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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서는 말라키 예언자를 통하여 주님의 날이
오기 전에 엘리야 예언자를 보내겠다고 약속하신다.
이 말씀은 신약의 요한 세례자에게서 실현된다(제1독서).
아기를 낳지 못하는 여인 엘리사벳이 하느님의 섭리로 아기를 낳았다.
본디 하느님의 이러한 섭리에 의심을 품었던 남편 즈카르야는
잉태 기간에 벙어리로 지내야 했지만, 하느님의 뜻에 따라
아기의 이름을 ‘요한’이라고 짓고 난 뒤에 혀가 풀린다(복음).
<주님의 날이 오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엘리야 예언자를 보내리라.>
▥ 말라키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3,1-4.23-24
주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보라, 내가 나의 사자를 보내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닦으리라.
너희가 찾던 주님, 그가 홀연히 자기 성전으로 오리라.
너희가 좋아하는 계약의 사자, 보라, 그가 온다.
─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그가 오는 날을 누가 견디어 내며,
그가 나타날 때에 누가 버티고 서 있을 수 있겠느냐?
그는 제련사의 불 같고, 염색공의 잿물 같으리라.
그는 은 제련사와 정련사처럼 앉아 레위의 자손들을 깨끗하게 하고,
그들을 금과 은처럼 정련하여 주님에게 의로운 제물을 바치게 하리라.
그러면 유다와 예루살렘의 제물이 옛날처럼, 지난날처럼 주님 마음에 들리라.
보라, 주님의 크고 두려운 날이 오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엘리야 예언자를 보내리라.
그가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리고, 자녀의 마음을 부모에게 돌리리라.
그래야 내가 와서 이 땅을 파멸로 내리치지 않으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세례자 요한의 탄생>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57-66
엘리사벳은 해산달이 차서 아들을 낳았다.
이웃과 친척들은 주님께서 엘리사벳에게
큰 자비를 베푸셨다는 것을 듣고, 그와 함께 기뻐하였다.
여드레째 되는 날, 그들은 아기의 할례식에 갔다가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아기를 즈카르야라고 부르려 하였다.
그러나 아기 어머니는 “안 됩니다.
요한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들은 “당신의 친척 가운데에는
그런 이름을 가진 이가 없습니다.” 하며,
그 아버지에게 아기의 이름을
무엇이라 하겠느냐고 손짓으로 물었다.
즈카르야는 글 쓰는 판을 달라고 하여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썼다.
그러자 모두 놀라워하였다.
그때에 즈카르야는 즉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그리하여 이웃이 모두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유다의 온 산악 지방에서 화제가 되었다.
소문을 들은 이들은 모두 그것을 마음에 새기며,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 하고 말하였다.
정녕 주님의 손길이 그를 보살피고 계셨던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성경에서는 그 사람 이름의 뜻이 그의 특징이나 미래를
암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를테면 창세기에 나오는 야곱(빼앗는 자)과
에사우(붉은 털투성이)의 경우에는 그들이 어떤 성격을 지니고
있는지를 잘 드러냅니다. 모세(물에서 건지다)의 경우에는
그의 탄생 배경뿐 아니라 앞으로 수행해야 할 사명을 잘 드러내는 이름입니다.
예언자 미카(누가 하느님과 같으랴.)나 나훔(위로받은 이)의 이름은
그들이 전하는 예언이 어떤 내용인지를 암시합니다.
때로는 아브람이 아브라함으로, 사라이가 사라로, 야곱이 이스라엘로,
시몬이 베드로로 이름이 바뀌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그들에 대한
하느님의 부르심에 따라 새로운 삶을 살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보듯이, 즈카르야는 늘그막에 얻은 아기의 이름을
무엇으로 지어야 할지 결정해야 합니다. 상식에 따르면,
‘즈카르야’라고 해야 합니다. 당시 관행으로는 할아버지나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그대로 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친척들 가운데에는 아무도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이 없는,
‘요한’이라는 전혀 엉뚱한 이름을 짓습니다.
주님의 천사가 이미 그에게 아기의 이름을
그렇게 지으라고 명령했기 때문입니다(루카 1,13 참조).
곧 ‘즈카르야’라는 이름이 사람들의 상식에 따른 것이라면,
‘요한’이라는 이름은 하느님의 뜻에 따른 이름입니다.
즈카르야라는 이름을 통하여 이 아기가 아버지처럼 사제로
살아갈 수도 있지만, 요한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 예언자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믿지 않는 다른 이들과 달리 두 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명과 세례명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이들에게
없는 다른 이름에 걸맞은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예수는 인간의 소망의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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