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한국 4대 관음기도도량

문성식 2014. 1. 11. 13:05

어머니 품처럼 평안 주는 관세음보살

 

 

 한국 4대 관음기도도량
사람들은 깜짝 놀라거나 황당한 일을 당하면 엉겁결에 자신도 모르게 외마디처럼 '엄마'나 '아버지'를 외친다.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사람들에게 있어 부모란 존재는 영원한 보호자며 안식처다.

▲ 인자한 어머니를 생각하게 하는 해수관음보살상은 4대관음기도도량이 아니라도 많은 절에서 볼 수 있다.(사진은 남해 보리암 해수관음보살상)
ⓒ2004 임윤수
제대로 말을 배우기 전부터 본능적으로 위험에 직면하거나 구원의 손길이 필요할 때면 사람들은 어머니나 아버지를 찾으며 임종 직전에도 어머니나 아버지를 찾는 경우가 종종 있다. 비록 연로해져 물질적 보호자 역할은 다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정신적 측면에서 부모는 영원한 보호자임에 분명하다.

한평생 살면서 도움을 받거나 보호를 받을 곳은 무지기수로 많다. 그것은 사회적 제도일 수도 있고 물리적 보호구나 시설일 수도 있다. 그러나 평생동안 마음 편히 기댈 수 있고 본능적으로 찾게 되는 대상은 그렇게 흔하지 않다.

뭔가 어려움에 처하거나 가슴이 답답할 때 부를 수 있고 의지할 대상이 있다는 건 큰 힘이 되고 커다란 행운이다. 형을 둔 꼬마들은 거들어줄 형이 없는 아이들보다 알게 모르게 당당하고 자신감이 있다. 든든한 배경의 부모나 친척이 있는 어른들도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 비하면 똑같이 겪게 되는 황급함일지라도 보다 의연하게 대처하는 걸 보게 된다.

비록 그때그때 직접적인 도움을 주진 않을지라도 자신을 보호해주고 구원해 줄 사람이 있다는 믿음은 당당한 행동으로, 의연한 대처로 자신감을 준다. 그러한 자신감은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기도 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초월적 능력을 가져다주는 경우가 있다.

불교 신자들 중 나이 지긋한 많은 분들은 뭔가 어려움에 봉착하거나 답답한 일이 생기면 입버릇처럼 '나무관세음보살'하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걸 본 적이 있을 듯하다. 순간적인 어려움에 닥칠지라도 아이 때 '엄마!'를 외치듯 무의식 중 '관세음보살'을 찾는걸 보게된다.

나이 지긋한 할머니들이, '엄마'를 외치듯 그렇게 외치는 '관세음보살'이란 무엇인가? 관세음보살은 불교에 등장하는 많은 보살 중 '자비로 중생의 괴로움을 구제한다'는 보살이다.

불교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전이되면서 범어(梵語)의 아바로키테슈바라(Avalokitevara)가 광세음(光世音), 관세음(觀世音), 관자재(觀自在), 관세자재(觀世自在), 관세음자재(觀世音自在) 등으로 그 의미가 번역되었다. 이것이 한국으로 도입되며 일찌감치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로 믿고 우러르는 대상이 되었으며 약칭하여 '관음보살'이라 부르게 되었다.

▲ 여수 돌산에 있는 향일암도 한국 4대 관음기도도량이며 해수관음보살상이 있다. -향일암 종각-
ⓒ2004 임윤수
'천상천하 세상의 모든 것을 살펴보고 소리를 들으며 속세의 모든 중생을 이익 되게 하는 성자(聖者)'란 뜻이니 결국 관세음보살은 대자대비(大慈大悲)의 마음으로 중생을 구제하고 제도한다는 보살이다. 그런 보살임을 알기에 위험에 처하거나 놀란 불자가 자신을 구원해줄 어머니처럼 관세음보살을 찾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절에 모셔진 여타의 불상 중 푸근하고 후덕한 모습으로 본래 중생이 구비하고 있는 불성을 의미하는 연꽃을 왼손에 들고 있는 불상을 보았다면 그 불상이 관세음보살상이다. 불상의 푸근함과 후덕함은 어머니의 인자하시고 자비로움을 닮았다.

또한 여럿의 머리나 여럿의 손을 가지고 있는 불상을 본적이 있다면 그 불상도 관세음보살을 형상화 한 불상으로 생각하면 될 듯싶다. 이러한 불상 중에는 머리가 11개 또는 33개나 달린 것도 있고 손 또한 그러하니 이러한 불상을 11면 관음보살상 또는 33면 관음보살상이라 부른다. 이뿐 아니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수의 머리와 손을 가지고 있는 천수천안관자재보살상도 있다.

