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생애 제 3 장. 유년기와 소년기
1. 그리스도에 대한 세상의 환영
그리스도가 오실 때가 이르렀다. 그러나 그가 세상에임하실 때 세게는 처음에 그를 반기지 않는듯했다.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니라](눅2:7
가이사 아구스도의 호적령 발표에 이 여관은 만원이 되어 상당한 수입을 얻을 수 있었다. 주인에게는 더 없는 행운이었다. 그에게는 조금의 여가도 없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분주하였다. 이처럼 분주한 사람에게 밤늦게 찾아온 두 나그네의 딱한 사정이 구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그리고 만일 거절하지 않는 다면 이미 들어있는 다른사람을 내어 보내야만 했다.그들의 차림새가 가난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거절했다. 만일 요셉과 마리아가 돈이있는 사람처럼 보였더라면 여관 주인이 끝까지 거절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탄생하실때 당하신 거절과 같이 오늘날도 사람들은 자기의 바쁜 수입 때문에 예수를 거절하고 있다. 지금 당장 그리스도가 오셨다해도 사람들은 다른 일을 위하여 딴 곳으로 가버릴 것이며, 자기들의 문 밖에 초라하게 서 있는 예수를 멸시하고 다른 일에 더 관심을 가질 것이다. 이런 사정을 이미 사도 요한이 밝힌 바 있다. [그가 자기 땅에 오나 자기 백성이 영접치 아니하니라](요1:11
(1) 그의 모친이 영접했다.
성경에는 모성애를 찬양하는 기사가 여러 곳에 있다. 십계명에 어머니에게 행할 이상적인 효도의 기록이나(출20:12),잠언서에 [그 자식들이 일어나서 사례하며](잠31:28) 한 귀절이나 사26:13
첫째, 마리아는 경건한 여자였다. 세상의 많은 여자 중에서 구속주 예수 그리스도를 낳으시도록 하나님으로부터 뽑힌 여자다. 어리신 예수께서 맨 처음 기도를 이 마리아의 무릎 위에 앉아서 드리셨다.
둘째, 마리아는 고독을 참은 아름다운 마음씨를 지닌 여자다. 그는 하나님께서 이루시려는 우주적인 사업 계획을 천사로 부터 전달받은 시간부터 이 사실을 마음 속에 깊이 간직하였던 숭고한 의로움의 경험자였다(눅2:19요19:25
세째, 마리아의 고귀한 희생 정신이 우리로 하여금 그를 우러러 보게 하낟.그는 하나님께 이렇게 대답했다.[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워지이다](눅1:38눅2:35
(2) 목자들이 그를 환영했다. 그림 : 목자들의 경배 :별을 따라 찾아온 목자들이 암굴로 된 마굿간에서 막 탄생 한 그리스도를 예배하고 있다. 오른쪽에 있는 마리아와 요셉의 훌륭한 옷과 왼쪽 두 목자들의 옷은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다. 91*111cm 미국 내셔널 캘 러리 소장.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를 보려고 목자들이 찾아왔다는 이야기는 주님의 환영 기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록이다. 옛날 이스라엘에는 그들의 노래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시편23편)와 같이 목자의 기사는 항상 하나님과의 관계를 설명한다. 그뿐 아니라,예수 자신이 자기를 선한 목자라고 말했으며 양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하나님의 목자라고 증언했다(요10:11
주의 영광을 가장 먼저 바라본 사람들은 특수층의 사람이 아닌 평범한 베들레헴 목자들이었다. 이 평범한 사람들이 이 영광에 가장 먼저 접했다는 것은 첫째, 자기들의 일에 충실하고 자신을 겸손하게 지키는데서 환상을 본것이며, 둘째 항상 깊이 있는 생활의 내면을 가지고 순진한 태도로 경건을 지키며, 어린 아이의 심정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하늘 나라의 문이 가장 쉽게 열리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한 덜붙임으로 베드로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이를 새벽 갈릴리 호수에서 배를 타고 있는 그에게 기적의 그리스도가 나타나셨다(눅5:8창28:12
(3) 박사들이 환영했다.
전설에 의하면 박사 세 사람 중 두 사람은 메소포타미아에서 온 아시아인이고 한 사람은 아프리카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들이 예물을 가지고 아기 예수를 찾아 베들레헴까지 간 데는 다음과 같은 세가지 목적이 있다. 첫째, 복음은 모험이다. 그들은 아브라함처럼 그들의 사랑하는 가정을 멀리 떠나[어디로 가야 할지 아직 못하는 길을 걸어 갔다](창12:4,히11:8
둘째, 복음은 시대와 사상에 도전한다는 것이다. 박사들은 당시의 과학자요 사색가였다.
