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여행 정보

고덕산(603.2m)

문성식 2012. 8. 12. 10:40

전북 임실군
아기자기한 산세 속에 숨은 짜릿한 암릉

글\사진 조원구 사진작가

전북 완주군과 임실군에는 각각 ‘고덕산’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이 있다. 하지만 두 산은 이름만 같을 뿐, 산세와 유래는 전혀 다르다. 완주군의 고덕산은 전주 시내 가까이에 있어 등산이나 산책코스로 이미 유명한 곳이다. 이 산은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 고대산(孤大山),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고덕산
(高德山) 또는 고달산(高達山)으로 기록되어있다. 반면 임실군 관촌면 운수리에 자리한 고덕산은 옛 문헌에 ‘임실읍의 동북방에 위치하여 마치 강한 지세를 진압하는 형세를 이루고 있다’고만 기술되어 있을 뿐, 언제부터 고덕산으로 불렸는지조차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산이 높고 약초가 많은데다 진안의 내동산과 경계를 이루어 양쪽 산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이 거울과 같고, 계곡을 뒤덮은 숲은 가을이면 불타는듯해 마치 금강산을 옮겨놓은 것 같이 수려한 경관을 자랑한다. 또한 전망바위, 마당바위, 산부인과바위, 선바위, 통천문 등 능선에 산재한 기암들이 등산객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눈길 닿는 모든 곳에서 시원한 전망 펼쳐져
전주를 경유해 임실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평일 아침에 산행 차림으로 버스에서 내린 우리 일행을 호기심어린 눈으로 쳐다보던 택시기사에게 고덕산 가는 버스를 묻자 고개만 갸웃거린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고덕산까지 운행하는 버스는 없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하는 수 없이 관촌면 운수리 고덕마을까지 택시를 이용한다. 버스터미널에서 약 5분여를 달려 고덕마을회관에서 내리니 커다란 등산 안내도가 일행을 제일 먼저 맞아준다. 안내도에 따르면, 마을회관 뒤에서 마을을 안고 있는 산이 바로 고덕산이다. 산행 시간이 그리 길지 않으니 급하게 서둘 것은 없다.

거대한 바위가 작은 바위에 기대 서 있는 ‘산부인과 바위’는 그 틈이 약 30~40cm라, 배낭을 벗고는 통과가 가능하지만 평균 이상의 체격이라면 통과가 그리 쉽지 않다.

‘등산로 입구’라 쓰여 있는 마을회관 아래쪽의 작은 이정표를 따라 콘크리트 포장길로 들어서면 고덕산 들머리가 나온다. 이곳에서부터 몇 채의 집을 지나면 숲으로 이어지는 산비탈 텃밭이 나오고, 텃밭 뒤로는 소나무 숲이 우거져있다. 이정표가 눈에 띄지 않지만, 텃밭 사이의 희미한 길 중 정면의 길로 똑바로 오르면 나뭇가지에 걸린 몇 개의 산행표지기가 눈에 들어온다. 표지기를 지나 몇 걸음 옮기면 멀리 길 안쪽에 서있는 이정표가 보인다.
이정표에서부터는 빽빽이 솟은 소나무 숲을 지나게 된다. 그 후 조금씩 경사를 높이며 계단을 오르다가 좁은 오솔길이 되어 산을 감싸고, 다시 계단이 되어 걸음을 걷는다. 봉우리까지의 거리가 가까운 만큼 가파른 경사지만, 그래도 길은 솔잎으로 덮여 부드럽게 걸음을 받쳐 준다. 이정표에서 10여분을 오르니 경사가 더욱 급해지고 안전로프가 20여m 설치되어 있다. 로프를 잡고 올라 다시 3분여를 가면 짧은 계단을 오르게 되고, 이 계단이 끝나는 곳의 바위 위에서는 거짓말처럼 전망이 탁 트인다. 절벽 아래로 고덕마을이 아찔하게 내려다보이고, 주변의 관촌마을을 넘어 눈 닿는 모든 곳이 막힘이 없다.
이 전망바위부터 본격적인 암릉 산행이 시작된다. 큰 바위들을 넘고 돌아서 다시 짧은 오르막을 올라 5분여를 가면 계단을 만나게 된다. 여기까지도 경사가 상당히 가파른데, 앞에 놓인 계단도 칸칸의 높이가 상당하다. 계단을 끝까지 오르면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제1봉이 나온다. 이곳 또한 거칠 것 없이 펼쳐지는 전경이 눈과 가슴을 모두 시원하게 한다.
1봉에서 2봉까지는 길이 험한 편이다. 짧은 계단과 두 손까지 써가며 바위를 넘어 내려간 안부에서 다시 가파르게 솟는 바위와 계단을 타고 올라야 한다. 2봉이 1봉보다 높아 전망이 훨씬 좋지만, 정상보다는 오르기 직전에 돌아본 전경이 더욱 좋다. 두 개의 통나무 의자가 놓인 2봉 정상을 지나면, 세 번째 봉우리를 향해 다시 몇 개의 계단이 놓인다. 역시 가파른 오르막이라 손도 부지런히 도와야 한다.
2봉에서 3봉까지는 5~6분 거리다. 이전 1, 2봉과는 달리 3봉은 북쪽으로의 전경이 멋진 봉우리다. 3봉에서 내려오면 거대한 바위가 작은 바위에 기대 서 있다. 바로 ‘산부인과 바위’다. 그 틈이 약 30~40cm라, 배낭을 벗고는 통과가 가능하지만 평균 이상의 체격이라면 통과가 그리 쉽지 않다. 그러나 꼭 이 바위틈을 지나 다시 태어날 필요는 없다. 바위를 돌아가는 길이 왼쪽으로 나 있기 때문이다.

