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욤 세냑 - 아카데미즘 화법으로 피어난 아름다운 여인들
사진처럼 정밀하고 꿈에서나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여인들이 등장하는 아카데미즘 화가들의 작품은 놀라움을 주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완벽해서 현실감이 떨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아카데미즘 화풍의 작품들이 제작되고 있고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19 세기 후반 파리에는 뛰어난 아카데미즘 화가들이 있었고 그 계보를 잇는 화가들도 등장했습니다.
그 중에 한 명, 기욤 세냑 (Guillaume Seignac / 1870 ~ 1924)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우물가에서 By the Well / 142cm x 114.6cm / oil on panel
여인들이 물을 긷고 있는 우물가에 불쑥 남자 얼굴이 나타났습니다.
뜻하지 않은 그의 출현에 놀란 여인은 두레박에서 물이 쏟아지는 것도 모르고 그 남자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남자가 찾아 온 여인은 맨 오른쪽의 여인입니다. 지나가는 길에 보고 싶어서 들렀던 모양인데 치마를 살짝 쥐고 있는 여인의 모습을 보면 그녀도 내심 반가움을 간신히 참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내일 아침 온 동네에 이 소문이 퍼지겠군요. 우물가는 소문의 근원지인데 이 이야기 얼마나 야릇하게 퍼질지 궁금합니다.
세냑은 브르타뉴 지방의 ‘렌’이라는 곳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가 활동했던 것에 비하면 그에 대한 자료는 많지 않아 오늘은 아카데미즘과 관련된 곁다리 이야기들이 많아 질 것 같습니다. 열 아홉 살이 되던 해 파리에 있는 줄리앙 아카데미에 입학, 당대 최고 화가들로부터 지도를 받습니다.
오후의 낮잠 An Afternoon Rest / 66cm x 100.3cm / oil on canvas
정원을 다니며 꽃을 꺾느라 몸이 피곤했던 것일까요? 벤치에 잠시 몸을 기댔다 싶었는데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행복한 꿈을 꾸는지 여인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습니다. 한 손은 머리를 괴고 있지만 다른 한 손은 무엇인가를 들고 있는 듯 합니다.
현실에서는 잡을 수 없는 것이지만 꿈이라면 못할 것도 없습니다. 혹시 좋아하는 사람과 팔짱이라도 낀 것일까요?
호수에서 불어 오는 부드러운 바람에 여인의 꿈은 더욱 달콤해지고 있습니다.
줄리앙 아카데미에서 세냑을 지도했던 선생님은 재주 많은 초상화가였던 가브리엘 페리어, 역사화가이자 풍속화가였던 토니 로베르 플뢰르
그리고 아카데미즘의 상징이었던 윌리엄 부게로였습니다.
그런데 자료에 따라서는 세냑이 에콜드 보자르에서 공부했다고 되어 있기도 합니다. 플뢰르와 부게로는 에콜드 보자르에서도 가르쳤는데 혹시 세냑도 줄리앙 아카데미와 에콜드 보자르 양쪽에서 선생님을 따라 공부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순결 Virginity / 73cm x 60cm / oil on canvas
아주 고운 얼굴을 만났습니다. 머리 띠와 옷에 같은 모양의 장식이 달려 있어 세련되어 보이고 흰 색 옷은 그녀의 깨끗함을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는데 고개를 돌리고 물끄러미 바라보는 소녀의 눈매가 그윽합니다. 아직 험한 세상을 만나 본 적이 없는 것 같은 그녀의 눈에 나른함이 어른거립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 나른함 안에는 호기심도 있습니다.
그 호기심이 세상을 만나게 하는 촉진제가 되곤 하죠. 큰 눈에 어려 있는 호기심 궁금합니다.
세낙은 스물 다섯 살까지 6 년 넘게 아카데미즘에 충실한 교육을 받습니다.
세냑이 미술 공부를 할 때 파리는 인상파가 주도권을 쥐고 있었지만 아카데미즘을 고수하는 화가들도 있었습니다.
두 유파 사이의 갈등과 관련한 일화들은 제가 몇 번 말씀을 드렸던 적이 있었지요.
