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예수님의 생애 제 2장. 때가 차매

문성식 2020. 10. 22. 12:06

 

 

    예수님의 생애  제 2장. 때가 차매

 

탄생의 준비

이곳 사람들은 세계의 중심지가 예루살렘의 성분교회-예수의 무덤 자리였다는 곳에 세워진 교회-라고 그곳에 오는 여행가들에게 말한다. 어떻게 생각하면 이 말이 과장 같이도 들리지만 지구의 중심주가 팔레스틴이라는 것은 지리적으로 일리가 있는 말이다. 팔레스틴은 유럽,아시아, 아프리카 등 3대륙을 연결하는바 지중해 동해안에 교량의 위치에 있다. 3대륙의 주민들이 자기들이 살고 있는 땅을 각기 한 바퀴씩 일주할때,3자가 공통적으로 만날 수 있는 지점이 바로 팔레스틴이다. 고로 이곳이 세계의 중심부라는 전설은 이 전설을 만들어낸 사람들이 인식했던 것보다 더욱 사실에 가까왔다.

베들레헴과,나사렛과, 갈보리가 기독교 신앙의 요람이라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기독교가 세계 역사상 종교로서의 실현을 위해 진출한 곳이 바로 팔레스탄이며, 이곳은 세계적 종교를 시작하기에 최적한 장소였다.

그러나 하나님이 정하신 이곳이 그리스도가 나실 이상적인 처소였다면 하나님이 정하신 시기 역시 이상적이었다. 이제 이점을 생각해 보자.[기약이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갈4:4

다시 말하면,사회적, 경제적, 도덕적,그리고 종교적인 제반 조건이 하나님의 품에 계시던 독생자 그리스도가 탄생할 모든 조건에 이르렀기 때문에 탄생하셨던 것이다. 루퍼트 부룩(Rupert Brooke)은 예수 탄생을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하나님 자신이 우리 인간에게 오신 그 시간을 우리는 감사하자. 우리의 젊음을 사로잡아 주신 그때, 우리를 잠에서 깨우쳐 주신 그 때를,

눅 2:9-14 그림 / 목자들에게 예수의 탄생을 알림

인류 역사의 모든 시간 중 하나님의 품에 계시던 독생자 그리스도가 이 땅에 강림하신 그 때보다 더 영광스러운 시간을 어느 때 대하겠는가? 그 영광의 시간과 탄생의 사건이 교차되었던 것이다. 인류사의 페이지를 넘기면서 모든 세대에 전하여진 이야기들을 얼마든지 살펴보라.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셨던 시대 보다 더 놀라운 시대는 결코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세익스피어는 예수의 출현을[인간들의 사건에는 때(밀물)가 있는 법이다]라고 말했다. 좀더 깊이 생각해볼 그리스도는 인간 세계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건에도 때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밀물은 넘칠때, 사업의 모든 준비가 갖추어졌을 때, 세게는 이 아들이 나타나기를 절규했고, 이 역사적인 밀물을 인류는 마음으로 받아 들여야만 했고 이 조류를 타고 하나님이 인류 역사속에 모험의 걸음을 옮기셨다.

이 밀물은 받아들인 루터는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 되시니라는 찬미로 전 유럽을 진동시켰고, 죤 낙스는[신앙의 자유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외침으로 스콧틀랜드를 뒤흔들었고, 웨슬레는 영국을 성화로 불붙였다. 헬라와 로마 세게에 갈릴리부터 한 사람 예수 탄생을 알리는 천군 천사의 노래와 나팔 소리가 울렸다. 바울의 말대로 [때가 차매 하나님이 아들을 보내신 그때는 하나님의 지혜와 섭리가운데 정해진 시간이었다. 모든 상태가 그의 오심을 위해 못르익은 바로 그 시점에 예수께서 오셨던 것이다.

