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궁궐,왕릉 이야기

왕릉이야기. 제2대 정종-후릉

문성식 2010. 8. 26. 21:20

 

 

 

후릉 - 정종과 정안왕후 

소재지 : 경기도 개성시 판문군 령정리(북한 소재)
사 적 : 북한 소재로 사적 미지정

厚陵의 특징
 : 定宗(이방과: 1357-1419 , 재위 2년, 상왕 20년)과 왕비 정안왕후 김씨(定安王后 金氏: 1355-1412)의 후릉은 조선 최초로 왕과 왕비의 봉분(封墳)을 나란하게 난간석(欄干石)으로 연결한 쌍릉(雙陵)의 형식을 하고 있습니다. 북한 지역에 소재하고 있어 자세한 경관은 볼 수 없지만 북한에서 발간된 사진으로 볼 때 많은 풍화(風化)와 소실된 모습에서 우리의 문화 유산이 제대로 보존되지 못함을 안타깝게 여깁니다.

定宗代의 사료(史料)

연도

재위

사  료(史料)

 

연도

재위

사  료(史料)

1399

1년

3월, 문신들을 집현전(集賢殿)에 회합

1400

2년

1월, 2차 왕자의 난{방간 유배}

11월, 세자 방원에게 선위(禪位)

뒷 이야기
 : 정종은 이성계의 둘째 아들로 태조 7년[1398년]에 왕자의 난이 일어나 세자 방석(芳碩)이 죽자 대신 세자(世子)로 책봉되고 같은 해 9월에 태조로부터 선양(禪讓)을 받아 즉위합니다. 정안왕후와의 슬하에는 후사가 없으나, 후궁들 사이에 15명의 군(君)과 8명의 옹주(翁主)를 두었습니다. 또한 2년간의 왕위(王位) 시절 역시 실질적으로는 동생 방원{태종(太宗)}의 뜻에 따라 정치가 이루어졌기에, 결국 왕위를 선위(禪位)하고 상왕(上王)으로 머물면서 말년을 지냅니다.
 '정종(定宗)'이란 묘호(廟號)는 사후(死後)에 바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 숙종 7년[1681년]에 와서야 진상되어 묘호를 정종(定宗)이라 사용하게 되었고, 그 이전에는 명(明)나라 황제에게서 받은 시호(諡號) 공정(恭靖)을 칭호(稱號)로 삼아 '공정왕(恭靖王)'이라 했기에 실록 역시 <공정왕실록(恭靖王實錄)>이라 했었습니다.

 정안왕후는 고려말 문하좌시중(門下左侍中)이었던 월성부원군(月城府院君) 김천서(金天瑞)의 딸로 태어나[1355년] 태조 7년에 덕빈(德嬪)에 책봉되고 정종 즉위로 왕비에 올라 정종(定宗)의 내조로 일생을 마쳤습니다. 정안왕후는 정종이 실권자인 이방원에게 왕위를 넘겨주자 편안한 말년을 보내며 천수(天壽)를 다 했습니다. 하지만 슬하에 자식이 없이 58세의 나이로 태종 12년에 승하합니다.

출처 :문화 사랑 오솔길 원문보기   글쓴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