에콜드 보자르에서는 르네상스 시대에 다뤘던 고전적인 주제에 대해서도 배웠는데 예를 들면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들 같은 것이었습니다.
파도 The Wave / 64.8cm x 101cm / oil on canvas
아주 뇌쇄적인 장면입니다. 온 몸에 피어 오르는 열기를 어찌할 수 없어서 바다에 뛰어 들어 밀려 오는 파도에 몸을 맡겼던 것 같은데 여인의 얼굴은 아직 붉게 달아 올랐습니다. 해가 지는 하늘에는 구름이 가득하고 미소를 띤 여인의 얼굴에도 하늘 빛이 내려 앉은 것 같습니다. 아내가 그림 속 여인을 보더니 한 마디 했습니다.
낮술을 많이 마셨네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그림은 이렇게 쉽게 볼 수 도 있습니다.
세낙은 스물 일곱이 되던 1897 년 살롱전에 작품을 출품합니다.그리고 이후 정기적으로 작품을 출품한 그에게 1900 년에는 명예의 메달이 수여되었습니다. 1903 년에는 3 등 메달을 받으면서 세낙은 유명 화가로서의 입지를 확고하게 다지게 됩니다. 개인적인 능력도 뛰어 나 인체의 선에 대한 묘사는 사람들로부터 찬사를 받았습니다.
비밀 Confidence / 175.3cm x 96.5cm / oil on canvas
이 건 내가 너를 믿으니까 너에게만 들려 주는 비밀이야,알았지? 사실은 나 --- 가슴에 담아 놓은 비밀 이야기를 더 이상 눌러 놓을 수는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어린 천사 조각에라도 말을 해야 할 것 같아서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는데 이미 여인의 얼굴에는 웃음이 번지기 시작했습니다.
행복한 비밀이었군요 – 여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천사의 얼굴을 보니 비밀이 당분간 지켜질 것 같습니다.
어린 얼굴에 비해 표정은 아주 과묵해 보이거든요.
세낙은 콘트라포스토 (Contraposto) 자세에 대한 열정이 많았습니다. 콘트라포스토는 인체를 표현할 때 한 쪽 발에 무게를 싣고 나머지 한 발은 편하게 놓은 자세를 말하는데 차려 자세 보다 훨씬 훨씬 역동적이고 자연스러움을 주는 자세입니다.
밀로의 비너스나 미켈렌젤로의 다비드에서 볼 수 있는 자세이지요.
세낙은 작품 속 모델들의 자세에 이 방법을 이용했는데 등장 인물들이 생동감을 갖는 것은 이런 기법에 의한 것도 있었습니다.
결혼 행렬 The Wedding Procession / 60.1cm x 81.3cm
풍악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신랑신부 행렬이 등장했습니다. 골목 안쪽에 보이는 교회에서 이제 막 결혼식을 끝내고 나오는 것 같습니다.
동네 사람들에게는 좋은 구경거리이고 또 축하를 건네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빨래를 나가던 여인들도 광주리를 내려 놓고 있고 나이든 할아버지도 지팡이를 짚고 계단을 내려 오고 있습니다. 함께 같은 길을 걷는 이 순간이 평생 그대로 이어져야 합니다.
그나저나 신랑 신부 앞에 있는 악대는 왜 저렇게 힘이 없는 것일까요? 이 결혼식이 마음에 안 드는 사람들처럼 보입니다.
19 세기 말 파리는 아주 역동적이었습니다. 로트렉의 상업용 포스터에서부터 추상주의에 이르기까지 예술적 다양성이 풍성한 시기였지요.
이런 상황 속에서 세낙의 경력은 쌓여갔고 약간의 경제적인 여유도 생기면서 1902 년에는 몽파르나스 근처로 이사도 가게 됩니다.
아름다움에 감탄하다 Admiring Beauty / 296.7cm x 200cm / oil on canvas
아무리 봐도 흠 잡을 곳 하나 없어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이리 보고 저리 보는 여인은 자신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있습니다.
누가 봐도 예쁘다고 할 미모를 가졌습니다. 그렇다고 저렇게 거울을 보며 스스로 탄복하는 것은 아니다 싶지만 돌아 보니까 저 때 아니면 할 수 없는 일 중 하나입니다.
