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자리
육지와 멀리 떨어져 있는 섬은 매우 외로운 존재처럼 보인다.
그래서 나는 섬에게 물어 보았다.
"섬아, 얼마나 외롭니?"
섬이 말했다.
"나는 외롭지 않아.
왜냐하면 섬기슭에 바닷물이 저렇게 출렁대고 있으니까.
험한 파도를 견디면서 나 자신을 끝끝내 지켜야 하기 때문에
외로워 할 겨를이 없거든."
나는 밤하늘의 달하고 별이 누구보다 쓸쓸할 거라고 생각하고
달과 별에게 물어 보았다.
"달아, 그리고 별아, 얼마나 쓸쓸하니?"
달하고 별이 말했다.
"우리는 쓸쓸하지 않아.
이 세상 사람 모두가 우리를 쳐다보고 있는 걸.
그들에게 달빛과 별빛을 보내 줘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밤이되면 무척 바쁘거든."
외롭다, 쓸쓸하다, 고독하다, 이렇게 쉽게 말하지 말자.
그것이야말로 사치다.
주변을 한 번 돌아보라.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에 빠짐없이 모든게 놓여있다.
형광등은 형광등대로, 책상은 책상대로,
서랍속의 일기장은 일기장대로 자기의 자리를 잘 지키고 있다.
자기의 자리를 잘 지키는 사람이나 사물은
외로워지고 싶어도 쓸쓸함을 느낄 겨를이 없다.
그 자리가 높은 자리든 낮은 자리든,
빛나는 자리든 빛이 나지 않는 자리든 지금 자기가 발딛고 선 자리,
그 자리가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라는 생각.
바로 그 생각이 이 세상을 지탱시키는 버팀목이 된다.
여름날 산과 들이 온통 푸르름으로 가득차게 되는 까닭은,
아주 작은 풀잎 하나,
아주 작은 나뭇잎 한 장의 푸르름이 있었기 때문이다.
겨울날 눈 덮힌 들판이 따뜻한 이불처럼 보이는 것은
아주 작은 눈송이들이 서로서로 손 잡고 어깨를 끼고 있기 때문이다.
연약해 보이는 작은 힘들이 모여
아름답고 거대한 풍경화를 연출해 내는 것이다.
자기 자리의 중요성을 아는 사람은
절대로 외로움이나 쓸쓸함 따위를 느끼지 않는다.
나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나를 필요로하는 곳이 단 한군데만이라도 있다면
그 사람은 매우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
지금, 이 자리의, 자신으로부터
작지만, 결코 작지 않은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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