1~8봉 모두 빼어나 최고봉 가리기 어려워
3봉에서 3~4분이면 닿는 4봉에도 기암이 있다. 4봉 오르기 직전에 만나게 되는 뾰족하게 선 큰 바위인데, ‘쇠뿔바위’ 또는 ‘선바위’라 불린다. 선바위 위에 서면 짜릿한 조망을 느낄 수 있지만, 오르기가 쉽지 않고 위험해 함부로 올라서는 안 될 것이다. 4봉에서 약 2~3분 정도 거리의 경사 없이 완만하게 이어지는 능선 길에 나란히 앉은 5봉을 지나면 안부 삼거리가 나온다. 이 안부 삼거리에는 통나무로 만든 의자 몇 개와 1봉과 8봉을 가리키는 이정표, 그리고 등산 안내도가 있다.

 

6봉에서 8봉으로 이어진 바위들 사이의 커다란 공간은 ‘하늘로 통하는 문’이라는 뜻의 통천문으로 불린다.

삼거리에서 정면으로 곧장 오르면 6봉이 아닌 온통 바위로 덮인 7봉이 나온다. ‘위험’ 표지판이 세워져 있지만, 7봉에서의 조망은 지금껏 지나온 봉우리 중 가장 빼어나다. 그런 까닭에 고덕마을에서는 이 7봉을 고덕산의 정상으로 삼기도 한다. 7봉에서 보면 절벽 건너편 채 40m도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8봉이 서있다. 그에 반해 6봉은 8봉에서보다 7봉에서 더 멀리, 8봉의 북쪽 한참 아래에 나무 사이로 바위더미처럼 앉아있다.
7봉에서 바위를 타고 10여m 내려오면 안부삼거리에서 내려오는 길과 만나게 된다. 하지만 밧줄이 끝나는 곳에서부터 급한 내리막이 조금 더 이어지다가 절벽에 놓인 계단에 닿게 되는데, 이 계단을 내리면 길은 내려온 만큼 다시 가파르게 솟는다. 오르막을 올라 만난 이정표는 6봉은 빼고 1봉과 8봉만을 가리키고 있다. 하지만 희미한 왼쪽 아래 길을 따라 내려가니 나뭇가지에 산행표지기가 6봉으로 가는 길을 안내해준다. 6봉으로 내려가는 길은 가파르고 좁으며, 바위가 들쑥날쑥해 매우 조심해야 힌다. 6봉은 8봉에서 쏟아져 내리던 바위가 멈춘 것처럼 앉았는데, 그 아래에는 ‘광개토대왕 바위’라 이름 붙은 거대한 바위 하나가 우뚝 서 있다.
6봉에서 되돌아올라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을 지나면 짧은 계단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20여m의 바윗길을 지나면 드디어 고덕산의 마지막 봉우리인 8봉에 오르게 된다. 8개 봉우리 중 가장 높은 8봉 정상에는 ‘고덕산 정상’이라 표기된 스테인리스로 만들어진 사각 표지 기둥이 하나 서있다. 8봉 꼭대기는 7봉만큼 전망이 좋지는 않지만, 표지기둥에서 남쪽으로 조금 내려서면 사방으로 전망이 트여 역시 8봉이 고덕산의 제일봉임을 말해준다. 또한 키를 높이며 1봉에서 7봉까지 이어지는 고덕산의 능선은 8봉 아니면 볼 수 없는 장관이다.
하산은 8봉의 남쪽 절벽에 걸쳐있는 가파른 계단을 타고 내리며 시작된다. 그런데 난간이 제대로 고정되어 있지 않으므로, 난간에 의지하다가는 자칫 추락의 위험도 있으니 매우 조심해야 한다. 계단을 내려서면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바로 우측으로 계곡을 따라 내려가는 길과 정면으로 직진해서 다시 능선을 타고 마을을 감싸 한 바퀴 돌아서 내리는 길이다. 정면의 능선을 택하면 약 1시간이 더 소요된다. 계곡을 따라 내려가는 숲길은 제법 급한 경사다. 통나무로 촘촘히 놓은 계단을 조심해서 내려와야 한다.
고즈넉이 짙은 나무 사이로 부서져 내리는 빛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숲을 내려 점차 경사를 낮추던 계단이 끝나면, 오솔길이 숲을 굽이돌아 부드럽게 이어진다. 길을 덮은 밤송이와 길가의 구절초를 보니 고덕산 산행의 적기는 가을이라는 말이 맞는 듯하다. 숲길은 천천히 걸어도 20분이면 마을에서 덕봉사를 거쳐 올라오는 임도와 만나게 되고, 다시 임도를 따라 7~8분을 내려가면 고덕마을회관에 닿으며 짧지만 행복한 산행이 마무리 된다. ⓜ

8봉에서 계단을 내려오면 소나무와 참나무가 우거진 짙은 숲길이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