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청자란
고려시대 도자기의 총칭. 청자(靑磁)·백자(白磁)·흑유자(黑釉磁)·철유자(鐵釉磁) 등 고려시대에 제작된 자기를 일컫지만, 일반적으로는 고려청자를 지칭하는 말로 인식되어 왔다. 청자의 특징은 푸른 색조에 특색 있는 곡선, 표면의 문양 등에서 다른 도자기에서는 볼 수 없는 높은 격조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병·항아리·대접 등에서 볼 수 있는 부드러운 선은 상감청자의 야국(野菊)·운학(雲鶴)·포류수금(浦柳水禽) 같은 야취(野趣)의 정신적 깊이를 드러낸 장식문양과 더불어 다른 도자기에서는 볼 수 없는 고려적인 문양들이다. 고려시대의 도자기에는 2가지 수법이 쓰였음을 알 수 있는데 하나는 송(宋)나라의 영향을 받은 남방요(南方窯)의 계통이고, 또 하나는 14세기 이후 원(元)나라의 영향을 받은 북방요 계통이다.
고려청자의 변천
고려 청자는 문종(文宗) 전후에 송(宋)의 화남 저장성[浙江省(절강성)] 월주요(越州窯)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것으로, 초기의 청자는 매우 소박한 데서 출발하여 정차 기술이 숙련됨에 따라 예종·인종 때에 이르러 비색청자시대(翡色靑磁時代)를 이루며 고려청자의 진면목을 보이는 상감청자를 낳았는데 이는 순수한 고려인의 창의력에 의한 것이다.
1. 순청자시대(純靑磁時代)
고려청자의 변천과정 중 제1기에 해당하는 1050∼1150년의 시기로 고려청자의 발생기라 할 수 있다. 고려청자의 발생시기를 단적으로 지적할 수는 없으나 송나라 서긍(徐兢)의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에 기록된 청자에 관한 글 등으로 미루어 대략 11세기 초엽으로 추측된다. 이 시기에는 이른바 비색(秘色, 翡色)으로 불리는 순수한 청자색(靑磁色)을 가진 각종 청자가 제작되었는데, 이들 청자의 특색은 두껍고 고르게 발라진 유약(釉藥) 때문에 발색(發色)이 깊고 은은하며 맑음과 깊이가 느껴진다.
2. 상감청자시대(象嵌靑瓷時代)
고려청자의 전성기인 제2기 1150∼1250년에 해당하는 시기로, 서긍의 《고려도경(高麗圖經)》의 기록으로 미루어 상감청자의 발생은 대체로 의종시대(1147∼70)일 것으로 추측된다. 상감법이란 자기를 완전히 건조시키기에 앞서 무늬를 음각하거나 새김판으로 찍고 그 자국에 백토(白土) 혹은 적토(赤土)를 메워 일단 초벌구이한 후 청자유를 발라 굽는 것인데 백토는 순백, 적토는 흑색으로 발색하여 무늬를 나타낸다. 무늬로는 운학(雲鶴)·양류(楊柳)·보상화(寶相花)·국화(菊花)·당초(唐草)·석류 등 다양한데 특히 운학 무늬와 국화 무늬가 가장 많이 쓰였고 국화 무늬는 조선시대 초기까지 쓰였다. 제2기 상감청자의 특색은 삼강무늬를 전면적으로 쓸 경우에도 배경으로서의 여백을 남길 여유를 보일 만큼 충분한 공간이 설정되고 있는 점과, 무늬가 단일 무늬의 기계적인 반복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성격이 다른 몇 가지 무늬를 통일적으로 배열하여 화폭과 같은 효과를 내고 있는 짐이다. 이 시기에는 상감청자 외에 무늬없는 청자[無紋靑磁(무문청자)]나 잡유기(雜釉器)도 만들어졌으며 제1기와는 달리 전반적으로 유색(釉色)이 엷게 나타난다.
3. 쇠퇴기의 청자
고려청자의 쇠퇴기인 제3기 1250∼1350년에 해당하는 시기로 그 기간은 1세기로 보나, 실제로는 몽골이 침입한 14세기 후반까지 1세기 반이나 된다. 이른바 국가의 말기적(末期的) 증상이 미술에도 반영되어 청자기의 퇴조를 보이는데 청자의 표면이 황록색조를 띠거나 비색을 잃으면서 상감의 무늬도 산만하고 조잡해지며 같은 무늬를 반복 사용하는 등 무의미한 도안으로 바뀐다. 기형에 있어서는 매병(梅甁)이 줄어드는 대신 접시류가 늘고 대접은 안이 깊어지고 측면이 평평한 광구대(廣口臺), 바닥이 좁아진 변형된 매병 등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진사(辰砂)·화청자(畵靑磁)같은 특수한 상감청자가 만들어지는 외에 철채자기가 등장하기도 한다. 무늬는 시대가 내려갈수록 간단해지고 천박해지면서 조선시대 초기의 분청사기 및 백자철회와 연결된다.
