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보시와 불공

문성식 2011. 4. 8. 00:42
1. 보시와 불공




1) 보시 수행

부처님 당시에 어느날 여러 나라를 다니며 물건을 사고 팔아 재산이 많아 부자가 된 이가 부처님께 와서 물었읍니다. 부처님 제가 장사를 하여 많은 재산을 모았읍니다. 이 재산을 어떻게 저축하고 살아야 합니까 하였읍니다. 부처님께서 부자에게 말씀하시기를 그대가 얻은 수입에서 일할은 부모를 위해서 철마다 계절에 맞는 옷과 음식을 봉양하고 용돈을 저축하여 드리고 일할은 부인을 위해 철마다 계절에 맞는 옷과 장신구를 구하여 주고 가정을 위해 저축하고 일할은 자식을 위해 교육과 양육을 위해 저축하고 일할은 자신을 위해 저축하고 일할은 미래를 위해 저축하고 일할은 부처님전에 보시하기 위해 저축하고, 일할은 이웃과 친척을 위해 저축하고 일할은 아프고 힘들어 하는 고아와 노인과 여자 그리고 장애자들을 구호하고 등, 등... 이렇게 세밀하게 하나 하나 나누어 말씀하셨읍니다. (후에 이것이 교회의 십일조 헌금의 기원이 되었읍니다.)
우리 불자들은 누구나 부처님께 공양을 하고 보시하는 것을 알고 있읍니다. 보시는 부처님이 말씀하신 보살도 수행의 첫 걸음인 육바라밀의 제일 첫번째에 있는 수행덕목입니다. 보시는 마음과 몸이 별도로 헤어지지 않는 일체의 베푸는 행위를 말한다. 보시를 하려 한다면 먼저 마음가짐과 정신이 바로 서야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밥을 먹고 나서 반찬을 먹을 때 밥과 반찬이 소화되어 나올 때에 화장실에서 그것이 맛있는 반찬이라고 먼저 나오고 맛없는 것은 않나오고 하지는 않는 것처럼 어떠한 환경과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는 굳건한 정신과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마음을 이기지 못하면 어떤것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탐, 진, 치 삼독을 극복하여야 하고 자신의 마음을 한 없이 끝 없이 하심(하심이란 마음에 있는 상을 내지 말고 끝 없는 정진의 마음을 내는 인내력입니다.)할 수 있는 높은 수행의 상근기를 연마해야합니다.
보시는 자신에게 필요없는 것을 하찮게 생각하여 버리는 마음을 내거나 아까워 하거나 대가를 바라마음은 참된 보시라 할 수 없는 것으로 보시의 진정한 보시행 이라 할 수 없읍니다. 자신에게 있어 소중하고 귀한 것, 순결한 것을 보시함으로서 정신과 마음을 함께 수행하는 것입니다. 금생의 보살도 수행으로 다음 생의 인과 응보를 생각함이 지극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의 금구 성언에 이르기를 삼일수심은 천재보요 백년탐물은 일조진이라하여 삼일 동안 수행한 마음은 천년의 보배요 백년 동안 탐하여 온 재물은 하루 아침의 먼지와 같아 바람한번 불면 날아가 버리는 것과 가타 허무한 것이라 하였읍니다.
이와 같이 보시는 탐욕의 죄업을 소멸하게 해 주는 것입니다. 보시는 무엇이든 나누어 가짐으로써 나와 이웃이 함께 기쁠 수 있는 것입니다. 보시를 할 때는 생색을 내어서는 않됩니다. 아무리 큰 보시를 했다 하더라도 생색을 내게 되면 그 공덕은 없어진다. 하였읍니다.
옛날 고승전기에 나오기를 달마대사에게 황제가 말하기를 내가 천하에 제일 큰 사찰을 수 없이 짓고 수 많은 사람들을 스님으로 양성하였는데 이 공덕이 얼마나 되는가 하였을 때 달마대사는 공덕이 하나도 없읍니다. 이와같이 이미 대가를 생각하는 마음이 일어나면 그 보시는 벌써 공덕이 없어지게 된다하였읍니다.

