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찾게 되는 '아는 맛'의 정체
아는 맛이 위험한 이유
향미, 뇌로 느끼는 감각
본능적으로 뇌에 저장된 익숙한 음식 끌려
음식 기호도, 감정에도 영향 받아
다이어터들은 흔히 '아는 맛이 무섭다'고 한다. 구미가 당기는 음식은 대부분 새롭기보다 매번 먹었던 것들이기 때문이다. 다이어트를 하지 않는 사람도 점심 시간만 되면 얼마 전에 먹었던 음식 몇 가지 중에서 또 고르곤 한다. 음식을 먹을 때도 익숙한 조합을 찾게 된다. 짜장면에 고춧가루를 넣어 먹는 사람은 꼭 고춧가루를 넣어 먹어야만 한다. 왜 익숙한 맛이 더 맛있는 걸까? 맛은 사실 입과 코보단, 뇌로 느끼는 것이기 때문이다.
◇식단, 본능적으로 정해지는 이유
음식 속 화학물질은 혀와 콧속 수용체에서 전기 신호로 바뀐다. 이 신호는 뇌의 여러 영역을 거쳐 맛을 느끼는 뇌 피질로 전달된다. 다음 식사 때 뇌는 혀와 코에서 얻은 정보를 활용해 먹고 싶은 음식을 고르게 된다. 물론 다른 감각도 이 과정을 거치지만, 향미는 특히 뇌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어 의지보다 본능이 더 크게 행동을 좌우한다.
얼마나 밀접하냐면, 향미의 80%는 후각에서 오는데 뇌 발달이 후각으로부터 시작됐다는 가설이 있을 정도다. 후각을 인지해 행동하려고 진화한 뇌 시스템에 시각, 청각 등 다른 감각 작용이 더해지면서 지금의 뇌로 발달했다는 이론이다. 근거로는 후각이 다른 감각계와 다르게 처리되는 것을 들 수 있다. 다른 감각계 정보는 시상(뇌로 전달된 감각 신호를 중간에서 종합하는 곳)을 거쳐 해마(기억을 저장하는 곳)와 편도체(동기, 학습, 감정, 행동 등 정보를 처리하는 곳) 등 변연계로 전달되지만, 후각 정보는 시상을 거치지 않고 바로 변연계로 전달된다. 해부학적으로도 후각계가 변연계와 가장 가깝다. 태어나자마자 제일 먼저 느끼는 감각도 후각이다. 우리는 태아일 때부터 양수를 통해 어머니가 섭취한 음식과 어머니의 향을 인지하고 기억할 수 있다.
◇뇌에 저장된 익숙한 음식으로 욕구 충족
다이어트 중일 땐 특정 아는 맛의 음식이 유독 아른거리곤 하는데, 다이어트 중 결핍된 영양소가 맛에 대한 감각이 발달한 이유인 생존 본능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식품연구원 류미라 연구원은 "전부 미각으로 설명되진 않지만, 특정 영양소를 오래 안 먹으면 실제로 뇌에서 그 영양소가 풍부한 식품이 먹고 싶어지는 욕구를 불러일으킨다"고 말했다. 뇌가 특정 음식을 떠올릴 수 있는 이유는 입과 코에서 일차적으로 각 영양소가 맛으로 치환돼 느껴지기 때문이다. 탄수화물은 단맛, 단백질은 감칠맛, 나트륨은 짠맛, 독소는 쓴맛 등이다. 서울대 생명과학부 최명환 교수는 "입과 코뿐만 아니라 장 내에도 미각 수용체들이 있는데, 특정 음식으로 영양소를 섭취한 경험을 뇌에서 저장하고 조합해 향후 행동을 결정하게 된다"고 말했다.
뇌는 저장된 정보를 바탕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배가 고플 땐 평소 먹었던 음식을 쉽게 떠올린다. 예를 들어 몸에서 탄수화물 섭취가 필요할 때, 주식이 밥인 사람은 밥, 떡인 사람은 떡, 빵인 사람은 빵, 국수인 사람은 국수 등을 떠올리는 식이다. 영양소 결핍뿐만 아니라, 우리 몸의 항상성을 유지하려고 하는 뇌의 모든 욕구 충족 요소에서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보통 추운 북부 지역 사람들이 더운 남부 지역 사람들보다 훨씬 아이스크림을 많이 소비하는데, 편한식품정보 최낙언 대표는 저서 'Flavor, 맛이란 무엇인가'에서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익숙함이 큰 몫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며 "얼음에 익숙한 북쪽 지역 사람들이 더울 때 시원한 얼음을 더 갈망하는 것"이라고 했다.
◇끔찍할 때 먹어서 아는 맛은 맛없어
아는 맛이 다 맛있는 것은 아니다. 음식의 기호도는 감정선과도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류미라 연구원은 "먹어본 맛이어도 끔찍한 경험 중 먹은 음식이라면 역겹다고 느낄 수 있다"며 "맛있는 음식도 절대적이지 않고, 따뜻한 집밥 등 행복하고 편안할 때 먹은 음식일 수 있다"고 말했다. 여러 감각이 변연계로 전달된 뒤에는 편도체가 이 신호를 증폭한다. 크게 증폭되면 오래 기억되고, 아니면 기억에 잘 안 남는다. 감정이 실리면 이 신호는 특히 강해진다. 다른 감각 신호보다도 후각 신호는 편도체와 가장 가까이 닿는 신호라, 감정을 자극하며 오래 기억되는 경향이 있다. 이 때문에 우리는 모두 사연 있는 음식 하나씩 간직하고 있다. 사연이 떠오를 때면, 그 음식을 먹고 싶기도 하다. 비가 와 괜히 우울할 땐 파전이 생각나거나, 누군가가 그리울 땐 같이 먹은 추억의 음식이 생각나는 등이다.
= 이슬비 헬스조선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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