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여,가정,부부

있을 때 잘하세요

문성식 2019. 1. 9. 10:19
     
      있을 때 잘하세요 40대 여성 J의 갑작스런 죽음은 우리 부부를 당혹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참 순박한 여인이었다. 우리 부부의 인도로 신앙생활을 시작한 그녀는 평생을 남편의 구원을 위해 기도해 왔지만 그 기도가 끝내 응답되지 못한 채 짧은 삶을 마감해야만 했다. 부부 중 어느 한쪽이 먼저 세상을 떠날 때 ‘가는 자’가 ‘남는 자’에게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아주 짧다. “여보, 미안해.” 하지만 이 말 속에는 참 많은 뜻들이 내포되어 있다. 세상의 많은 짐을 맡겨놓고 가는 것이 상대방에게 미안할 수도 있다. 또한 함께 살아오면서 좀더 잘 해주지 못한 것이 미안할 수도 있으며 그동안 마음 아프게 한 것이 미안할 수도 있다. 특히 자녀들을 모두 맡겨 놓고 가는 것이 미안할 것이다. 왜 떠나는 사람은 남은 사람에게 ‘미안하다. 용서해 달라’고 말하는 것일까. 그것은 너무나 많은 상처를 주고받으며 살아온 것을 뒤늦게야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제 비로소 인생의 참된 의미를 깨달았는데, 먼저 떠나는 것이 미안한 것이다. 40대 J부인의 죽음은 참 많은 것을 떠오르게 했다. 남편은 그동안 J부인에게 모든 살림을 맡긴 채 살아왔다. 회사 일에 전념한답시고 이사를 갈 때도 이사할 집이 어디인지도 모르는 무심한 사람이었다. 그녀도 남편이 직장생활에 전념하도록 집안의 힘든 일을 모두 혼자서 처리했다. 남편은 이런 아내에게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었다. 자녀들이 장성해 쉽게 명문대학에 진학한 것이나, 집을 남들보다 일찍 장만한 것도 순전히 아내의 헌신 덕분이었다. 남편은 가족에게 월급을 갖다 주는 것으로 남편의 기본적인 역할을 다했다고 믿는 멋없는 사람이었다. 아내가 가정의 중요한 일들을 상의해오면 남편은 그것을 회피했다. “당신이 잘 하잖아.” 그러나 아내가 암 선고를 받고 수술대에 올랐을 때, 남편은 아내의 소중함을 비로소 깨달았다. “항상 건강하고 강하던 아내가 암이라니…. 믿어지지 않아. 그럴 리가 없어.” 남편은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지만 그것은 엄연한 사실이었다. 아내는 그동안 가정의 힘든 일을 혼자서 도맡아 하느라 매우 지쳐 있었다. 남편의 깊은 속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남편으로부터 따뜻한 위로 한번 받아보지 못한 채 외로운 인생을 살아온 것이다. 그녀는 속으로 점점 병들어 가고 있었으나 자신을 추스릴 겨를이 없었다. 그녀의 유일한 소망은 신앙생활이었다. 교회에서 성경을 묵상하고 찬송을 부르며 목사님의 설교에 흠뻑 빠져드는 것이 삶의 유일한 낙이었다. 남편의 구원을 위해 새벽기도를 드려오던 아내는 남편에게 신앙생활을 권유했다. “여보, 당신도 이제 좀 교회에 나갑시다. 부부가 함께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들을 보면 참 부러워요.” “당신이나 열심히 나가구려. 내가 당신의 신앙생활을 반대하지 않는 것처럼 당신도 내 취미생활을 방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일요일은 친구들과 운동한다는 것을 당신도 잘 알잖아.” 남편은 골프에 몰입해 있었다. 결국 아내는 남편의 마음에 큰 변화가 생기게 해달라고 기도할 뿐이었다. 이 기도가 끝내 결실을 맺지 못하고 끝난 것이다. 그녀는 병문안을 간 우리 부부에게 이런 당부를 했었다. “하나님을 믿게 된 것이 너무 감사해요. 제가 죽더라도 제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J부인도 죽음을 목전에 두고 남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여보, 미안해요.” 평생을 남편과 자녀들을 위해 헌신했던 가여운 여인. 그녀의 입에서도 ‘미안하다’는 말이 유언처럼 튀어나왔다. 정녕 미안한 사람은 남편이었다. 그 여인의 죽음을 앞에 놓고 우리는 많은 생각에 잠겼다. 입관예배를 드리던 날, 나는 조용히 남편이라는 무심한 남자를 불렀다. “당신의 아내는 한 가지 소원이 있었어요. 그리고 그것을 위해 늘 기도했어요. 그것만 이루어지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어요. 그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이제 말없는 아내의 시신 앞에서 마지막으로 그 소원을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남편은 말이 없었다. “그것은 당신과 함께 교회에 출석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선생님께 신앙생활을 시작해보는 것이 어떨까요.” 남편은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왜 그것을 좀더 일찍 말해주지 않았던가. 교회에 함께 출석하는 것이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얼마든지 함께 교회에 출석할 수 있었는데…. 남편이 얼굴을 쥐어뜯으며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대화단절로 인해 균형 잃은 수많은 가정의 비극을 엿볼 수 있었다. 아내는 남편에게 뭐 대단한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저 남들처럼 부부가 함께 손잡고 예배당에 가는 것이 간절한 소원이었던 것이다. 아내가 남편에게 원한 것은 ‘세계평화’나 ‘인류복지’ 같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지극히 소박한 것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남편들이 아내의 작은 소망을 묵살한 채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아니, 배우자의 소원이 무엇인지조차 생각해 보지도 않고 한평생을 마칠 수도 있다. 만약 당신의 배우자가 시한부 1개월의 삶이 남았다고 상상해보라. 그대가 배우자를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가. 떠나는 자는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지만, 남은 자는 또 무슨 말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진정 소중한 것을 너무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떠나고 나면 좀더 잘해주지 못한 것이 아쉽고 안타깝다. 그러나 함께 있을 때는 나의 소중한 배우자를 일상에 묻어 버리고 마는 것이 우리의 비극적인 삶이다. 공기와 물은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만 우리는 값없이 제공받는 그것의 소중함을 잘 모른다. 유희와 쾌락을 위해 소중한 시간과 돈을 허비하면서도 진정 소중한 가정과 내 인생의 배우자에 대해서는 너무도 무관심한 삶을 살고 있다. 이것이 바로 현대인의 비극이다. 가정은 인생의 제1사역지다. 가정이 우선순위에 있는가? 가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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