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820_0270.jpg 전라남도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 화엄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탑. 높이 3m.

화엄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되어 화엄종을 널리 알리던 절로, 창건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많은 승려들이 이곳에 머물면서 화엄사상의 구현을 이루어 왔다. 신라 후기에는 승려 도선(道詵)에 의해 크게 확장되었고, 고려 문종 때에는 전라도 및 경상도에서 이 절에 매년 곡물을 바치도록 허락해 주어 일주문 밖에 큰 창고를 짓기도 하였다.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7년 만에 여러 건물들을 다시 세웠으며, 이후 여러 번의 보수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 탑은 절 안의 원통전 앞에 서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독특한 석탑으로, 네 마리의 사자가 길쭉하고 네모난 돌을 이고 있는 모습이다. 절에서는 보통 노주(露柱)라고 부르는데, 무엇으로 사용되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으며, 불사리를 모셔놓은 것이라 하기도 하고, 불가의 공양대(拱養臺)로 쓰였을 것이라는 추측만 있을 뿐이다.

20090820_0272.jpg 일명 노주(露柱)라고 불리는 탑형(塔形)의 건조물로서 갑석을 4구의 사자가 받치고 있다.

상층기단의 구성에서 네 마리의 사자를 이용하였는데, 이것은 곧 이곳 화엄사의 사사자삼층석탑(四獅子三層石塔, 국보 제35호)의 양식을 모방한 것이다. 탑의 형태는 2층기단 위에 탑신을 받고 있는데, 여러 개의 장대석으로 결구된 방형의 지대석 위에 기단부가 놓였다.

하층기단은 네모난 불단(佛壇)의 형식으로 각 면 하단부에 굽이 돌려져 있고 다시 형식적인 각형 1단의 몰딩(moulding : 테두리장식)이 있어 면석을 받게 되었는데, 사방에 1매씩 4매의 판석으로 구성되었으며 각 면에는 우주(隅柱 : 모서리기둥)나 탱주(撑柱 : 받침기둥)의 모각(模刻)도 없다.

 

하층기단 갑석은 하면에 하단부에서와 같은 얕고 작은 각형 1단으로 부연(副椽 : 탑 기단의 갑석 하부에 두른 쇠시리)을 삼고 있다. 상층기단은 하층기단 갑석 상면에 높직한 1단의 받침대 1매석을 놓고 그 위에 상층기단부에 해당하는 사자를 받게 하였다.

상층기단을 원각한 사자상으로 대치하였음은 이 석탑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으로 주목된다. 사자는 사사삼층석탑의 경우와 같이 상층기단면석 각 면의 양쪽 우주를 대신하여 네 귀에 각 1구씩 4구를 배치하였는데, 밑에는 복련석(覆蓮石)을 놓아 그 위에 앉아 있고, 머리 위에는 앙련석(仰蓮石)을 얹어놓았다.

 

그러므로 이 4구의 사자는 각기 머리 위에 별조된 연화대석을 굄돌로 삼고 갑석을 받침으로써 그 위의 탑신부를 지탱하고 있는바, 갑석은 편평한 1매의 판석으로 조성되어 상면에는 연화문을 복판으로 장식하고 그 중앙에 탑신을 받고 있다.

그리고 이 부재의 상면에 반구형의 돌기가 있는데 그 의장이 주목된다. 이 탑은 각 층의 연화문이나 탑신부의 조각은 더욱 가냘퍼졌으므로 같은 경내에 건립된 사사자삼층석탑보다는 뒤떨어지는 것으로 9세기의 건조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