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목 | 보물 제844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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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서울 종로구 세종로 1-57 국립고궁박물관 |
소재지 | 국립고궁박물관 |
지정일 | 1985.08.09 |
수량 | 1기 |
시대 | 조선시대 |
소유자 | 국유 |
관리자 | 국립고궁박물관 |
자료출처 및 참조 |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국립고궁박물관에 있는 측우기와 받침대. 대리석제. 높이 30.3㎝, 너비 45.3×45.5㎝.
15세기초 세종 때에 세계에서 처음으로 만든 측우대는 그 뒤 여러 번 만들어 전국에 보급하였지만, 조선시대의 것으로 지금 남아 있는 것은 측우기가 하나, 측우대가 넷뿐이다. 이 측우대는 그 가운데 하나로 특히 측우기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긴 명문이 남아 있어서 중요하다.
이 명문에 의하면, 1782년(정조 6) 정조가 여름가뭄을 걱정하여 창덕궁의 이문원(璃文院) 앞마당에 측우기를 만들어 세웠다고 적혀 있다. 기우제를 지내고, 언로를 열며, 죄인을 풀어주는 등의 조처가 계속되자 가뭄이 그치고 비가 흡족하게 내렸다.
이를 기념하여 임금과 백성의 근심과 기쁨이 함께 얽혀 이 측우기를 만들었다고 직제학 심염조(沈念祖)는 글을 지었다. 1782년의 가뭄 끝에 새로 측우기와 측우대를 만들었는데, 그 가운데 측우대만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측우대는 1910년에는 창덕궁 규장각 앞뜰에 있었고, 1920년쯤에는 당시 경성박물관 앞 계단에 옮겨졌는데 그 때까지도 측우기가 그 위에 함께 있었다. 그 뒤 6·25동란 때 측우기는 없어지고 측우대만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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