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1737년 충청도 덕산 주래(현 충남 예산군 삽교읍 용동리)의 양반 집안에서 태어난 인언민 마르티노는 온순하면서도 꿋꿋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또 어려서부터 학문에 정진하여 상당한 학식도 쌓게 되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평소에 알고 지내던 황사영(알렉시오)을 만나면서 천주교 신앙을 접하게 되었고, 이내 그로부터 교리를 배운 뒤 한양으로 올라가 주문모(야고보) 신부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이때 인 마르티노는 장남 요셉을 신부 곁에 남겨두었으며, 얼마 후에는 차남을 유명한 교우의 딸과 혼인하도록 하였다. 그러고 나서는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위해 집과 재산을 버리고 공주로 이주하였다. 이때 친척들이 그의 행동을 이상하게 생각하자, 그는 이주하는 이유를 솔직하게 고백하면서 천주교 교리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었다. 그러나 친척들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1797년에 시작된 정사박해가 한창 진행되던 어느 날, 인 마르티노는 공주 포졸들에게 체포되었다. 그러자 그는 자신이 천주교 신자라는 것을 밝히고, 천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기를 원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고백한 뒤 옥으로 끌려갔다. 그런 다음 청주로 이송되어 심한 고문을 당하였으며, 감사의 명에 따라 다시 그의 고향을 관할하던 해미 관장 앞으로 이송되었다.
인언민 마르티노는 청주에서 받은 형벌로 인해 걸을 수조차 없었다. 그러므로 청주에서 해미까지 가는 동안 조정 관리들이 이동할 때 사용하는 말을 타고 가야만 하였다.
해미 옥에서 인 마르티노는 젊은 이보현(프란치스코)을 동료로 만나게 되었다. 이후 그들은 언제나 서로를 권면하였고, 갖은 형벌과 문초와 유혹 아래서도 전혀 변함이 없이 신앙을 고백하였다. 그러자 관장은 어쩔 수 없다는 판단 아래, ‘인언민도 이보현과 같이 때려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형리들은 관례에 따라 사형수에게 주는 마지막 음식을 인언민 마르티노에게 갖다 준 뒤, 그를 옥에서 끌어내 매질을 가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그중의 하나가 엄청나게 큰 돌을 들어 그의 가슴을 여러 번 내리쳤다. 이내 그의 턱이 떨어져 나가고 가슴뼈는 부서지고 말았다.
결국 마르티노는 이러한 형벌로 인해 죽음에 이르게 되었으니, 그때가 1800년 1월 9일(음력 1799년 12월 15일)로, 당시 그의 나이는 63세였다. 마지막으로 매질을 당하는 동안에도 그는 여러 차례 다음과 같이 되뇌었다고 한다.
“그렇구 말구. 기쁜 마음으로 내 목숨을 천주님께 바치는 거야.”
현재 이곳 순교사적지에는 “순교자께 영광”이란 글귀를 새긴 돌과 순교자 인언민 마르티노 기념비가 설치되어 있고, 십자가 모양으로 조성한 정원 한 가운데 육중한 자연석으로 만든 야외제대와 입구에 순교자에 대한 설명을 담은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출처 : 사적지 안내판, 내용 일부 수정 및 추가(최종수정 2014년 8월 20일)]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모바일용 요약 설명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삽교 성당 관할구역인 용동 3리의 배나드리 교우촌 인근 용동 2리, 일명 하룡 마을에는 순교자 인언민 마르티노 사적지가 있습니다. 이곳은 본래 예산 본당 관할의 주례 공소 강당이 있던 곳이었으나 1967년 예산 본당에서 삽교 본당이 분가되면서 공소가 폐지되고 강당이 헐리게 되자 공주에서 체포되어 해미에서 순교한 인언민 마르티노 순교자를 기념하는 사적지로 조성하였습니다. 용동리는 2014년 8월 16일 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복된 인언민 마르티노 순교자의 고향이기 때문입니다. 이곳에는 “순교자께 영광”이란 글귀를 새긴 돌과 순교자 인언민 마르티노 기념비가 설치되어 있고, 십자가 모양으로 조성한 정원 한 가운데 육중한 자연석으로 만든 야외제대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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