세째, 복음은 땅 위에 있는 모든 민족에게 도전한다는 것이다.
(4) 시므온과 안나가 환영했다.
시므온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눅2:25
다음 세롯당이란 것이 있었는데 이들은 종교를 민족주의에 토착시킨 사람들이다. 로마 정부에 항거하고 유대국을 회복하자는 야망에 집착된 사람들이었다. 그러면서도 이스라엘의 심령을 집착시킬 수 있는 정당은 못되었다.
이스라엘의 참된 애국자들은 겸손하고, 조용하고 경건한 사람들로서 사두개인이나 서기관들과는 단 5분의 대화도 빈번하게 생각했으며, 지혜로운 랍비들이 보기에는 어리석은 자로 보였고, 열광적이고 떠들기를 좋아하는 세롯당을 충고할 기회조차 없었던 무명의 인사들이었다. 그러나 가장 심각한 문제, 가령 기도라든지,하나님 앞에서 갖추어야 할 마음의 청결같은 일에 대하여서는 전술한 모든 종교가들과는 비교도 안될만큼 앞서가는 사람들이었다.시므온과 그 동료들이 바로 이런 사람들로서 이스라엘의 누룩이 되었으며 기둥과 주춧돌이 되었다.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데리고 성전에 올라 왔을때 시므온은 예수를 품에 안고 축복해 주었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이 시골 여인이 안고 온 아기가 누구인지 보이지 않았다. 오직 시므온만 알고 있었다. 그는 하나님을 보는 영적 식별력과 예수를 알아보는 영안이 있었다. 그가 예수를 품에 안고 환영하는 광경을 주의해 보라. 지나간 시대의 사람이었지만 새 시대를 받아들일 넓은 아량을 가지고 있었다. 만약 그가 낡은 시대의 풍속을 고집한다. 해도 우리는 그를 나무랄 수 없는 형편이다. 그러나 그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 마음은 열려 있었으며 하나님의 지선이 그에게 임할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는 새 시대의 상승인 아기 예수를 마음껏 축복해 주었다. 마치 황혼이 깃드는 석양에 피로한 노동자가 종업을 고하는 종소리를 들은듯,또는 여명을 보고 기뻐하듯이,시므온은 그 아기를 말미암아 찾아온 새 시대에 대한 기쁨을 노래한다. [주재여 이는 말씀하신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나이다](눅 2:29눅 2:40)(
2. 아버지의 일
그림 : 콜롬바의 제단화(중앙부) 19세기 중엽까지 쾰른의 콜롬바성당에 있었던 그 림으로 이 부분은 동방 박사의 경배장면이며. 이 그림의 왼편에는 수태고 지. 오른편에는 성전봉헌과 그리스도의 어린시절 이야기가 시간적인 순서로 그려져 있다. 패널.유화.138*153cm.
예수님의 공생애 3년 이전,30년 동안의 생애에 대하여는 전해 내려오는 기록이 없다. 신약 외전에는 예수님께서 여러가지 모양의 전설로 전하고 있으나 그것은 신빙성이 없고 관심 둘만한 것이 못된다. 오직 30년 간의 생활 중에 우리에게 알려진 단 하나의 사실이 있다. 그것은 예수께서 12세 때 유대인의 다른 어린이들과 동등하게 [율법의 아들]이 되어 예루살렘 성전 축하에 참석한 사실이다(눅2:42
예수의 눈에 비친 예루살렘 성전과 그 도성에 대한 인상이 어떠했겠는가 상상해 보자. 기념식이 끝난 다음 그는 성전에서 발견되었다. [왜 나를 찾으시나이까?] 고 물었다 [내가 내 아버지의 곁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눅 2:49눅 4:23,요6:667:5
누가가 누가복음을 편집한 이면에는 예수의 모친 마리이가 제공한 재료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누가마저도 이 닫힌 문을 열어 주지는 못하였다. 아마도 그것이 감ㄷ추어지는 것이 더 잘된 일인 것 같다. 감추어 둔 그 사실은 신자의 경건 수행에 유익하고 그리스도의 준비 기간의 침묵은 한 거룩한 기초라 할 수 있다.
