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는 맞는게 없어요
두상달 장로 김영숙 권사의 <행복한 가정 만들기>
사랑은 동사다. 사랑은 명사가 아니다.
사랑은 움직이고 표현돼야 빛을 발한다.
표현되지 않은 사랑은 땅 속에 묻히 보석일 뿐이다.
하루에 세 번씩 배우자를 향해 사랑한다고 말하라.
그러면 부부의 관계는 곧 좋아질 것이다.
자신이 표현한 말을 그대로 실천하면 행복을 얻는다.
신경외과 의사들의 연구에 따르면 말하는 신경은 모든 신경을 지배하고
따뜻한 말은 우리 몸의 모든 신경에 그대로 전달된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이 인간의 삶과 생각을 지배한다는 것이다.
좋은 환경에서 자란 미남미녀가 결혼해 반드시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것은 아니다.
이 세상의 서로에게 딱 맞는 부부는 단 한 사람도 없다.
다만 서로 맞춰가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행복의 열매를 수확하는 것이다.
모처럼 화려한 외출에 나선 한 부부.
이 부부는 모처럼 영화를 한 편 본 후, 저녁을 무엇을 먹을지 망설였다.
아내는 스파게티를 원했고 남편은 얼큰한 매운탕을 제시했다.
아내는 외출 기분을 상하고 싶지 않아서 남편의 뜻에 따랐다.
식사를 마치고 아내는 백화점에 들러 물건을 좀 고르자고 말했다.
그러나 남편의 반응은 냉담했다.
“빨리 집에 가서 좀 쉬고 싶어.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싫은 것이 바로 백화점 쇼핑이야. 집에 가서 잠이나 자자.”
아내는 또 한번 속이상했다.
‘잠이나 자? 집은 잠이나 자는 곳인가.’
남편이 미웠다. 부부는 정이 없으면 남보다 훨씬 미워진다.
그리고 이유가 나오기 시작한다.
영화를 보고 집에 돌아온 아내의 마음이 영 개운치가 않았다.
도무지 배려하는 마음이 없는 남편이 야속했다.
그러나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에 대한 서운한 감정을 떨칠 수가 없었다.
아내가 백화점에서 물건을 사올 때마다
마음 한편에서는 불안과 걱정의 그림자가 너울거렸다.
‘내 월급이 얼만데... 자녀들은 점점 커가고, 직장생활은 점점 불안한데...
속마음도 모르는 이 사람은 웬 백화점 타령이란 말인가.’
현실을 너무 모르는 아내가 답답했다.
그렇다고 아내가 살림을 소홀하게 해온 것은 아니었지만
돈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아내가 철없게 보일 뿐이었다.
요즘 남편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스멀스멀 밀려올 때면
편히 잠을 이루지 못할 지경이었다. 남편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우리 부부는 도대체 맞는게 없어.’
아내는 아내대로 기분이 상한 상태였다.
백화점에 들러서 무슨 고급 물건을 사자는 것도 아닌데,
그것을 매몰차게 거절하는 남편이 서운한 것이다.
뭐든지 자기 맘대로만 하려고 드는 고집센 남편에 대해 증오심이 밀려온 것이다.
아내의 감정을 철저히 무시한 채 자신의 의지대로만 행동하는 남편이 야속했다.
아내는 속이 상해 토라진 남편의 등에 입을 삐죽이며 투덜거린다.
“정말 우리는 서로 맞는 게 없는 부부야.”
사실 남편들이 싫어하는 것 중의 하나가 쇼핑이다.
가족들이 먹고 입을 것을 사는 것인데도 남편들은 그것이 싫은 것이다.
아내의 쇼핑이 너무도 지루하고 불편할 뿐이다.
아내들은 많은 옷을 입어본다.
옷의 색과 모양을 비교해 가면서 몇 시간씩 쇼핑에 몰입한다.
드디어 남편의 인내심은 한계 상황에 이른다
“도대체 옷을 살거야, 말거냐?”
남편은 먼저 집으로 돌아오고 아내는 기분이 상한다.
그래서 미국의 몇몇 백화점에는 아내가 쇼핑하는 동안
남편들이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남편들을 위한 의자’가 놓여 있다.
그 의자에는 이런 글씨가 적혀있다.
“피곤에 지친 남편들을 위한 자리”
(Tired Husband's Bench)
미국의 남자들도 쇼핑하는 아내를 따라다니는 것을
무료하게 여기는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런 남편을 아내들은 ‘이기적이고 나쁜 남자’라고 생각해선 안된다.
단지 여성과는 좀 다른 사람인 것이다.
한쪽이 돈을 모으는 재미로 사는 사람이라면
다른 한쪽은 그것을 멋지게 사용하는 것에서 흥미를 느낀다.
서로의 다른 점을 인정할 때 부부는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다.
때로는 이런 남편의 처사가 좀 야속하더라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부부가 서로 맞는 게 없다고 불평하기에 앞서 서로의 차이점을 인정해야 한다.
가장인 남편의 책임은 무한하다.
가정의 야전사령관으로서 가족에게 질서와 믿음을 심어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하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자녀를 향한 어느 아버지의 고함.
“공부는 언제 할거니? 너처럼 놀기만 하면 대학은 어떻게 가겠니?”
아버지의 퉁명스런 말투에 자녀들이 슬금슬금 제 방으로 들어간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자녀들과 진지한 대화를 나눈 지도 꽤 오래 된 것 같았다.
요즘 아이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도 서먹서먹했다.
어쩌면 자녀들로부터 이 아버지는 은근히 왕따를 당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점점 자녀와 아내로부터 권위를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아내는 자녀를 윽박질러 제 방으로 쫓아내는 남편을 곁눈질 하며 중얼거린다.
“말 좀 부드럽게 하면 어디가 덧나나. 우리 부부는 참 맞는게 없어.”
성경은 이 땅의 부모들에게 자녀교육을 위해 중요한 메시지를 주고 있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에베소서 6:4)
배우자는 하나님이 주신 최대의 선물이다.
우리의 결혼생활은 하나님의 명예와 직결되는 것이다.
배우자의 약점은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이다.
상대방을 나에게 맞추려고 하는 데서부터 부부의 불행은 시작된다.
내가 먼저 배우자에게 맞춰나가라.
그러면 새로운 행복의 문이 열릴 것이다.
부부가 서로 맞는 게 없다는 것은 곧 조화를 이루며 살라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한 생명이 잉태될 때도 정자가 1회에 3억 개 정도 방출된다.
그중에서 선택되는 한 개의 정자는 어떤 것인가.
먼저 도착한 정자 중에서 난자는 유전자 분석을 하여
자기와 가장 다른 유전자를 택하게 된다.
많은 다를수록 건강하고 우수한 생명체가 되는
반면 비슷할수록 열성으로 태어나게 된다.
다수 종족으로 이루어진 중국 계림 지역에 소수민족 중 걸노족이 있다.
그 종족은 점점 숫자가 줄어 2,100여 명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 이유는 단 한가지, 근친결혼 풍습 때문이다.
근친결혼으로 태어나는 후손들은 상당수가 저능아, 장애인, 열성의 사람들이다.
부부가 다른 것은 차이일 뿐 틀린 것이 아니다.
다른 것은 개성이고 축복의 인자이다.
부부가 다를 때 그 가정이 다양성을 누리며 번성하게 된다.
부부들이며, 배우자를 ‘맞춤복 인생’으로 만들지 말라.
당신이 먼저 멋진 조화의 미를 발휘하라.
그러면 상대방도 당신의 멋진 인생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세상에 자신의 이상형에 딱 들어맞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서로의 차이점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부부의 행복은 시작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