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에 상처주는 어른들
<아빠 직업이 부끄러운 이유>
대화와 토론이 서로에게 얼마나 가치 있는 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30대 기독교인이라고 밝힌 분의 짧은 글을 읽어드리지요.
그 분은 "내용 중에 '종교적인 활동도 노동이 아닌가요?
근본적으로 성직자도 노동자라 여겨지는 까닭이에요'라는 구절에 대해 부언하고 싶다"며 다음과 같이 적어 주셨습니다.
"성경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님은 모든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시는 걸로 되어있습니다. 유독 하나의 피조물만 빼고. 그 피조물이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다른 모든 피조물은 고상한 '말씀'으로 창조하셨지만 사람은 흙으로 빚어서 만드셨다고 나오죠. 직접 손에 흙을 묻혀가며 말입니다. 여기에 노동의 신성함 혹은 인간의 노동이 결코 부끄럽지 않은 하나님의 뜻이라는 걸 말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그 분의 논지를 조금 더 나아가면 결국 하나님도 노동자가 아닐까 싶더군요. 또 한 분은 멀리 캐나다에 사는 분이었습니다. 그 분은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미처 놓치고 있는 대목을 날카롭게 지적해 주셨습니다.
"저는 님께서 마지막에 쓰신 아빠 직업이 노동자임을 떳떳하게 밝힐 수 있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국민 한사람 한사람이 노동의 가치와 신성함을 깨닫기 전에 사회, 특히 학교제도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본 글을 쓰신 교사가 '아빠 직업을 묻는 순간...' 이 대목에서 저는 그만 가슴이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왜 교사가 아빠, 엄마 직업을 물어야 하나요? 저도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매년 새학기마다 소위 '가정통신문'을 제출한 기억이 나고, 수시로 선생님께서 조회시간에 아빠 없는 사람, 엄마 없는 사람을 조사한다고 아이들에게 손들기를 시킨 끔찍한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부모의 학력조사도 손들기로 파악하기도 하였지요. 싫지만 당연히 해야 하나보다 하고 지나갔던 일들이 지금 다시 생각나기 시작한 것은 캐나다로 이민 온 후부터입니다. 아이 둘을 학교에 보내는데 필요한 서류라는 것이 아이들의 영주권, 그 지역에 산다는 주소확인(전화요금이 온 영수증 등으로 확인가능), 부모 혹은 보호자의 이름과 연락처가 전부였습니다. 아이를 교육시키는데 필요한 것 외에는일절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매년 학년이 바뀔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의 건강상태, 주치의 연락처, 긴급시 부모나 보호자의 연락처를 적어내는 것뿐입니다.
일년에 3번씩 받는 성적표를 받고 나면 학교에 가서 선생님과 면담을 합니다. 물론 모든 학부모들이 빈손으로 가지요. 선생님께서 학부모가 온 것을 고맙다고 인사합니다. 15분에서 20분 정도 개인 면담을 할 때도 부모와 교사는 아이의 학교생활에 대해서만 이야기합니다. 부모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교사가 물어보는 것이 없습니다. 한국처럼 좋은 직업을 가진 부모들이 우쭐거릴 필요도,노동을 하는 부모가 주눅이 들 필요가 없습니다.
사실 이곳이 한국처럼 부모직업을 물어본다면 저희 같은 이민자와 그 아이들은 님의 글에서 쓰신 그 학생처럼 고개를 떨구는 일이 얼마나 많을까요. 제가 이 글을 쓰는 것은 이곳은 이렇게 좋다라는 것이 아닙니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의식을 바꾸는데 노력할 것이 아니라 법과 제도를 바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정통신문을 없애고 부모의 직업을 묻는 교사는 징계를 하고, 사원을 뽑을 때 가정조사를 하는 회사는 거금의 벌금을 물리는 등 제도를 바꾸고 나면 사람들도 차츰 익숙해져서 나중에는 부모의 직업을 묻는 교사를 이상하게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사회가 어떤 사회입니까? 저는 자신의 잘못이 아닌 것으로 무시당하고 불이익 당하지 않는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가정형편 때문에, 부모의 사회적인 지위 때문에 멍드는 어린 마음이 없는 사회가 될 때 대한민국이 진정 세계화에 발맞추어 나갈 것입니다."
기실 가정통신문 만이 아닙니다. 제가 알기로는 학교 생활기록표에도 부모의 직업란이 들어가 있습니다. 문제의 생활기록표는 대학입시(수시모집) 때도 제출되는 서류입니다. 보기에 따라서는 끔직한 일이지요.
이른바 '가정환경 조사서'는 부모의 직업을 구체적으로 기입하라고 요구합니다. 심지어 재산 정도까지 적으라는 학교도 있습니다. 아니 비단 학교만이 아닙니다. 모든 이력서가 그렇지요. 저는 무엇보다 먼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작은 일이지만 그런 문제들을 하나 둘 개혁해나가는 데도 나섰으면 합니다.
그 분의 편지를 다 읽었을 때 문득 쌩떽쥐베리의 『어린 왕자』에 나오는 한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여러분은 어른들에게 새 친구에 대해 말할 때, 어른들이 본질적인 것에 대해 물어보는 것을 보았는가?
'그 애 목소리는 어떻든?
그 앤 어떤 놀이를 좋아하니?
나비를 모으지는 않니?'
등의 말을 하는 법이란 결코 없다.
그 대신 '그 앤 몇 살이니?
형제가 몇이지? 몸무게는?
아버지 수입은 얼마니?'
따위만 묻는다.
그래야만 어른들은 그 애를 속속들이 알게 되었다고 믿는 것이다."
기성세대의 선입견과 왜곡된 가치관에 언제까지 이 땅의 10대들은 찌들어야 할까요.
노동자들 대다수가 스스로 노동자의 정체성을 지니지 못하고 있는 오늘의 문제는 바로 언론과 교육 현장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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