3. 소년기의 감화
그러나 그리스도의 준비 기간에 일어난 몇 가지 사건에 대하여 생각해 볼 여지는 있다. 내면적인 문제 보다 우선 외부적인 문제를 생각해 보자. 그의 생애와 관계된 자연,인간성, 그리고 성경, 아버지의 일터 및 그의 가정을 생각할 수 있다. 그는 이런 외부의 제반 관계를 통하여 그의 아버지 하나님과 깊고 끝없는 영교의 생활을 계속한다.
(1) 자연과의 관계
복음서의 기록을 보면 예수님께서 얼마나 자연을 사랑하셨는가에 대하여 분명히 나타나 있다. 복음서 기자들이 이런 문제를 다루었기 때문에 전기독교 역사와 세계를 다스린 많은 스승들의 아름다운 교훈들, 즉 들의 백합화(마6:28),추수의 비유(요4:35),자라는 씨앗(막 4:28마8:20),양을 기르는 일(눅15:4고전3:10엡6:13),헬라의 육상경기(고전9:24
(2) 인간성과의 관계
그의 준비 기간이 침묵 중에 흘러갔지만 여러 면으로 보아 예수는 그 기간에 인간성을 배운 사람이다. 장터에서 친구들과 함께 놀고 있는 광경(눅 18:1),농촌에서 자란 한 청년이 도시로 뛰어나가 허랑방탕하는 광경(눅15:11),한 광부가 지방 관리에게 가서 사정하는 광경(눅18:1마6:5요2:24
(3) 성경과 예수
예수께서 읽으신 성경은 물론 구약성경이었다. 구약은 유대인 교육의 주초였으며, 기둥이었다. 유대의 다른 어린이와 같이 예수께서도 창세기,신명기,시편,이사야,예레미야 등의 성경을 읽으며 자라났다고 하겠다. 그가 장서한 때까지 오랜동안 성경을 읽고 반복하는 것이 그의 일과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성경을 목표를 세우고 연구했을 것이다. 광야에서 시험을 바으실 때, 성경 말씀으로 그 모든 시험에 승리 하셨다(마4:7-10사61:1,눅4:18
당시 히브리어는 죽은 문자로서 일반에게 사용되지 않고 다만 母語였다.70인역에 이미 구약이 헬라어로 번역은 되었지만 예수님은 히브리어로 된 성경을 읽고 연구하셨다. 당시 상용어는 히브리어가 아니고 셈계통의 아랍어였다. 그러나 헬라어 상용의 시대로 바뀌어 팔레스틴의 주민들은 두 가지 말을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 예수께서도 헬라어를 사용하실 수 있었지만 아랍어를 사용하셨다. 복음서가 헬라어로 기록되었지만 그중에는 예수께서 아랍어를 널리 사용하신 흔적이 있다. 모두 예수님이 사용하신 말씀으로서,[달리다굼](막5:41),[예바다](막 7:34),[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막15:34
(4) 직업 관계
예수님은 나사렛의 목수였다(막 6:3
죄인이 받을 비난도
수욕의 십자가도
사랑으로 대신 짊어지셨네
나사렛 목수가 걸어가신 길
등에 지신 무거운 그 짐
모두가 다 같이 하는 일이지만
그는 하나님을 위하여 바쳤네.
나사렛 목수예수의 집 문밖에는 [내 멍에는 쉽다](마11:30
(5) 가정관계
예수님은 대가족을 가진 가정에서 자라났음을 항상 기억할 필요가 있다(마13:55,막6:3눅15:8),가루와 누룩 이야기(마13:33), 밤에 갑자기 찾아온 손님을 대접하기 위하여 이웃집 사람을 깨워서 떡을 빌려온 이야기(눅11:5),등경 위에 둔 등불 이야기(마5:15),어린애들이 무엇을 먹고 싶어서 간청하는 이야기(마7:9마13:55
매일 성경
눅 1:26-35 주의 사자 눅 1:46-56 마리아의 노래 눅 2:8-19 베들레헴의 들 마2:1-12 동방박사들 눅 2:25-40 노년이 청년을 환영함 눅 2:41-52 성부의 사업 눅11:5-8 소년시절 가정에 대한 기억 눅15:8-10 "
토론을 위한 문제
1.나사렛에서 예수의 "고요한 시기"의 의미는 무엇인가?
2.그 복음서는 예수의 구약성서 묵상에 대해 어떤 증거를 제공하며 오늘의 구약성세에 대한 우리의 자세에 대하여 이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3.성육신이 어떤 의미에서 유년과 부녀와 가정 생활을 구했는가?
4.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매지 아니하였으나 역사는 이점에서 반복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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