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가정

돈이 없어 공부를 못 시킨다고요?

문성식 2014. 1. 22. 08:15

돈이 없어 공부를 못 시킨다고요?

 

 가난은 상대적인 것이라고 한다.
남들과 비교하는 데서 나오는 비교의식이라고나 할까?

부모라면 누구나 자식에게 좋은 것을 주고 싶어 한다. 좋은 환경에서 자라도록 해주고 싶고, 좋은 학교에서 좋은 선생님 밑에서 공부할 수 있게 해주고 싶은 것이 모든 부모의 마음일 것이다. 그러나 그럴 수만은 없는 것이 세상 일이 아닌가?

 

많은 부모들이 사주고 싶은 장난감도 제대로 사줄 수도 없고 공부를 잘 시킨다는 동네로 이사 가기는 더더욱 힘 든다. 남의 집처럼 학원에 보내거나 과외를 시키기도 힘들다. 아이에게 제대로 못해 주는 것이 마음에 걸려 언제나 미안하다. 어떤 부부들은 아예 아이를 많이 낳지 않기로 결정한다. 경제적인 능력이 없어 아이를 제대로 키우지 못하느니 처음부터 아이를 적게 낳겠다는 야무진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피임을 알지 못하던 시절에는 뱃속에 아이가 생기면 낳아야 했다. 집에 양식이 있든 없든 우리의 조상들은 자식을 낳았다. "제가 먹을 것은 제가 세상에 가지고 나온다"라는 말이 있듯이 비록 창조주를 알지 못했을지라도 그런대로 믿음을 가지고 자식을 낳았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자식을 낳는 일부터 자식 교육에 이르기까지 창조주는 끼어들 틈이 없다. 오히려 하나님이 끼어들어 두 사람의 계획을 방해할까봐 반갑지 않은 것이다.

이들은 비록 자신들이 사랑을 할 때도 성령님의 손길 없이는 아이가 생길 수 없다는 중요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부부가 아무리 아이를 위해 최고라고 생각되는 것을 주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최고의 교육과는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그들은 모르고 있다.

 

나는 아이에게 과외시키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아이를 학원에 보내는 것도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디까지가 정말로 필요한 것이고 어디서부터는 욕심인지를 가려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우리 사회 전체가 말하고 있는 '좋은' 것들, '유행하는 교육'이 정말로 돈을 쏟아 부을만큼 가치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한 때 지나가 버리는 욕심의 전시장인지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 집은 아이를 유치원에 보낼 형편이 못 되어서 세 아이를 모두 집에서 '가정 유치원'이라는 것을 열어 동네에 유치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을 모아 우리 아이들과 함께 놀게 하였다.

그 흔한 학원에 보놸 형편도 못 되었지만 고맙게도 아이들도 학원에 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놀 시간이 많아 장난감도 만들고 책도 많이 읽고 집안일도 도왔지만 남들처럼 예능교육을 따로 받지 못해서 악기를 잘 다루지 못한다.

음악시간에 배운 정도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잘 못하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냥 살기로 했다.

 

큰 아이가 고등학교를 휴학했을 때는 "저 집은 돈이 없어서 고등학교에도 못 보내는가?"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사실 아이가 들어간 외고의 학비가 그렇게 비싼 줄 몰랐고 '아이가 계속 학교를 다녔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요즘은 이 아이가 뉴욕의 한 대학교에 장학금을 받으며 다니고 있다. 우리는 한 편으로는 하나님이 이 아이의 학비와 생활비를 공급해 주시기를 기도한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는 "학비가 모자라면 쉬었다 해라"라고 말하고 있다.

 

감사하게도 아이들은 가난한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라고 있다. 사실 우리는 가난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된장찌개와 김치 하나면 모두 맛있게 먹고 유명 브랜드 옷을 받으면 어색해 한다. 우리는 싼 옷이 편하고 특히 형, 누나가 입던 옷을 물려 받으면 더욱 자랑스럽다.

막내 아이의 담임선생님이 절약 정신을 이야기하시며 "요즘은 양말 꿰매 신는 사람이 없다"고 하실 때 막내 아이가 발을 번쩍 들며 "선생님 저희는 꿰매 신어요"라고 했다고 하기에 칭찬을 했다. 우리가 양말을 꿰매 신는 이유는 가난해서가 아니다. 구멍 났다고 그냥 버리는 것은 물건을 아끼지는 않는 죄이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아무리 '돈, 돈' 해도 돈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아무리 돈이 많아 아이들에게 잘해 준다고 해도 돈이 아이를 바로 키울 수는 없다는 것을 누구나 안다. 아이들에게 돈이 있을 때는 낭비하지 않고 제대로 쓰며 돈이 없을 때라도 비굴하지 않도록 가르쳐야 한다. 돈을 다스리고 관리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으면 아이의 평생에 낫기 힘든 병을 안겨주는 것이 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돈 문제로 괴로워하고 있는가?

 

그러나 그 전에 어른들부터 돈의 노예가 되지 않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느 정도 돈에 대한 욕심을 정리했다고 생각하자마자 큰 돈이 필요한 문제가 터지며 다시 머리가 아프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는 비록 내 형편에 맞추어 그런대로 산다고 하지만 자식이 돈이 없어 학교 진학에 어려움을 겪게 되든지 하면 부모 마음은 또다시 아리게 된다.

 

인간은 돈이 없으면 살 수 없다. 그리고 세상에는 인간의 욕심과 사회 부조리로 인해 고통받는 가난한 사람들이 있다. 이런 경우에는 우리가 대항해서 싸워야 하리라.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의 느끼는 가난은 상대적인 것이라고 한다. 남들과 비교하는 데서 나오는 비교의식이라고나 할까?

 

우리는 우리 자신과 아이들이 남을 바라보지 말고 내게 주어진 형편에 만족하고 사는 법을 날마다 배울 필요가 있다. 우리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욕심이 아닌)를 채워 주실 것을 믿고 만족하며 사는, 어쩌면 바보 같은 삶을 살아 볼 용기를 내보자. 신실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용기를 믿음으로 바꾸시며 당신의 약속을 지키실 것이다.

그리고 살아있는 부모의 믿음은 이 세상 무엇보다 귀하고 부요한 유산으로 우리의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물려질 것이다.

 

박정욱 라브리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