2. 정치적 준비

그리스도가 탄생하기 위하여 준비된 사실은 무엇인가? 그의 출현하는 때를 위하여 세계는 어떻게 준비하고 있었는가? 먼저 우리는 그리스도 탄생을 위한 정치적인 준비를 살표보자.그리스도 탄생 당시의 세계의 정치적인 위치는 역사상 어떤 특징을 지니고 있는가?당시의 세계는 정치적 통일을 이룩한 시기였다. 이 정치적 통일의 주역은 로마 황제 가이사였다. 군소국가들이 제각기 자기 변방을 지키던 시대는 지나갔다. 분립,이기심,무정부주의로 산만한 국제정세,주변 국가의 국방 강화시대에서 한걸음 발전한 시대였다.

대서양에서 카스피해까지,영국에서 나일강까지, 하드리아 국경에서 유브라데에 이르는 모든 도로, 및 지역에는 로마제국의 깃발의 휘날리고 있었다. 열국의 혼돈 상태는 지나가고 강국 로마의 정치세력이 중동 전지역을 통일시켜 세게는 이른바 한 이웃이되었다.

이러한 국제정세는 그리스도의 복음사역에 있어서 세가지 크게 공헌한 사실을 들 수있다. 즉 로마 주변 국가의 평화, 교통상의 편의, 그리고 언어의 통일 등이었다.

만일 그리스도가 한세기쯤 일찌기 출현했다고 가정한다면, 주변 국가들이 각각 쇄국정책으로 문호를 폐쇄하고 있었기 때문에 육지로는 국가적인 장벽이 가로 놓여 있고, 수로에는 해적들의 장애가 있어서 그리스도의 복음은 각국으로 전파될 수 없었을 것이다.

만일 그리스도가 한세기쯤 후에 오셨다고 가정해보자. 복음을 전하고 듣는 모든 사람은 북쪽에서 나타난 야만족들이 이룩한 문화와 대결하기에 매우 분주했을 것이다.그러나 예수는 로마가 이미 세계 평화를 이룩한 다음에 오셨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은 베들레헴에서 울려 퍼진 천사의 장엄한 노래를 아무런 속박없이 자유롭게 그리고 확실하게 전해 들을 수 있었다.

다음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이 세계를 더 발리 정복할 수 있었던 요소는 편리하게 개통되어 있는 로마의 공도였다. 제국의 이 끝에서 저 끝에 이르는 넓은 도로는 로마제국의 눈부신 토목기술 발전에 힘입은 바 있다. 당시 수많은 노동자들이 이 도로 공사에 땀을 힘입은 바 있다. 당시 수많은 노동자들이 이 도로 공사에 땀을 흘린 사실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시는 환영 작업이었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사실 그들은 이 큰 일을 위하여 일한 사람들이다. 이 발달된 교통기관을 이용하여 로마군이 어느 지방이나 들어갈 수 있었던 것처럼 그리스도의 복음도 이 길을 이용하여 편리하게 진군할 수 있었다. 이렇게 복음의 불길은 곳곳에서 점화되고 있었다.이렇듯 초대교회 선교운동이 활발했던 성공의 배후에는 로마제국의 교통기관이 편리를 제공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다.

세째로 언어의 통일을 들어보기로 하자. 초대교회 선교사들이 언어가 통일되지 않은 세계에서 활동했다면 그들의 노력은 고달프고 미약했을 것이며, 또한 범위도 매우 좁았을 것이다. 따라서 전도의 진로도 여러모로 불편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어느 곳으로 가든지 자기들이 사용하는 말이 통할 수 있는 언어통일 시대에 살고 있었다. 지방 방언 때문에 때로는 두가지 말을 사용하기도 했지만 그러나 대개는 헬라어를 표준어로 사용하고 있었다. 갈라디아 거리에서나, 아덴의 모임에서 나, 로마나 스페인에서 복음을 전파할 때에 헬라어만 사용하면 어느 지방이든 통할 수 있었다.

이렇듯 로마제국의 정치적인 안정과 발달된 교통수단과 통일된 언어가 전세계로 하여금 한 이웃이 되도록 작용하였으니 이때야말로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실 가장 적기였다.

