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산 유운홍(詩山 劉運弘)의 작품세계
시산 유운홍(詩山 劉運弘,1797(정조21)~1859철종10)]
1819년(순조 19) 이수민(李壽民)·이의양(李義養) 등 여러 화원들과 함께 문조신정후(文祖神貞后) 가례반차도(嘉禮班次圖) 제작에 참여하였다. 현존하는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산수인물도이지만, 그밖에 화조와 풍속을 다룬 그림도 남기고 있다. 이들 그림에는 대체로 김홍도(金弘道)의 영향이 가장 두드러져 보이고 있다.
청산고주도(靑山孤舟), 지본 담채, 24.5 cm X 2.6 cm, 고려대학교 박물관
등고망원도(登高望遠圖)
베짜기(길쌈),국립중앙박물관
유운홍(劉運弘), <부신독서도(負薪讀書圖)>, 견본담채, 22 Cm X 16.2 cm, 서울대박물관 소장
부신독서(負薪讀書), 견본담채, 16.1 cm X 22.1 cm,서울대학교 박물관
등에 짐을 지고 걸어가면서 책을 읽는 한 남자가 있다. 나무를 해서 산길을 내려가는 중인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은 중국 전한시대 무제 때 인물인 주매신(?-B.C. 109)이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아버지에게 책을 많이 읽어야 뛰어난 인물이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컸다고 하는데, 크게 뛰어난 머리는 아니지만 정말 열심히 책을 읽었나보다.
나무를 해서 팔아 생계를 유지해야만 하니 먹고 살기 어려웠다. 그러나 그는 나무를 하면서도 책을 걸어놓고 읽고, 집에 돌아올 때도 등짐을 진 채로 걸으면서 책을 읽었다고 한다. 길을 잃고 헤매기도 하고, 늦게 들어오기도 하고... 열심히 나무를 해와도 시원찮을 판에 아내의 입장에서는 책만 읽는 남편이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결국 마누라가 집을 나가고 혼자가 되었다. 이것이 결말이라면 그림에 등장할 만큼 칭송받는 입장은 되지 못했다. 그는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책을 읽어 뛰어난 학식을 갖게 되고 어찌어찌해서 한 무제에게 등용, 출세의 꿈을 이루게 된다. 몇 년 후 고향 태수로 금의환향하고는 옛 부인과 그녀의 새남편을 불러 대접하니 그 부인이 옛날 자신의 행동에 부끄러움을 느낀 나머지 자살을 했다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결말이다.
반딧불에도 책을 읽고 눈에 비친 달빛에도 책을 읽지만, 어쩔 수 없이 나뭇짐을 해야 하는 고달픈 삶 중에서도 열심히 책을 읽는 것이 동양의 미덕이었나 본다. 책을 열심히 읽으라는 교훈 외에, 사람마다 다른 교훈을 얻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남들이 뭐라 해도 한 가지를 무식할 정도로 꾸준히 파라는? (남자를 볼 때는 특히)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고 미래를 내다봐야 한다는?
주매신은 그 이후 중앙정부로 돌아가 어떤 이의 죄상을 자세히 파헤쳐 자살하게 하였는데, 이로 인해 오히려 한무제의 분노를 사 죽임을 당하였다. 융통성 없는 성격 때문이었을까.. 그의 인생은 다소 불행하게 막을 내렸지만, 뭔가를 이루려면 이 정도의 몰입은 필요한 것 같다.
* 이 주매신의 고사를 그림으로 옮긴 화가는 조선 후기에 활동한 도화서 화원인 유운홍(劉運弘1797-1859?)입니다. 1819년(순조 19) 다른 여러 화원들과 함께 문조신정후(文祖神貞后) 가례반차도(嘉禮班次圖) 제작에 참여한 바 있다. <부신독서도>외에 남아 있는 그의 작품으로는 고려대학교 박물관 소장의 〈청산고주도 靑山孤舟圖〉·〈월야소선도 月夜小仙圖〉등이 있는데, 전반적으로 19세기 이후 형식화된 화원화풍의 단조로운 경향에다가 김홍도(金弘道)의 영향이 살짝 보인다고 할 수 있겠다.
유제조어도(柳題釣魚圖), 지본담채, 22.5 cm X 35.8 cm, 선문대학교 박물관
우리나라의 낚시가 나오는 그림은 대체로 산수화 중 한 구색으로 등장하고 있어 정적이며, 옛그림의 낚시꾼은 대부분 한 사람이다. 고화 속 낚시꾼은 고사, 은자의 모습으로 나타나기 쉽지만, 이 그림에 묘사된 낚시꾼은 두사람의 소년이다. 그리고 산 소년은 막 큼직한 물고기를 거어 올려 손에 잡으려 한다.
산수화이 한 구석이 아니라, 낚시 장면을 묘사한 동적이며 생기와 확기가 있는 드문 옛 그림이다. 한 소년은 고기르를 올리며 즐거워하는 표정이자만, 같이 낚시하는 소년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내겐 입질이 왜 안오지? 약간의질투심에 약이 오르고 속이 탄 것일까? 소년이지만 낚시꾼답다. 그림에등장하느 소년은 분명 우리 바지저고리르 입었다 관념적인 낚시 그림 중에 나오는 중국풍 옷을 입은 낚시꾼과는다른 모습이다
고깃배
화조도도
기방(妓房), 기녀도, 화첩, 종이에 채색, 23.9 cm X 36.2 cm, 개인소장
유운홍은 화원으로 첨사를 지냈으나, 지금가지 공개된 작품이 별로 없어 크게 주목받지 못한 인물이었다. 그의 자는 치홍(致弘)이고 호는 시산(詩山)이다. 산수, 인물, 화조에 능한 것으로 젼해져 오나 대표작으로 내세울 만한 이렇다 학 그림이 없었는데< 한국미술 5천년전>의 미국 전시를 통해 기녀 한폭이 공개되면서 풍속화로 그의 면모룰 다소 부각 시키게 되었으며 알려진 그림 중에선 그의 대표작으로 다루어지게되엇다.
몇점 안되는 그의 그림들은 소폭들로 이를 통해 볼 때 기량이나, 용필, 용묵에 있어 김홍도의 여맥(餘脈)이 보이나, 두드로진 면을 찾기 힘든 화가임을 부인키 힘들다. 기녀는 조선 후기에 크게 유행한 속화(俗畵)에 있어서 신운복이 영향이 간취된다.
화면을 꽉 메운 공간 구상으로 , 화면 중앙에 아이를 업고 있는 여인과 긴 담뱃대를 문 여인, 거울 앞에서 탐스로운 긴 머리를 손질하는 여인등 , 각 여인이 자태가 잘 나타나 있다. 가늘고 고른 필선은 거듭 신윤복의 영향을 느끼게 하며, 세 인물의 자연스러운 자태는 묘사력을 알려준다. 배경이 되는 문짝과 툇마루의 평행을 이룬 선들은 기하학적 문양으로 등장 인물의 무대 구실을 해내고 있다.
'동양화,산수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산 김준근(箕山 金俊根)의 작품세계 Ⅱ-풍속화 (0) | 2015.09.08 |
---|---|
방호자 장시흥(方壺子 張始興)의 작품세계 (0) | 2015.09.08 |
금강첩/ 겸재 정선 (0) | 2015.09.08 |
창주 이성길(滄洲 李成吉) (0) | 2015.09.06 |
아계 이산해 (鵝溪 李山海) (0) | 2015.09.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