왜냐하면, 부처님 법문 가운데 인생은 태어남은 어디서 오는 것이며 영원한 이별같은 죽음은 어디로 가는가 태어남은 하늘의 구름이 일어남이며 이별의 죽음은 하늘의 구름이 사라짐과 같다하여 구름의 본체는 원래가 없다하였읍니다. 이 세상에 있으면서 자기가 지은 업장만이 나와 함께 할 뿐 그 어떤 것도 허망하다 하였길래 본래 이 세상에는 제 것이 없다 하였읍니다. 제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생색을 내니, 보시의 공덕은 커녕 악업만을 짓게 되는 것입니다. 이 생색을 내지 않는 보시, 대가를 바라지 않는 보시를 '무주상보시'라고 합니다. 불자들은 부지런히 수행하고 수행의 결과 다음 생에는 불국토에 자신도 나기를 바라는 무량한 보시 공덕행 이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인연은 다 좋고 나쁨이 있고 행복과 불행이 있으나 이는 다 마음에서 짓고 지은 바이니 다음생에는 불국토에 태어나 기를 발원하는 인생의 전환점이 되고 자신을 억누르고 있던 삶의 어두움을 깨끗이 하는 바르고 참된 마음을 구현하는 불자가 되어야 합니다. '댓가를 바라지 않는 베품'이란 어떤 것인가? 그것은 무소유의 가치관에 기반을 둡니다. 삼라만상의 모든 물질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재화는 중생의 노고에 의해 생산된 것이지 내 것이란 본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갖고 있는 이것은 원래 내 것이 아닙니다. 어쩌다 잘못 분배되어 나에게 온 것입니다. 즉, 원래 네 것인데 나에게 잘못 전달된 것이므로 '네 것을 네가 갖으라는 의미가 됩니다. 원래 내 것이 없으므로 베풀어 줄 것도 없읍니다.
그런데도 베풀 것이 있다면 이것은 이미 내 것이 아니라. 이 무소유의 가치에 기준을 둔 보시를 무주상 보시라 하며, 그 공덕은 한량없읍니다. 보살의 수행에서 보시는 한량이 없고 자비로워 중생과 우리 불자들의 마음을 기쁘게 합니다.


2) 보시의 종류
가장 중요한 것은 법보시이니, 진리의 법음을 이웃에 전파하는 베풀음입니다. 어느 때이고 부처님의 바른 정법을 널이 포교하고 수행함이 진실한 불자의 법보시입니다. '올바른 삶=진실'을 내 이웃에 전파하여 그들이 올바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는 것이 보시 중에서도 가장 큰 보시이고 보살의 수행덕목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일반적으로 하는 재보시가 있읍니다. 재물을 가난한 이웃에 나누어주는 것을 말하고, 이 재보시도 법보시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재보시라야 공덕이 더 크고 한량없는 무량한 공덕이 있읍니다.

또한 무외시(無畏施)가 있으니, 얼굴은 한량없이 자비스러우며 말은 항상 부드러우며 정직하고 신뢰감을 주어 내 이웃이 겪는 고통을 위로하고 공포를 없애주며, 사랑으로 따뜻이 감싸주는 것을 말합니다. 길 잃은 사람에게 길을 안내해 주고, 환자를 간호해 주며, 괴로워하는 친구를 위로해 주고, 넘어진 자를 일으켜 주며, 좋은 상품을 만들어 백성을 이롭게 하고 선정을 베풀어 편안히 살게 하는 것 등을 말합니다. 보시는 자신의 마음을 항복받고 수행하는 최선의 수행으로 착하고 어려운 이에게 보시하면 그는 진심으로 보시를 받음이니 본래 보시한 물건은 하나도 없고 그 마음이 있을 뿐입니다.
"보시는 탐욕을 끊는 첫째 바라밀이니, 나의 죄업과 고통과 장애를 없애고, 진정한 소원을 성취시키는 길은 아낌없이 베품으로써 선근공덕을 쌓는 길입니다. 그렇지만 보시라 하여도 도둑이나 사람을 해치고 위협하는 자에게는 보시하지 않겠지만 그들에게는 도둑의 길이 옳지 못함을 이러주고 참회하고 선업을 짓고 부처님의 바른 정법을 일러주는 것이 옳은 것이니 두려워하지 않고 그들의 마음과 고통을 알아 그들의 마음을 돌이키는 것이 참된 보시요, 무외시입니다. 이를 분별하지 못하면 도리어 업을 짓는 것이 되어 우리 불자 자신에게 돌아 옵니다. 마치 뱀이 물을 먹으면 독이 되고 소가 물을 먹으면 젓이 되듯이 지혜가 있는 보시어야 합니다.

보시는 위로는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이고, 아래로는 일체중생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며, 삼보를 수호하는 불자의 의무이기도 합니다."


3) 불공

불공(佛供)이란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을 말합니다. 부처님의 10대명호 중 응공(應供)이란 존칭이 있다. '응당이 공양 받을 분'이란 뜻입니다. 부처님은 모든 중생의 고동을 구제하시고, 모든 중생의 어리석음을 깨우치시고, 모든 중생을 열반으로 인도하는 분이시기 때문에, 온 우주의 대 스승이시며, 모든 생명의 자비스런 어버이시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응당히 부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의 표시로 공양을 올리는 것이며, 그것은 곧 일체중생의 은혜를 갚는 길이기도 합니다.