하기야 속세의 구석구석에서 찾고 부르는 소리에 감응을 주려면 어찌 천 개의 손과 천 개의 귀로 다 감당하랴마는 그 의미를 강조한 것쯤으로 생각하면 될 듯싶다.

▲ 낙가산 큰법당인 극락보전에는 아미타부처님이 주불로 모셔져 있고 관세음보살님도 모셔져있다.-보문사-
ⓒ2004 임윤수

관음신앙이 오래된 만큼 우리나라 많은 절에는 관음보살을 모신 관음전이 있거나 최소한 협시불로 관세음보살을 모시고 있다. 우리나라 수만의 절 중 4대 관음기도도량은 강원도 낙산사의 홍렴암과 강화도 보문사 그리고 이미 소개한바 있는 남해 보리암과 여수 향일암이다. 여기서 알 수 있듯 4대 관음기도도량 모두가 바닷가에 위치해 있다. 이런 점은 비록 우리 나라 뿐 아니라 인도나 중국도 마찬가지로, 바닷가에 주요 관음도량이 있다.

서해안 강화도 서쪽 석모도에 있는 보문사를 찾아가는 길은 여느 사찰을 찾는 길과는 다르다. 우선 바다를 건너야하니 배를 타야하니 다르다. 게다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차를 가지고 들어가야 하니 차에 앉아 배를 타게되는 걸 경험하게 된다.

연륙교로 이어졌으나 강화도는 분명 섬이다. 그런 섬마을 강화도에 딸린 석모도(席毛島)를 가기 위해서는 두 곳의 선착장을 이용할 수 있다. 배를 이용해 10여분이면 닿을 수 있는 서해안 섬이기에 배를 넘나드는 파도나 새파란 바닷물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대신 손이라도 휘저으면 한 마리 걸릴 만큼 많은 갈매기 떼가 바다와 공중에서 입체적 마중과 배웅을 해준다.

▲ 사진 중 제일 앞쪽에 보이는 불상이 관세음보살이다. 뒤로 주불로 모시고 있는 아미타부처님과 협시불이 보인다.
ⓒ2004 임윤수
일렁이는 바닷물에 꽃잎처럼 떠 있는 갈매기들이 한가로워 보인다.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만큼 시간에 쫓기는 사람 중 짬을 내어 한적한 길을 드라이브 해 보고 싶다면 석모도를 귀띔해주고 싶다.

해안을 따라 빙 둘러 만들어진 도로는 한적하기 그지없다. 기껏 배를 통해 드나드는 몇몇 대의 차가 전부니 재촉하는 차도 없고 가던 길 멈추게 하는 신호등도 없으니 담아갈 마음만 있다면 한가로움은 얼마든지 있는 곳이다.

선착장에서 15분 정도를 가면 보문사에 도착한다. 금강산에서 수행하던 회정대사가 신라 선덕여왕 4년(635)에 석모도로 들어와 산세가 관세음보살이 상주한다는 인도의 낙가산과 흡사함에 산 이름조차 '낙가산'이라 부르며 절을 창건하게 되니 그 절이 보문사다.

일주문을 들어서며 걷게되는 비탈진 진입로는 울창한 숲길이다. 숨 한 번 몰아 쉴 즈음이면 수령 400년이 넘었다는 은행나무 밑에 있는 감로수로 목을 축이며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다. 가다듬은 마음으로 주변을 돌아보며 몇 걸음 옮기다보면 범종이 달려있는 법음루와 윤장대를 지나 극락보전엘 들려 아미타부처님을 참배 할 수 있다.

▲ 보문사 석실 나한전엔 천 수 백년 전 어부가 바다에서 건져 올렸다는 23분의 나한님이 모셔져 있다.
ⓒ2004 임윤수
보문사도 여느 절들처럼 주법당인 극락보전이 있고 삼성각이 있으며 이런저런 전각들이 있다. 그럼에도 보문사엘 가면 석실로 되어있는 나한전과 다시 한 번 다리 품을 팔아야 하는 눈썹바위 아래 계신 마애관음좌상은 꼭 참배할 일이다.

대웅전 좌측, 장고한 세월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하소연하는 우여곡절의 푸념과 애절함을 담아 그런지 휘어지고 뒤틀리며 모질게 자라 600년의 세월이 뚝뚝 묻어나는 오래된 향나무에 반쯤은 가려진 석실법당이 있으니 이곳이 나한전이다.

