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인 삶의 등급 가지가지 ♥
어느덧 칠순 고개를 넘기고 나면
시간의 흐름은 급류를 탄다.
일주일이 하루 같다고 할까,
아무런 하는 일도 없이, 문안 전화도 뜸 뜸이
걸려오다가 어느 날부터 인가 뚝 끊기고 만다.
이럴 때 내가 영락없는 노인임을 깨닫게 된다.
노인이 돼봐야 노인 세계를 확연히 볼 수 있다고 할까,
노인들의 삶도 가지가지이다.
노선(老仙)이 있는가 하면, 노학(老鶴)이 있고,
노동(老童)이 있는가 하면, 노옹(老翁)이 있고,
노광(老狂)이 있는가 하면, 노고(老孤)가 있고
노궁(老窮)이 있는가 하면, 노추(老醜)도 있다.
- 노선(老仙)은-
늙어 가면서 신선처럼 사는 사람이다.
이들은 사랑도 미움도 놓아 버렸다.
성냄도 탐욕도 벗어 버렸다.
선도 악도 털어 버렸다.
삶에 아무런 걸림이 없다.
건너야 할 피안도 없고, 올라야 할 천당도 없고,
빠져버릴 지옥도 없다.
무심히 자연 따라 돌아갈 뿐이다.
- 노학(老鶴)은-
늙어서 학처럼 사는 것이다.
이들은 심신이 건강하고 여유가 있어
나라 안팎을 수시로 돌아다니며 산천경계를 유람한다.
그러면서도 검소하여 천박하지 않다.
많은 벗과 어울려 노닐며 베풀 줄 안다.
그래서 친구들로부터 아낌을 받는다.
틈나는 대로 갈고 닦아 학술논문이며
문예 작품들을 펴내기도 한다.
- 노동(老童)은-
늙어서 동심으로 돌아가
청소년처럼 사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대학의 평생 교육원이나 학원 아니면
서원이나 노인 대학에 적을 걸어두고
못다한 공부를 한다.
시경 주역 등 한문이며 서예며 정치 경제 상식이며
컴퓨터를 열심히 배운다. 수시로 학우들과 어울려
여행도 하고 노래며 춤도 추고 즐거운 여생을 보낸다.
- 노옹(老翁)은-
문자 그대로 늙은이로 사는 사람이다.
집에서 손주들이나 봐주고 텅 빈 집이나 지켜준다.
어쩌다, 동네 노인정에 나가서 노인들과
화투나 치고 장기를 두기도 한다.
형편만 되면 따로 나와 살아야지
하는 생각이 늘 머릿속에 맴돈다.
- 노광(老狂)은-
미친 사람처럼 사는 노인이다.
함량 미달에 능력은 부족하고
주변에 존경도 못 받는 처지에
감투 욕심은 많아서 온갖 장을 도맡아 한다.
돈이 생기는 곳이라면 최면 불사하고
파리처럼 달라붙는다.
권력의 끄나풀이라도 잡아 보려고
늙은 몸을 이끌고 끊임없이 여기저기 기웃거린다.
- 노고(老孤)는-
늙어 가면서 아내를 잃고 외로운 삶을 보내는 사람이다.
이십대의 아내는 애완동물들같이
마냥 귀엽기만 하다.
삼십대의 아내는 기호 식품 같다고 할까,
사십대의 아내는 어느덧 없어서는
안 될 가재도구가 돼 버렸다.
오십대가 되면 아내는 가보의 자리를 차지한다.
육십대의 아내는 지방 문화재라고 할까,
그런데, 칠십대가 되면 아내는
국보의 위치에 올라 존중을 받게 된다.
그런 귀하고도 귀한 보물을 잃었으니
외롭고 쓸쓸할 수밖에 없다.
- 노궁(老窮)은-
늙어서 수중에 돈 한 푼 없는 사람이다.
아침 한술 뜨고 나면 집을 나와야 한다.
갈 곳이라면 공원 광장뿐이다.
점심은 무료 급식소에서 해결한다.
석양이 되면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들어간다.
며느리 눈치 슬슬 보며 밥술 좀 떠 넣고
골방에 들어가 한숨 잔다.
사는 게 괴롭다.
- 노추(老醜)는-
늙어서 추한 모습으로 사는 사람이다.
어쩌다 불치의 병을 얻어 다른 사람 도움 없이는
한 시도 살 수 없는 못 죽어 생존하는 가련한 노인이다.
인생은 자기가 스스로 써온 시나리오에 따라
자신이 연출하는 자작극이라 할까,
나는 여태껏 어떤 내용의 각본을 창작해 왔을까,
이젠, 고쳐 쓸 수가 없다.
희극이 되든 비극이 되든 아니면 해피엔드로 끝나든
미소 지으며 각본대로 열심히 연출할 수 밖에 없다.
= 좋은 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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