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06.jpg 조선 후기 헌종이 17세에 혼인할 때의 모습을 그린 의궤도. 비단바탕에 채색. 세로 51㎝, 가로 115㎝. 동아대학교박물관 소장.

 

이 그림은 헌종(憲宗)의 계비 홍씨(繼妃 洪氏)를 맞아들이는 예식의 광경을 그린 것이다. 헌종의 처음 왕비(王妃)인 효현왕후 김씨(孝顯王后 金氏)는 헌종 9년에 죽고 다음 해 10월에 익풍부원군 홍재룡(益豊府院君 洪在龍)의 딸을 계비로 맞이하였다. 가례(嘉禮)는 효종(孝宗)의 잠저(潛邸)였던 어의동본궁(於義洞本宮)에서 행했다.

 

0307.jpg 조선 후기인 1844년(헌종 10) 도화서(圖畫署) 화원(畫員)들이 그린 것으로 보인다.

헌종은 7세 때 즉위한 뒤 10년째에 계비 효정왕후(孝定王后, 明憲王后)와 가례(嘉禮)를 올렸는데, 이 8폭병풍은 그 가례모습을 그린 의궤도(儀軌圖)이다.

 

이 〈헌종가례도병〉은 헌종의 어머니인 조대비(趙大妃)의 40세를 축하하는 행사장면을 그린 〈조대비사순칭경진하도병 趙大妃四旬稱慶陳賀圖屛〉(동아대학교 박물관 소장, 보물 제732호)보다 3년 전에 제작되었지만 크기와 화법 등이 비슷하다. 아마도 같은 도화서 화원들에 의하여 합작된 것으로 보인다.

 

제1폭에는 예문제장(藝文提掌) 조병구(趙秉龜)가 쓴 하례교문(賀禮敎文)이 행서체(行書體)로 깨끗이 쓰여 있고, 제 8폭에는 선전관청(宣傳官廳)의 좌목(座目)이 있다. 모두 24명인데 관등·성명·본관(官等·姓名·本貫)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제3∼7폭까지 6폭에는 창덕궁 인정전을 비롯한 크고 작은 전각(殿閣)이 산수·수목·인마들과 함께 질서정연하면서도 호화롭게 그려져 있다. 이 가례도를 보면 140여년 전의 궁중혼례식 모습을 확실히 알 수 있어서 회화로서의 가치뿐만 아니라, 역사자료로서도 귀중한 보물이 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제2폭의 위에 있는 하얀 석문(石門)은 반도지(半島池) 쪽에 있는 불로문(不老門)이어서 꽃다운 나이에 왕비를 맞는 왕의 불로장수를 상징하고 있는 것 같다. 또, 제7폭 아래에는 진선문(進善門)과 석교(石橋)인 금천교(錦川橋)도 그려져 있어서 이 의궤도가 사실에 충실하고 있음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