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28.jpg 고려시대의 부도. 높이 2.74m.

 

부도는 승려의 사리를 모셔 놓은 곳으로, 사리탑이라 부르기도 한다. 경북대학교 박물관에 세워져 있는 이 부도는 사리를 넣어두는 탑신(塔身)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이를 받쳐주는 기단부(基壇部)를 두고, 위로는 머리장식을 얹었다.

일본인 오구라(小倉武之助) 소장이었던 것으로 원위치가 어디인지는 알 수 없다.

이 부도의 형식은 전형적인 팔각원당형(八角圓堂形)으로서 넓은 방형의 지대석(地臺石) 위에 하대(下臺)·중대(中臺)·상대(上臺)를 쌓았는데, 하대석과 중대석에서 고려시대의 특색이 잘 나타나 있다.

 

즉, 방형의 하대석은 각 면에 6판(六瓣)씩 모두 24판의 복련(覆蓮)이 조각되었는데, 각 모서리와 각 면 중앙의 연판이 정면을 향하고 나머지 연판은 각 면 중앙의 연판을 중심으로 좌우로 비스듬히 표현된 점은 고려시대의 연판 표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특징이다.

중대석은 모를 죽인 8각으로 거의 원에 가까운 표면 전체에 구름문양이 돋을새김되었고, 앞뒤 좌우에 용이 돋을새김되었다. 중대석 위에는 8각2단으로 된 나지막한 굄이 상대석을 받고 있다.

 

8629.jpg 상대석에는 16판의 큼직한 앙련(仰蓮)이 돌려져 있는데, 앙련석 중앙에는 탑신을 받기 위한 각형(角形)과 호형(弧形)으로 된 3단의 몰딩(moulding)이 있다. 8각으로 된 탑신의 각 모서리에는 우주(隅柱 : 모서리기둥)가 모각되었고 앞뒤 양면에는 호형이 모각되어 있는데 그 좌우에는 사천왕상(四天王像)이 양각되었고 2면에는 조각이 없다.

 

8각의 옥개석(屋蓋石)은 정상에서 급한 경사를 이루었고 추녀에 이르러서 넓게 퍼졌다. 옥개석 위에는 여덟 줄의 우동(隅棟 : 옥개석의 귀마루)이 뚜렷하고 귀꽃이 있었던 듯하나 남아 있는 것이 없다. 옥개석 아랫면에는 2단의 굄이 있을 뿐 다른 조식은 없다.

그리고 추녀는 각 전각(轉角)에 이르러 현저한 반전이 있는데 이 역시 고려시대에 나타나는 특징적인 수법이라고 할 수 있다. 상륜(相輪)에는 연화가 조각된 보륜(寶輪)이 하나 놓여 있을 뿐이며 그밖의 것은 모두 결실되었다.

 

이 부도는 형태상으로는 고달사지부도(高達寺址浮屠, 국보 제4호)와 비교되지만 조각수법이 다소 뒤떨어지고 조성연대는 고려 초기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