내가 입고. 쓰고, 자고, 먹는 세상의 모든 것 중에서 중생의 노고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없을진대, 그 은혜에 보답하는 길은 모든 것을 아낌없이 베풀어줌으로써 가능합니다. 나의 재물과 명예와 권위를 일체중생에게 돌려주는 회향(廻向)이 불공인 것입니다. 부처님께 올림으로써 일체중생에게 회향되도록 하는 것이 불공입니다.

이 불공을 올리고는 반드시 축원을 하는데, 축원은 왜 하는가? 그것은 함께 나누어 갖자는 뜻입니다. 액난과 고통이 있으면 나누어 짊어지고, 기쁨이 있으면 함께 기뻐해 주고, 일체의 공덕을 중생에게 회향하기 위해서 축원을 합니다. 우리 불자들이 보시하게 되면 그 보시는 그 것이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우선 보시의 공덕은 먼저 부처님께 하게 되는 것이고 그 다음이 부처님의 법과 승가에게 돌아오고 그 다음이 삼보에게 보시한 공덕이 우리 불자에게 오는 것이고 우리 모두에게 회향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중생은 동업중생이기에 불자가 보시함은 결국은 자기에게 복이 되어 돌아 오는 인연입니다. 위로는 부처님의 법을 따르고 아래로는 우리 불자와 중생을 위함이기 때문에 항상 회향하고 회향할 때는 언제나 축원합니다.


4) 불공물의 종류

불공물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그것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닙니다.보편적으로 육법공양이라 하여 향공양(향), 등공양(초, 인등, 연등, 장엄등 그 종류는 한량이 없다) 후에 이것이 발전하여 자등명 법등명이라 하여 자신을 등불로 삼고 부처님의 법을 빛을 삼아 정진하라는 수행으로 이어진다), 미공양(쌀, 떡을 비롯한 식량과 음식이 포함된다), 과공양(과일과 열매를 지칭한다. 후에 가면 과일은 수행의 결과로 발전한다), 화공양(꽃공양을 말하는 것이며 보살의 수행이 경지에 이르렀음을 상징으로 승화된다), 다공양(차공양을 말하며 깨끗한 물과 순수하고 귀중한 물로서 마음의 정결함의 결정체로서 수행의 결과로 고결함을 상징한다.)이상 여섯가지가 현대에 와서 크게 보편화 되었지만 그 옛날에는 이러한 규범이 없어서 그 무엇도 범부와 중생들의 삶속에서 얻은 모든 것이 해당되었으나 점차 발전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나 보통 꽃과 향, 초, 맑은 물을 올린다. 촛불을 밝히는 것은 "나도 저 촛불처럼, 내 몸을 태워 주위를 밝히는 보살행을 하게 해 주십시오"라는 뜻이다. 향을 피우는 것은 제 몸을 사루어 향기를 내는 향을 닮게 해 달라는 뜻이고, 꽃은 오는 이로 하여금 항상 세상의 때를 씻어내는 역할을 할 수 있게 해 달라는 뜻과, 저 물처럼 항상 맑은 계행을 지키게 해 달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 외에 금전이나 공양미. 과일 등 많은 공양물이 있지만 그것은 일체를 다 중생에게로 돌려주기 위한 것입니다.

부처님이 계시지 않은 오늘날에는 승단에 공양을 올려야 합니다. 스님들은 우리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리고 수행을 하시는 분들이기 때문에 경제적인 활동을 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불법을 배우고 불법을 펴기 위해서는 사원이 필요하고 사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신자들의 헌공이 당연히 있어야 한다. 오늘날에는 공양미 등 음식이나. 의복 이외에도 현실적으로 현금이 많이 필요하므로 현금을 공양할 필요가 있읍니다.

우리 불자는 반드시 불공을 드려야 합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부처님과 모든 중생의 은혜에 감사하고, 같은 불자들로부터 함께 기뻐하고 슬퍼할 수 있는 불공을 드려야 합니다. 불자로서 유대감과 동질성을 갖는 조직과 모임을 동기로 하여 새로운 활동과 새대에 맞추어야 한다. 현실과 처해진 상화에서 서로를 돕고 위로할 수 있고 삶에서 활력과 안정을 얻고자 한다면 21세기 퓨전 불국토를 이루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우리 불자들 앞에 있읍니다. 앞으로 우리 불자여러분의 무궁한 발전과 새 희망이 성취되길 부처님전에 축원합니다. 일생내내 금생내내 맨날 천날 좋은 날 되소서 !!!


모두 성불하십시요.




원종합장

'불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염불수행하는 요령 - 1   (0) 2011.04.09
관음의종류  (0) 2011.04.08
참 선  (0) 2011.04.08
목탁과 염주의 유래  (0) 2011.04.08
불자예절  (0) 2011.0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