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제87위 조화서 베드로(9.20) 기본정보
성인명 | 조화서 베드로 (趙-- Pet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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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일 | 9월 20일 |
성인구분 | 성인 |
신분 | 농부, 순교자 |
활동지역 | 한국(Korea) |
활동연도 | 1815-1866년 |
같은이름 | 베드루스, 조 베드로, 조베드로, 페드로, 페트로, 페트루스, 피터 |
성 조화서 베드로(Petrus)는 수원 지방의 도마지에서 태어났고, 1839년에 순교한 조 안드레아(Andreas)의 아들이다. 부친을 잃은 뒤에 그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신창 땅으로 이사하여 몇 년 간을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복사 겸 마부로 일하였으나, 최 신부가 선종함으로써 1864년에 다시 전주 소양면 성지동에 정착하여 농사를 지으면서 조용하고 착실하게 살고 있었다. 그는 한 막달레나(Magdalena)를 아내로 맞아 아들 조윤호 요셉을 낳았는데, 얼마 후 부인 한 막달레나가 죽자 홀아비로 있다가 다시 김 수산나와 재혼하였다. 그의 성격은 쾌활하면서도 겸손하고 양순했으며, 신자의 본분을 충실하게 지켜 신자다운 몸가짐을 잃지 않았다. 1866년 12월 5일 저녁 갑자기 들이닥친 포졸들에게 붙잡힌 조 베드로는 자기 집에서 심문을 받고 있었다. 이 광경을 보고 놀란 그의 며느리가 달려 나가 자기 남편인 조윤호 요셉에게 집에서 벌어진 사건을 이야기하였다. 자기 아들 요셉이 집으로 들어오자 아버지는 “너는 여기에 들어와선 안 된다. 어서 다른 곳으로 가라”고 하였으나 아들은 이를 완강히 거절하면서 자기 아버지 방으로 들어가 함께 체포되었다. 이렇게 하여 부자가 함께 묶여 전주로 향하는 도중에 여러 가지 수모와 혹심한 천대를 받았으며, 주막에서 며칠을 묵어가며 목적지인 전주에 도착한 후 곧이어 다른 신자들과 함께 심문을 받게 되었다. 조 베드로는 감옥에 갇혀서도 함께 있는 다른 신자들을 격려하여 평온한 마음으로 순교에 임하도록 준비시켰다. 또한 그는 죽인다고 협박하며 배교를 강요하는 원님에게 “내 비록 이 세상에서는 죽어 없어지더라도 죽은 뒤 내 곧 새 세상에 가서 살게 될 것이요.”라고 응수하여 더욱 잔인한 고문을 당하기도 하였다. 이윽고 그에게 사형선고가 내려졌다. 사형장에 도착한 조 베드로는 침착하게 죽을 준비를 한 다음 희광이에게 “이곳 처형장에서까지도 흉포한 그대여! 천주교를 좀 믿어보시오. 우리는 죽으면서도 천주교를 신봉할 것입니다”라고 한 후 성호를 긋고 나서 세찬 칼을 세 번 받고 장엄하게 순교하였다. 때는 1866년 12월 13일, 전주 숲정이에서 순교한 그의 나이는 52세였다. 그는 1968년 10월 6일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해 방한한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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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 구중서 외 저, 한국 천주교회가 낳은 103위 순교성인들의 생애 3 - '성 베드로 조화서, 성 요셉 조윤호', 서울(성황석 두루가 서원), 1992년, 130-139쪽.
- 아드리앙 로네/폴 데통베 저, 안응렬 역, 한국 순교자 103위 성인전 (하), '제11장 조 베드로 외 순교자 6위', 서울(가톨릭출판사), 2017년, 314-351쪽.
- 한국 가톨릭대사전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10권 - '조화서',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2004년, 7712-77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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