현시대를 분석해보자,역사는 지나간 일들을 되풀이한다. 오늘이야말로 생활을 변혁시키는 가장 좋은 시기에 도달했다. 과거 어느 시대보다도 국가간의 이웃관계가 가까와졌다. 모든 나라들이 서로 떨어져 있으면서도 그 교제상황을 볼때 거의 밀착되어 있는 실정이다. 세계의 이편 구석에서 일어난 일이 다음날에는 저편 끝에 알려져서 논의의 대상이 되는 것을 본다. 전적인 동시에 도덕적이며 정신적인데까지 이른다. 영국이나 소련,그리고 인도에서 일어난 새로운 사상은 순식간에 번져 전 세게를 허리띠처럼 동여 매어 버린다. 과거 어느 시대 보다도 현대의 전파력은 광범위하고 비상하며 이 사실은 이론이 아니고 실제다.

사람의 생각도 이와 정비례한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데 있어 오늘의 과학은 얼마나 좋은 기회를 제공해 주는지 모른다. 이 기회를 값있게 이용하는 것이 교회의 책임이다. 한 나라, 한 교회, 일개인의 영혼에 그리스도의 불이 붙는다는 것은 전세계 인류의 모든 영혼에게 성화를 옮겨 붙이는 결가가 된다. 세상에 있는 그리스도의 한 적은 지체인 교회가 오순절 다락방의 은헤를 다시 받게 된다면 그것은 곧 전세계에 세워진 교회들과 사회에 하늘나라를 임하게 하는 길이 된다. 그리스도의 복음의 지금 넓게 열려있다. 진실로 복음의 때가 이르렀다고 하겠다.[볼찌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도다](계 3:8)

3. 경제적 준비

예수께서 오신 시기는 정치적으로만 준비가 완료된 것이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때가 이르렀다고 본다. 고대 로마의 찬란한 문화의 그늘,그 사치와 낭만의 배후에는 생활의 빈곤이 밀물처럼 강한 도전으로 사람들을 불안하게 괴롭혔다 로마 가도를 걸어가는 세사람 중 두 사람은 단순히 다른 사람의 생활기구이거나 또는 유동 재산의 대우를 받는 노예였으며, 때로는 이 노예들이 사회에 소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로마의 시인들은 지나가 버린 과거를 황금시대로 노래했고, 히브리 예언자들의 말과 같이 그들이 동경하는 시대는 행복을 약속하는 미래의 약속이 아니었다. 그들의 모든 자랑은 과거의 역사 이야기였으며 당시는 철의 시대라고도 표현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가이사 왕통이 다스리는 여러 지방이 이때처럼 경제우ㅢ기에 봉착한 때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예수님 탄생 당시의 실정은 고달펐다. 이런 경제적 공황에서 팔레스틴 지방만 윤택이라는 이치는 없다. 계속되는 전쟁의 여파, 날로 더하여 가는 헤롯 대왕의 사치와 낭비,과중한 세금, 인구 증가 등은 이 지방에 사는 사람들에게 생활의 안정을 보장시킬 수 없었고 오히려 무리한 불경기만 연속되고 있었다. 고로 모든 국민의 생활은 걱정과 근심으로 불안했고 누구의 표정을 보아도 보장이 없는 내일의 염려로 가득차 있었다. 그리하여 세계는 일대 고민 투성이로 화해버리고 말았다.

이토록 암담한 시대에 갈릴리에서 한 소망의 외침이 메아리침으로 사람들은 마음에 즐거움을 얻었으니 그가 곧 예수이며 그는 임하실 적기에 출현하셨던 것이다. 여기에서 한 가지 문제를 생각해보자. 즉 복음의 역사를 분석해 볼때 부흥이 경제 번영시대에 더 잘 이루어지는가! 아니면 불경기에 더 잘받아들이느냐 하는 문제다,물론 경제난에 봉착하면 고민과 염려가 더 쌓이고 내일의 빵문제로 신경이 날카로와지기 때문에 신앙이나 종교문제를 생각할 여유가 없어지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와는 정반대로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해결할 수 없는 궁지에 빠졌을 때를 이용하여 자기의 일을 이루시는 기회로 만드신다. 인간의 모든 재물이 다 없어지고, 밑천이 다 달아나 버린 것은 세계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준비의 기회를 준 것이다.