청자의 종류
1. 순청자
다른 색을 이용한 장식이 없고 비색 1가지로 되어 있어서 색조와 형태를 그 생명으로 하는 청자이다. 여기에는 소문(素文)청자·양각(陽刻)청자·음각(陰刻)청자·상형(象形)청자·투각(透刻)청자 등이 있다.
2. 상감청자(象嵌靑磁)
그릇이 마르기 전에 무늬를 선각(線刻)하고 백토나 흑토로 메워 초벌구이한 다음 유약을 바르고 구운 것이다. 간혹 진사(辰砂)를 섞어서 밝은 홍색을 낸 것도 있다. 또 흑토상감(黑土象嵌)의 배경 위에 넓은 화판(花瓣)의 백토상감(白土象嵌)을 한 모란·보상화 무늬를 두어 흑백의 윤곽을 인상적으로 부각시킨 것도 있다.
3. 퇴화무늬청자[堆花紋靑磁(퇴화문청자)]
백토 혹은 적토를 물에 개어 점을 찍거나 붓으로 선을 그려 무늬가 도드라지게 장식한 것이다.
4. 화청자(畵靑磁)
백로·적토 혹은 철채(鐵彩) 등으로 무늬를 그린 후 청자유약을 바른 것이다.
5. 진사청자(辰砂靑磁) 진사를 발라 장식한 후 유약을 바른 것이다
6. 화금청자(畵金靑磁)
금니(金泥)로 무늬를 넣어 900℃ 전후로 한번 더 구워낸 것이다. 7. 명문청자
음각·상감·흑필(黑筆) 등으로 표면에 명문을 새긴 것을 말한다. 명문의 종류로는 시명(詩銘)이 있는 것, 연호나 간지(干支)가 있는 것, 납입소(納入所)명이 있는 것, 기타 잠명(雜銘)이 있는 것 등으로 나눌 수 있다. 8. 고려백자
고려의 백자는 중국 화난[華南(화남)] 경덕진요산(景德鎭窯産)인 청백색이 도는 백자의 영향으로 발생하였다. 백자는 청자보다 약간 뒤늦게 들어왔지만 청자와 함께 독자적인 발달이 이루어져 기형(器形)·문양 등에서도 송(宋)·원(元)의 백자와 분간하기 힘들 만큼 정교한 작품이 생산되었다. 백자요지(白磁窯址)로서는 경기도 용인시(龍仁市) 이동면(二東面) 서리(西里)와 반곡마을에 있는 가마자리가 매우 주목된다. 1960년대에 발견된 이 가마는, 한국에서는 청자보다 수적으로는 적지만 백자도 9∼10세기에 이미 생산되었다는 분명한 증거가 된다. 고려 백자는 조선시대의 백자로 이행해 가는 과정으로 그 종류에는 소문(素文)·양각·음각·상형(象形)·상감백자 등이 있고, 전라북도 부안군(扶安郡) 보안면(保安面) 유천리(柳川里)가 백자 요지로 유명하다 고려청자 감상법첫째, 아름다운 비취색을 감상하자. 고려 도공 최고 목표는 청명한 가을 하늘 빛깔인 비취색을 구현이었다. 청자 굽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조금은 탁한 비취색에서 맑고 밝은 비취색으로 발전하다가 고려말이 되면서 탁하고 거친 비취색으로 퇴보함을 알 수 있다. 특히 국립중앙박물관의 '고려자기' 실은 시대와 제작방법에 따라 전시를 해놓았다. 동선을 따라 감상을 하되 한번쯤 돌아가서 비교해 보자.
둘째, 표면에 장식된 무늬를 주의 깊게 살펴보자. 무늬는 그 당시 수요자들 사상과 문화적 취향이 나타나있다. 주로 시문된 문양으로는 반복적인 기하학적 무늬인 연꽃무늬·국화무늬·당초무늬·보상화무늬·초화무늬 등과 서정적이고 낭만적이며 청빈한 생활을 염원하는 마음이 깃든 운학무늬·포류수금무늬·포도동자무늬·송하탄금무늬 등이 있다.
셋째, 상감기법을 살펴 보자. 금속공예나 나전칠기 입사 기법을 자기에 응용한 상감기법은 고려 도공들 독창성을 세계에 뽐내고 있다. 회화적 아름다움을 높이기 위하여 무늬를 새기고 자토와 백토를 입사하는 장인 모습을 상상해보자. 좀더 적극적인 사람이라면 금속공예품이나 나전칠기 작품을 한 번 보고 와서 비교해 보면 더욱 좋을 것이다.
넷째, 조형미와 균형미를 주의 깊게 살펴보자. 안고 있는 어미를 밀치는 아기 원숭이 모습이 다정한 '청자모자원숭이연적'이나 '청자귀형주자'처럼 조형미와 균형미가 아름다운 상형청자가 있다. 그리고 '상감청자운학문매병'이나 '상감청자양이문호'처럼 팽창하는 듯한 양감이 아름다운 청자가 있다 |
<출처;yahoo 낙숫물소리 (psljjh)>
출처 :너와집 나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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