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하기 전에…
30대 중반에 요절한 K씨. 그는 완벽주의자였다.
직장에서는 유능한 사람이었으나 가정에서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그의 말투는 항상 명령형이었다.
그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는 ‘왜’와 ‘도대체’라는 말이었다.
그는 자녀들의 공부방에 책이 거꾸로 꽂혀 있는 것을 견디지 못했다.
냉장고에 몇 달째 음식 재료들이 수복이 쌓인 것을 보면
아내의 무계획한 가사를 질책했다.
물건들이 제자리에 있지 않으면 불안을 느끼는 타입이었다.
직원들에게는 항상 완벽한 일처리를 요구했고 그 자신도 책잡힐 짓은 하지 않았다.
비교적 이른 나이에 과장이 된 것도 그의 깔끔하고 완벽한 성격 때문인지도 몰랐다.
K씨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을 가장 싫어했다.
그는 자신이 한 약속을 거의 정확하게 지켰다.
상대방이 약속시간에 늦게 나타나면 공격을 퍼부어댔다.
약속시간에 10분 늦게 나타난 친구를 향해
“약속도 제대로 지키지 않는 사람이 사회생활을 어떻게 성공적으로 할 수 있는가.
그러니까 만년대리에 머물지”라고 말해 절교를 선언당한 적도 있었다.
K씨는 겉으로는 유능하고 철저한 사람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도 속으로는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어떤 일이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을 때는 폭음과 자책으로 몸을 망가뜨렸다.
K씨에게서는 삶의 여유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런 남편을 둔 아내의 스트레스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남편이 집에 있는 일요일은 고통의 날이었다.
남편의 시시콜콜한 잔소리와 강압적인 명령을 받아내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속 모르는 사람들은 남편을 보고 깔끔하고 유능한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아내의 입장에서는 차라리 고행이었다.
이들의 부부싸움은 흡사 역사공부를 연상시킨다.
오늘 발생한 작은 일에서 시작해 곧장 과거로 돌아간다.
이 과정을 겪으면서 싸움은 확대 재생산된다.
한번은 집에 널려있는 지저분한 옷가지를 본 남편이 특유의 독설을 퍼부었다.
“왜 청소를 제대로 해놓지 않는 거요.
도대체 당신이 제대로 하는 일이 뭐요!”
K씨는 이 짧은 문장에도 어김없이 ‘왜’와 ‘도대체’란
말을 넣어 아내를 공격했다.
“나는 뭐 집에서 노는 줄 알아요. 다른 남편들은 가사일도 잘 도와준다던데….”
전쟁은 항상 이렇게 작은 일에서 시작됐다.
‘나비효과’라는 것이 있다.
강대국에서 일어나는 나비의 날갯짓과 같은 가벼운 변화가
약소국에 엄청난 태풍을 몰고 온다는 이론이다.
이 부부에게 나비의 ‘날개짓’과 같은 ‘청소문제’가
결국은 대형싸움으로 돌변한 것이다. 남편은 아내의 말을 받아 융단폭격을 가했다.
몇 달 전 부모님을 만났을 때 말을 잘못해 어려움을 겪은 것에서부터
몇 년 전 친구에게 돈을 빌려줬다가 원금도 못 받은 일까지
지난 과거를 들춰내며 무수히 대포를 쏘아댔다.
아내도 이제 내성이 생겨서 만만찮게 맞받아쳤다.
매사에 명령형의 말투를 듣고 살아온 자신의 인생이 비참하다며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결국 가정불화는 건강악화로 이어졌다.
남편의 췌장암이 발견된 것은 결혼 후 9년째를 맞았을 때였다.
이제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딸을 두고 남편은 후회의 눈물을 흘렸다.
직장에서는 완벽하고 유능한 사원이었고 친구들로부터
‘잘나가는 사람’으로 불리던 30대 중반의 한 가장이 후회의 눈물을 쏟으며
삶을 마감한 것이다. K씨는 아내에게 사죄했다.
너무 미안하다고.
아내와 자녀의 소중함을 모르고 살아온 자신이 바보였다고.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살아온 인생의 헛됨을 통회한다고.
남편 노릇,
아버지 노릇도 제대로 못한 잘못과 책임을 통감한다며 그는 목놓아 울었다.
ㅡ 두상달 김영숙부부 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