2∼30평의 넓이가 되는 석실법당으로 들어서면 정면에 22 석조나한상이 모셔져 있는데 모셔진 나한상에 얽힌 설화가 있다. 보문사가 창건되던 635년 주변의 한 어부가 바다에 그물을 던졌는데, 사람 모양의 돌덩이 22개가 한꺼번에 그물에 걸렸다고 한다. 돈벌이가 되는 고기가 아니고 엉뚱한 게 걸렸음에 실망한 어부는 돌덩이를 바다에 버린다.

▲ 보문사 극락보전 우측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마애관음좌상이 있다. 모자챙인 듯 눈썹인 듯 햇빛과 비를 가려줄 천혜적 암반아래 미소진 눈처럼 둥글게 휘어진 바위에 좌상의 관음보살이 양각되어 있다.
ⓒ2004 임윤수
어부가 다시 그물을 쳤는데 또 다시 바로 그 돌덩이들이 걸리게 되니 어부는 또 다시 그 돌덩이를 바다에 버리고 연거푸 그물에 돌만 걸리자 고기잡이를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그날 밤 어부의 꿈에 한 노승이 나타나 '낮에 그물에 걸렸던 돌들은 천축국에서 보내온 귀중한 불상인데 어찌하여 이를 모두 버렸느냐'질책하며 '날이 밝으면 다시 그곳에 가 불상을 건져 명산에 봉안해 줄 것'을 당부하였다고 한다.

다음 날 불상을 건져 올린 어부는 꿈속에서 노승이 당부한 대로 낙가산으로 불상을 옮기던 중 현재의 보문사 석굴 앞에 이르니 갑자기 불상이 무거워져서 더 이상 옮길 수 없었다고 한다. 어부가 주변을 살펴보니 불상을 모시기에 안성맞춤인 석굴이 있어 이 석굴이야말로 불상을 안치할 신령스러운 장소라고 생각해 굴 안에 단을 만들어 바다에서 건져낸 불상을 모시니 석실법당 나한전과 나한 불상들이다.

▲ 보문사 관음보살님이 언제고 눈길을 떼지 않고 있을 작은 섬들과 바다가 내려다 보듯 보인다.
ⓒ2004 임윤수
석실에 모셔진 나한석상은 섬세하지 않아 투박한 할아버지의 까끌까끌한 손맛을 느끼게 한다. 섬기며 볼수록 불심을 깊게 해줄 그런 묵직함이 있다. 현실도피의 얄팍한 기도가 아니라면 믿음을 두텁게 쌓아 마음을 평온하게 해줄 그런 뭔가가 느껴진다.

나한전을 나와 극락보전 오른쪽으로 나있는 가지런한 대리석 계단을 오르면 그 꼭대기에 마애관음좌상이 있다. 많은 불자들의 정성과 불심이 보시금 되고 기도가 되어 하나 하나의 초석이 되고 디딤돌이 되어 완성된 계단이련만 육신의 무게를 지고 올라야 하는 300여 계단은 만만치 않다.

하나, 둘, 셋… 계단 숫자를 세며 한 걸음 한 걸음 오르다 보니 실타래처럼 얼기설기 얽혔던 잡념들이 사라진다. 모자챙이라 할까 눈썹이라 할까? 세워진 반달처럼 안쪽으로 약간 굽어진 암벽에 앉아 계신 관음보살님이 각인되어 있다. 마애불을 볼 때마다 느끼는 석공의 불심 같은 것이지만 보문사 마애불은 지금껏 느꼈던 불심과는 또 다른, 그런 정성과 기도하는 마음의 불심이 느껴진다.

▲ 동해 일출 명소 중 한곳인 이곳 의상대에서 좌측을 보면 해안가 벼랑에 들어선 홍련암이 보인다.
ⓒ2004 임윤수
관음보살님을 참배하고 몸을 돌리니 눈앞이 바다다. 띄엄띄엄 섬들이 보이고 고깃배들이 보인다. 들녘과 바다 그 어느 곳에서라도 '관세음보살' 하고 외치면 다 들리고 구원의 손길을 내 줄 수 있는 장소인 듯싶다.

마애관음좌상이라도 된 듯 펼쳐진 바다와 산하를 보고 있노라니 '아~ 이래서 이곳이 한국의 4대 관음기도도량 중 한 곳이구나' 하는 감탄이 절로 인다. 강화로 나오는 배에서 석모도를 바라보니 문득 석모도(席毛島)는 석가모니 모태의 섬을 의미하는 석모도(釋母島)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남해를 관자재하고 계신 관음보살님이 보리암과 향일암에 계시고, 서해를 관자재하고 계신 보살님이 석모도 보문사에 계신다면 동해를 관자재하고 계신 관음보살님은 낙산사 산내암자인 홍련암에 계신다.