웰쉬(welch)는 그의 저서 The Preparationr for christ in the O.T. lesson III과 XI X에서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인류 역사상 가장 처참하고 심각한 윤락의 시대가 역사적인 대부흥을 일으키는 시간이다]

우리에게 부딪치는 모든 재난에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인류 역사에 맞아들이는 준비 과정이었고, 거치른 사막이었기에 하나님의 길을 예비하는 공도가 되었다. 정치적인 준비 못지 않게 경제적인 준비도 있었던 것이다.

4. 도덕적 준비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당시는 도덕적으로도 그 기약이 찼다고 하겠다. 영국의 시인 스와인번(Swin bun)은 [그리스도 이후에 세게는 결코 이 분처럼 유쾌할 마음의 고향을 보여준이는 없다]고 노래했다. 그의 노래는 계속된다.[예수만이 자연의 밝음과 좋은 정신을 독차지 하셨다.] 그때까지 헬라,로마는 그들의 자연 숭배오 제우스(Zeus)와 디오니수스(Diny us),아프로다일(Aprodite)을 섬기므로 행복을 찾으려고 했었는데 예수의 출현과 함께 그 모든 이교적인 신앙은 무너져 버리고 말았다.

오 - 창백한 갈릴리 사람이여 그래도 그대는 승리자로다 세계는 당신의 숨결 안에서 잿빛으로 변하여졌노라

위에서 말한 바 고대세계의 행복이나 순수나 유쾌나 도덕은 모두 하나의 단순한 신화를 말할 뿐이다. 역사가 고증하는 넌센스이며 사실과 상반되는 증언이었다. 만일 당신이 세게의 참된 진리를 알기 원한다면 스와인번에게서 배울 것이 아니라 로마서 1장

독일의 역사가(고전학자)몸센은 말하기를 [세계는 낡아져간다. 제아무리 로마의 가이사라도 이것을 다시 젊어지게 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사실이 그렇다.세계는 이제 괴롭히는 벌래와 종기와 비애만이 남아있다. 어느 곳에 가도 우리의 고귀한 정신이 발 붙일만한 땅은 찾아볼 수 없었다. 가장 귀중한 영혼들이 어느 곳에를 가든지 재난과 몰락과 항구적인 밤에로 몰아 넣는 반란적인 길을 걷는 것이었다. 이런 시대에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그 능력의 지대하심으로 낡은 세대를 새롭게 단장하셨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영으로 개인과 사회,그리고 전국가적으로 도덕적 생활의 강화를 일으키는 것이 현실에 요구되는 바가 아니겠는가?도덕관념이 해이해지고 상호에절이 파괴되고 사회질서가 문란해질 때는 이 해이와 무질서와 문란에 대한 반동이 반드시 오는 법이다. 사람의 영혼 밑바닥에 잠재해 있던 하나님의 성격이 표면적으로 나타나 반발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인망만을 위주로 하는 신조의 애착과 현대의 자유주의적 복음의 유혹이 잠시는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시간을 뺏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마음으로 원하는 진정한 즐거움은 언제까지나 그런 얄팍한 윤리에 짓밟히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상황에서 항상 탈출할 기회를 찾고자 하는 마음이 예수님 탄생 배후에 잠재한 일반의 도덕적 욕구였다. 고로 그가 이 세상에 오신 때는 도덕적으로도 그 기약이 이르러 탄생의 준비가 되었다고 하겠다.

5. 종교적 준비

그리스도께서 오신 때는 종교적으로도 그 기약이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로마의 낡은 우상들은 기능을 상실하고 없었으며 이런 종교적인 사태를 수습하기 위하여 두 가지의 모험이 시도 되었다. 헬라의 오림프스산에 우글거리고 있다는 동양신들이 로마 종교인들의 피로에 지친 정신 세계에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하였고, 다른 하나는 이같은 수입신이 아닌 국산품을 만들었던 것이다.