얼굴에서 시작해서 마음으로 스며들어야 진정한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그림 속 소녀도 나중에는 알겠지요.
세낙의 작품은 전통적인 작품을 선호하는 미술상뿐만 아니리 소위 아방가르드 전문가들에게도 인기가 있었습니다.
성적인 매력과 구불구불한 선이 결합된 이미지를 찾던 그들에게 세낙의 작품은 분석하기에 좋은 대상이었습니다.
실제로 세낙의 작품에는 선정적인 느낌이 포함된 것들이 있습니다. 물론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를 수는 있지만요.
던져버리다 Abandon / 49.5cm x 64.8cm / oil on canvas
아무 것도 걸치지 채 소파에 비스듬히 몸을 기댔습니다. 여인의 자세는 카바넬의 비너스와 방향만 다르지 아주 유사합니다.
문득 여인이 벗어 버린 것은 옷이 아니라 그녀를 귀찮게 하는 모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힘없이 놓아 버린 그녀의 시선 속에는 더 이상 방해 받고 싶지 않다는 그녀의 마음이 담겨 있거든요.
세낙은 당시 가장 잘 나가는 화가 중 한 명인 알마 타테마 처럼 역사적인 일들이나 신화 속의 주제를 성적인 것과 연결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그의 작품을 통해 마음껏 표현했습니다.
특히 투명한 옷감으로 여인의 몸을 감싸는 고전주의 기법을 능수능란하게 이용했습니다.
1907년까지 세낙의 명성은 계속해서 높아졌습니다.
독일 침공 전의 벨기에,프랑스 그리고 영국
Belgium, France, and England Before the German Invasion / 90cm x 72cm / oil on canvas / 1914
불길한 기운이 가득한 하늘입니다. 구름에 덮인 지평선은 붉은 석양으로 마치 불이 붙은 것 같습니다.
맨 발의 세 여인은 다가오는 공포 앞에서 서로의 손을 잡았습니다. 칼을 들었지만 여인의 얼굴에 서린 당혹감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1차대전이 일어나기 직전 불안한 유럽의 모습을 각국의 국기를 옷으로 입은 여인들의 모습을 통해 묘사하고 있는데 인류가 만난 가장 잔혹한 전쟁이 될 것이라고 짐작을 했었을까요?
세낙은 우의적인 주제에 능통했습니다. 하나의 사실을 통해 다른 진실을 보여주는 그의 작품은 특히 1차대전이 일어나기 전 미국의 뉴욕에서 인가가 높았습니다. 물론 파리와 런던에서도 그의 작품은 잘 팔렸습니다.
1924 년 쉰 넷의 나이로 세낙은 세상을 떠납니다.
지병이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사고사였는지 나와 있는 자료가 없어 알 수 없지만 좀 이른 나이였습니다.
피에로의 포옹 Pierrot's Embrace / oil on canvas / c.1900
제 개인적으로는 가장 ‘야한’ 작품이 아닌가 싶습니다.
가면을 쓴 여인을 뒤에서 안은 피에로는 여인의 목덜미에 키스를 하고 한 손으로는 여인의 가슴을 움켜 쥐었습니다.
여인은 온 몸으로 전해지는 짜릿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가면을 썼으니 누군지 알 수 없을 것이고 그렇다면 감춰 두었던 본능에 충실하면 되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흰색으로 얼굴을 분장한 피에로의 분위기가 섬뜩합니다. 마치 뱀파이어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잘못된 열락은 치명적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세낙에게 물어보고 싶습니다.
세낙이 세상을 떠나고 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경제 대공황이 닥칩니다.
미술시장은 얼어 붙었고 그의 작품도 잊혀지는 듯 했지만 1970년대, 미술 시장에서 그의 이상적인 모습의 누드화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됩니다. 1990년대 들어서서 아카데미즘을 학술적으로 공부한 사람들에 의해 그의 작품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졌고 세낙에 대한 열풍이 불었습니다. 이상적인 여인의 모습은 시간이 지나도 늘 인기 있는 주제가 되는 모양입니다.
[출처]작성자 레스까페'세계의 명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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