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여,가정,부부

멀게만 느껴지던 시가, 처가, 내집처럼 드나들기

문성식 2019. 1. 10. 15:31
     
      멀게만 느껴지던 시가, 처가, 내집처럼 드나들기 ▼ 중풍으로 쓰러진 장모님 정성껏 보살펴 명절만 가까워지면 아내는 부쩍 신경질이 늘어서 작은 일에도 짜증을 냈다. 난 고향집에 가려면 일주일 전부터 아내 눈치를 보고 갖은 아양을 다 떨어야 했다. 그러던 아내가 달라졌다. 시키지도 않은 안부전화를 척척 해대고 내가 챙기기도 전에 친가 식구들 생일이며 제사를 챙기는 것이다. 역시 가는 것이 있어야 오는 것이 있는 법. 그런데 되로 주로 말로 받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별일 아닌 것에 아내는 크게 감동한 모양이다. 얼마전 혼자 사시던 장모님이 갑자기 쓰러지셨다. 원래 심장이 안 좋았는데 제대로 걸러지지 못한 혈전이 뇌혈관을 막은 것이다. 이웃에 사시는 분들이 급히 병원에 옮겨서 다행히 회복이 빨랐고 왼쪽 손 하나만 움직이는 것이 불편할 뿐 다른 어려움은 없었다. 어머님이 쓰러졌다는 전화를 받자마자 나는 회사에 말을 하고 급히 병원으로 달려갔다. 아내보다 먼저 병원에 도착해서 간호사와 얘기를 하고 있자니 얼굴이 하얗게 질린 아내가 나중에야 도착해서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아내를 진정시키고 사흘 동안 휴가를 냈다. 외동딸인 아내가 의지할 곳은 나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어머님은 한달간 병원에 입원해 있으시면서 재활치료를 했는데 나는 간병인을 구하고 매일 병원으로 퇴근을 했다. 한달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인데 그뒤로 아내의 태도가 달라졌다. 별일 아닌 일에 감동하는 아내를 보며 ‘내가 그동안 해주는 일 없이 바라기만 했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40세, 결혼 9년차, 아이 둘) ▼ 출산 때문에 친정집에서 함께 사는 동안 친해져 우리 형제는 2남 3녀인데 사위 셋 중에서 남편이 가장 조용하다. 술은 입에도 대지 않고 숫기가 전혀 없다. 제사 때 모여서 형부들은 오빠랑 아직 결혼하지 않은 남동생이랑 같이 음복을 하네 마네 하면서 떠들썩하게 술잔을 주고받는데 남편은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조카들 방에서 책을 읽거나 엄마 방에서 TV나 보다가 잠들기 일쑤다. 나는 그런 모습만 보면 속에서 불이 올라와 밖으로 불러내서 잔소리를 퍼붓곤 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남편은 더 움츠러들 뿐이었다. 그러다 내가 첫아이를 출산하게 되었다. 오빠가 엄마를 모시고 있던 터라 오빠네로 들어갔는데 1개월 정도 같이 지내는 동안 남편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사람이 친해지는 방법 중 하나가 밥을 같이 먹는 것이라더니 아침, 저녁으로 식탁에서 얼굴을 마주치다 보니 자연스럽게 말문이 트이고 나중에는 올케랑 설거지를 같이 하며 농담까지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우리 식구들과 같이 지내는 것이 재미있었는지 산후조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다음에도 자주 놀러가자고 했다. 그러더니 얼마전에는 아예 친정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가자고 난리다. 엄마, 오빠와 친해져서인지 언니들이나 형부들과도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고 농담을 주고받는 남편을 보면 정말 기분이 좋다. (29세, 결혼 3년차, 아이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