즉 로마황제 자신이 신의 존재로 부각하여 모든 사람들이 마음을 바쳐 그에게 무릎을 꿇고 추종하기를 요구했었다. 그러나 두가지 모험은 모두 실패했다. 상처 받은 그들에게 한마디도 들려줄 수 없었던 오림프스의 신들은 추호의 위로도 주지 못했으며 로마에 있는 만신전은 아무런 작용도 할 수 없었다. 죄로 할퀸 그들의 심령에 가이사의 신성은 아무런 가치도 없었던 것이다. 이처럼 외래신들과 국산품적인 로마의 가이사신이 인간의 깊은 요구를 채워주지 못하였을 때 인간 영혼의 기갈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던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게 절망적인 사태만은 아니었다. 참 신 하나님으로부터 한 절박한 요구가 사람들의 마음에 싹트기 시작했다. 세계 도처에서 문제를 보다 깊은 차원에서 생각하면서 도 영적교류가 항상 없는 사람들은 흑암 저 너머에서부터 붉게 단장하고 찾아오는 광명한 새아침을 기다리고 있었다.유대인들은 다른 나라사람보다 지난 수세기 동안 선조들에게 지시되었던 메시야의 희망이 멀지 않아 그 어둔 구름을 헤치고 새아침의 광명으로 비쳐줄 것을 굳게 믿고 있었다.

중간시대(구약과 신약 사이에) 살았던 유대인들의 수많은 기록들은 이위대한 소망의 글로 계속되어 있었다.예컨대 요단강 동편에 나타난 야인 세례 요한이 이상한소리로 외치자마자 군중은 한결같이 그 이상한 사람에 대하여 [ㅇ 사람이 메시야가 아닌가?] 할 정도로 그들의 메시야 고대사상은 강렬하였다. 로마 제국 구석 구석에 산재해 있던 유대인들은 한결 같이 이 기대와 꿈속에 살았다.

열정이 극에 달한 이 기대는 그리스도의 출현을 위한 준비였다고 평가하는 것이 타당하겠다. 즉 종교적인 상황으로 볼때 그가 오실 때가 이르렀기 때문이다.

오늘날도 종교적으로 그 시대와 비슷한 경향이 보이고 있다. 옛날 로마 시대처럼 한편으로는 낡은 신들이 빛을 잃어가고 있다. 편리를 위한 신들, 존재하기에 피곤을 느낀 신들, 중고품으로 변질된 종교의 전통, 물질주의,세속주의들의 세력이 점차 안주할 땅을 잃어가고 있다. 반면에 우리 세대에 그리스도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붐을 일으키고 있다. 우선 구미 각국에서 출판된 최근 에수에 관한 서적들을 보라. - 기독교 세계 밖에 있었던 나라들 - 특히 인도같은 나라까지도 이제는 나사렛 예수를 우러러 보고 그의 지도를 받으려는 사실을 생각해 보라! 도처에서 청년들 사이에 새로운 영적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사실을 생각해보라! 이런 사건들이 전세계를 동시에 움직이는데 이 영적 충동의 밀물은 곧 그리스도를 향한 관심인 것이다.우리 시대는 장벽을 헤치고 밀물처럼 부딪치는 교회의 세력에 불가형력일 수 밖에 없다. 고로 현시대도 로마시대처럼 그리스도의 기약이 가까와졌다고 하겠다.

구주 예수 그리스도는 이상에 열거한 바와 같이 여러 가지 준비 과정을 거쳐 세상에 임하셨다. 하나님의 마음에는 우주가 창조함을 받을 때부터 역사의 벨이 울리는 날까지 모든 사람의 기다림 속에 그가 숨어 있어야 하리라는 마련이 있었다. 그리하여 세계의 모든 사정과 사람들의 모든 마음이 예수를 맞이할 수 있는 준비가 완성 되었을 때 그가 세상에 오셨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세상에 오실 때, 그는 늦게도 일찌기도 오시지 않고 적합할 때 오셨다.그날은 곧 주의 날이었다. 언제나 마음으로 예수를 왕으로 모실때 그날은 주의 날이 되는 것이다[주예 수여 오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