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08.jpg 지자총통은 천(天)·지(地)·현(玄)·황(黃) 총통 중에서 천자총통 다음으로 큰 우리나라 고유의 대포이다. 길이 89㎝, 총구의 안지름 10.5㎝, 바깥지름 17.2㎝로 조선 명종 12년(1557)에 만들었다.

모양은 손잡이 2개가 원형 그대로 붙어 있으며, 마디가 모두 10개이고 일곱번째 마디와 여덟번째 마디가 서로 붙어 있어 화약을 넣는 약통과 격목통을 구분하고 있다. 격목통은 원기둥 모양의 나무를 박아 약통 속에 넣은 화약의 폭발력을 최대한 강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약통 속의 구멍은 2개이고 발사물은 화살이나 탄환을 넣어 사용한다.

지자총통은 이미 조선 태종 때에 만들어 사용한 바 있으며 세종 27년(1445)에 이르러 화약병기 개발정책에 따라 종래의 형체를 개량·발전시켰다. 이것과 함께 보물 제862호가 남아 있고 일본에도 이와 비슷한 모양의 지자총통이 2개 더 있다는 기록이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

 

이 총통(銃筒)은 명문(銘文)에 나타난 바와 같이 조선 명종(明宗)12년(1557) 4월에 주조된 것으로, 중앙박물관 소장의 보물 제862호 지자총통보다 1개월 후에 주조되었다.

이 지자총통이 입수되기는 지난 1969년 10월 초 9일 김율규씨(金律奎氏)가 경남 창원군(昌原郡) 내서면(內西面) 금성리(金城里) 신성동(新城洞) 내성지(內城址)에서 채석작업(採石作業) 중 발견한 것으로 역시 오랜 연륜(年輪)이 지났지만 원형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다. 그 제법(製法)은 포구(砲口) 구연대(口緣帶)에서 통신(筒身)을 연(連)해 포미(砲尾)에 이르기까지 그 둘레의 차(差)는 없고, 죽절(竹節)은 모두 9조(條)이나 통신에 5조, 그리고 통신과 약실계선(藥室界線)(격목부위(檄木部位))에 쌍조(雙條), 약실에 2조를 시조(施條)하였다. 그러나 보물 제862호의 총통시조(銃筒施條) 방법과는 달리 한결같이 그 간격을 동일한 규격(規格)으로 시조(施條)하고 손잡이인 거금(擧金)은 포구(砲口)에서 제2조와 3조, 그리고 5조와 6,7쌍조, 8조 사이를 각각 연결하여 설치한 채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선혈(線穴)도 약실 뒷쪽 좌우에 뚫리었다.

본 지자총통은 보물 제862호의 총통과 비록 1개월의 주조차(鑄造差)를 두었지만, 만든 해와 장소(場所), 감조관(監造管), 그리고 화포장(火砲匠)에 이르기까지 모두 동일하다는 점에서 자못 그 의의가 크다. 비록 한 사람의 장인(匠人)의 솜씨임에도 그 형태면에서 약간의 차등이 있으나, 우리나라 화포사료(火砲史料)는 물론 국방과학기술문화재(國防科學技術文化財)로서 매우 귀중한 유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