▲ 바람이라도 불어 파도가 거세지면 어찌될까 걱정될 만큼 바닷가에 자리를 잡았다. 법당 밑이 바다이기에 홍련암은 바다에 떠 있는 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 하다.
ⓒ2004 임윤수
홍련암(紅蓮庵)은 동해의 해돋이 명소로 잘 알려진 의상대 북쪽 300m 지점에 있다. 의상대에서 바라보는 홍련암은 해안 절경에 얄밉도록 조화롭게 피어난 홍련빛 가람이다. 바람 불어 파도라도 높게 일면 어찌어찌 잠기지 않을까 걱정되고 쪽배처럼 두둥실 떠가지 않을까 염려되는 그런 형태다.

홍련암은 의상대사가 낙산사를 창건하기 전 관음보살을 친견하였던 석굴 바로 그 장소로 낙산사의 근간이 되는 성지다. 경주에서 관음보살을 친견하기 위해 이곳까지 온 의상대사는 기도에 정진하던 어느 날 푸른 새를 보게 되었다고 한다.

흔치 않은 새를 보게 된 대사는 새가 석굴 속으로 들어감을 범상치 않은 일이라 생각하여 굴 앞에서 7일 동안 철야 기도를 했다고 한다. 그렇게 7일간의 기도가 끝나던 날 바다 위에 붉은 연꽃이 떠오르고 그 위에 관음보살이 출현하니 드디어 의상대사는 관음보살을 친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대사는 그 자리에 암자를 세워 '홍련암'이라 이름 짓고, 푸른 새가 들어갔던 굴을 '관음굴' 이라고 부르니 그 이름이 지금껏 사용되고 있다.

▲ 홍련암 법당에 뚫린 구멍으로 들여다 본 바다. 철썩이는 파도소리만 들리는 게 아니라 바다가 들려주는 전설과 법문도 들릴 듯 하다. 부서지는 파도에 마음 실어 바다로 띄우고 싶다.
ⓒ2004 임윤수
해안의 절경과 어우러지는 홍련암과 낙산사 주변도 일품이지만 홍련암엘 가면 법당마루바닥을 잘 살펴볼 일이다. 마루바닥에는 길이 8cm 정도의 정사각형 형태의 구멍이 있다. 이 구멍을 통하여 내려다보면 절벽과 파도가 만들어내는 흰색 포말의 경이로움을 볼 수 있다. 장난기 섞인 마음에 낚시라도 드리우면 마음 가득 바다 속 인어에게 연민의 마음도 전할 수 있을 듯하다.

의상대사가 이 절을 창건한 이래 수많은 보수공사가 있었음에도 이 구멍만은 일관되게 유지되어 언제고 존재하는 홍련암의 상징적 징표지만 구멍의 존재를 알지 못해 보지 못한다면 분명 보았으나 보지 못한 홍련암일 뿐이다.

소금을 담고 있는 해풍이 목조건물에 해롭다는 것을 모를 리 없는 옛 선조들이 가람의 훼손을 감수하며 법당 마루에 구멍을 뚫은 건 구멍 밑 동굴에 상주한다는 관음보살을 친견하기 위해서라는 게 일반적 주장이다.

또한 의상 대사에게 여의주를 바쳤다는 동해에 살고 있는 용이 불법을 들을 수 있도록 배려하기 위해 구멍을 뚫었다는 설도 있다. 그럼에도 가장 설득력 있는 주장은 '해조음(파도소리)를 관(觀)함으로 깨달음을 얻는 이근원통(耳根圓通) 수행을 위한 장치라고 밝힌, 원광대 동양종교학과 조용헌 교수가 제기한 '수행을 돕기 위한 장치'라는 설명이다.

자칫 흥밋거리로 생각 할 수 있는 법당의 작은 구멍 하나조차도 염불삼매에 들기 위한 도구며 환경인 셈이다.

살며 살아가며 심신을 놓고 싶을 정도로 힘들거나 쉬고 싶을 때는 어머니를 부르듯 관세음보살을 불러 보라. 입을 통해 쏟아지는 한낱 울림의 관세음보살이 아니고 간절한 마음이 담기고 믿음에서 우러나는 '관세음보살'이라면 분명 어떤 형태로든 구원을 주리라 믿는다. 설사 그 구원이 눈에는 보이지 않는 마음의 평안이며 행복감일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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