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목 | 보물 제297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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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경북 김천시 증산면 수도리 513 청암사 |
소재지 | 증산면 청암사 |
지정일 | 1963.01.21 |
수량/면적 | 2기 |
시대 | 통일신라 |
소유자 | 수도암 |
관리자 | 수도암 |
자료출처 및 참조 |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수도리 청암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탑. 2기. 동탑 높이 3.76m, 서탑 높이 4.25m.
화강석 석탑으로 법당인 적광전(寂光殿)을 사이에 두고 그 전면 좌우에 동서로 2기의 석탑이 나란히 서 있으나 지형상 법당과 탑과의 거리는 충분하지 못하고 짧다.
동탑은 단층 기단을 형성하였는데 장대석을 놓아 네모난 지대석을 마련하고, 그 위에 각 면 1석으로 중석을 구성하였다. 탱주(撑柱 : 받침기둥)의 흔적은 없고 우주(隅柱 : 모서리기둥)는 매우 희미하게 표현되었다. 갑석은 2매의 판석을 동서로 덮었는데 그 밑에는 부연이 없는 것이 특이하다.
상면에는 가벼운 경사가 있고 중앙에는 호형(弧形)과 각형으로 2단의 굄이 있다. 탑신부(塔身部)는 옥신(屋身)과 옥개석(屋蓋石)이 각 층 1석이고, 초층옥신은 위가 좁고 아래가 넓은 4우주를 나타냈으며, 각 면에는 깊이 약 5㎝의 네모난 감실을 마련하였다.
감실 안에는 조각이 분명하고 잘 정제된 여래좌상을 각 면 연화좌 위에 부육조(浮肉彫)로 표현하였다. 2·3층옥신에는 다른 조각은 없고 차례로 감축된 가운데 우주만을 모각(模刻)하였다. 옥개석은 넓은 편이며 전각의 반전은 매우 경미하다. 옥개석받침은 1·2층이 4단, 3층은 3단으로 줄어들었다.
상륜부(相輪部)에 작은 갑석형을 이중으로 나타낸 작은 노반과 복발, 그리고 보주 하나가 남아 있다. 탑의 기단 주변에는 넓은 판석과 배례석이 있다. 서탑은 2층 기단을 형성하였으며 2·3층 옥신과 옥개를 잘 유지하였다. 기단부는 각 면 1석으로 지대석을 마련하고, 그 위에 다시 1석으로 된 중석과 갑석 등 4석으로 하층 기단을 형성하였다.
중석 각 면에는 우주와 탱주 1주가 모각되었고, 갑석 상면에는 가벼운 경사가 있으며, 1단의 각형 굄이 있다. 상층 기단 중석은 각 면 1석씩으로 짜고 우주만을 모각하였다. 갑석은 1매 판석으로 덮었으며 부연이 없는 것은 동탑과 같다. 상면에는 가벼운 경사가 있고 2단의 굄으로 탑신을 받고 있다.
탑신부는 옥신·옥개석이 각 층 1석이며, 초층옥신에는 우주가 모각된 사이로 각 면 여래좌상 1구씩을 연화대 위에 돋을새김하였다. 옥개석은 동탑보다 더욱 넓어졌으며, 추녀 밑은 직선이며 낙수면의 경사도 완만하다. 낙수면의 곡선 역시 거의 수평에 가깝다가 전각에서 가벼운 반전을 나타냈다.
옥개석받침은 각 층 모두 5단이며, 추녀에서 깊이 들어가 공간을 남겼음이 주목된다. 2층의 옥신은 초층에 비하여 현저하게 줄어들었으나 체감률은 온화한 편이다. 상륜부는 노반·보륜·보주 등이 남아 있다.
이 두 탑은 그 형식이 서로 다를 뿐 아니라 탑과 법당과의 거리가 가까운 데 비하여 두 탑의 거리는 너무 멀어 본래부터 쌍탑의 형식으로 시설되었다고는 보기 어렵다. 다만 당시의 신앙적 요청에 의하여 서로 상대한 위치이기는 하나 별개의 장소에 다른 형식으로 건립되었다고 추정된다.
두 탑의 형식은 옥신과 기단 또는 옥개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탑의 형태는 가냘픈 점이 있기는 하지만 조각은 단정한 편이다. 그 제작연대는 적광전 내의 석조비로자나불상에 준하여 신라 중기 이후인 9세기 후반으로 추정된다.
북면불
남면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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