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열풍이 부산에도 도착했다. 해운대·광안리 덕분에 한반도 대표 피서지로 꼽히는 이곳에 둘레길이 정비된 것. 바로 ‘부산 갈맷길’이다. 흔히들 부산 사람을 ‘부산 갈매기’라고 표현한다. 맞다. ‘부산 갈매기(부산 사람)가 바다를 끼고 걷는 길’이란 뜻이다. 연결성이 부족했던 기존 갈맷길을 정비하여 전 코스를 잇는 순환코스로 했다. 문탠로드를 포함한 부산의 대표적인 9개 코스와 20개의 노선으로 완성된 것이다. 거의 환형으로 이어지는 총 263.8km의 길을 트레킹 시간과 거리, 경사 등을 고려해 난이도를 상중하로 나눠 소개하고 있다. 봄이 자꾸 늦춰지는 지금, 어디를 걸으면 좋을까?
부산 갈맷길의 야생 트레킹 코스, 가덕도
연대봉에서 바라본 거가대교와 천성만. 천성만 끝자락에서 바다 밑으로 몸을 숨긴 가덕해저터널은 대죽도와 닿고서야 물 위로 모습을 드러낸다
부산 갈맷길을 현장 답사한 <걷고 싶은 부산>의 이성근 사무처장은 “먼저 남녀노소 모두 무난하게 걷고 싶다면 ‘문탠로드~민락교~오륙도 선착장’을 잇는 2코스가 좋다”며 “부산의 야생을 맛보고 싶다면 가덕도가 으뜸”이라고 꼽았다. 산과 바다 그리고 섬마을 구석구석을 살피며 부산의 속살을 엿볼 수 있는 코스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연대봉에서 낙동강 하구와 남해가 맞닿는 장면까지 더해지니 그야말로 꼭꼭 숨겨둔 속살 구경이다. 낙동강이 만든 섬 진우도도 볼 수 있다. 갈맷길의 20개 코스 중 5-2 가덕도를 걷게 된 이유다.
선창에서 천가동주민센터로 향하는 길. 낮은 돌담을 따라 섬마을의 속살을 조금씩 살필 수 있는 골목길이 시작된다
자, 가덕도로 출발하자. 부산에서 출발한다면 지하철 1호선을 이용해 하단역까지 이동, 하단역에서 58번 버스를 타고 가덕도에 들어서면 된다. 부산역에서 택시로는 약 1시간 안팎, 요금은 2만원 선이다. 58번 버스 종점 선창에 내려 성북IC를 지나 천가초등학교로 향한다. 드디어 가덕도에 들어섰다. 천가동으로 들어서는 초입, 돌담길이며 붉은 흙에 몸을 숨긴 푸릇한 대파가 인사한다.
야생섬 가덕도, 거가대교로 깨어나다
오늘 걸을 가덕도 트레킹은 선창~천가초교~소망보육원~어음포 초소~연대봉~지양곡~대항~대항새바지~어음포~누릉령~가덕도기도원~동선항~내눌입구~국수당~정거마을~항월고개~선창이다. 총 20.1km로 6~7시간 소요된다. 제법 가파른 산길을 품고 있어 등산화를 신는 편이 좋다. 난이도 또한 ‘상’이다.
만약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면 천가초등학교 근처의 <가덕식당><장춘반점> 등에서 허기를 채우고 출발하자. 만만찮은 코스다. 물과 간식도 잊지말자. 섬의 옛 정취가 묻어나는 골목길이 걷는 재미를 더한다.
[왼쪽]천가초등학교 안에 자리한 가덕도 척화비
[오른쪽]천가초등학교에서 소망보육원으로 향하는 길 전경. 걸어가는 길은 산골 마을, 뒤돌면 해안마을이 펼쳐진다
한창 공사 중인 천가초등학교에는 가덕도 척화비가 있다. 글자 그대로 외세의 침략을 배격하고 쇄국을 강화하는 굳은 결의를 드러낸다. 대원군은 외세의 침입을 막고자 1871년 4월 서울을 비롯해 전국에 척화비를 세웠다. 천가초등학교 교정의 척화비는 인근 성북마을 공사 중 발견되었다. 성북(城北). 이름 그대로 성(가덕진성)의 북쪽 마을이다. 아쉽지만 성의 흔적은 희미하다.
왼편에 바다를 끼고 오르막이 시작된다. 산불감시초소를 지나 소망보육원으로 향하는 구불구불한 길 위에서 죽도가 내려다보인다. 바다를 앞마당 삼아 펼쳐진 섬마을 엿보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고개를 넘으면 6·25전쟁 당시 전사한 이들을 기리는 충혼비와 닿는다. 전쟁의 상처는 반세기가 지났건만 여전히 쓰라리다. 근처에 화장실과 예비군 훈련장이 있어 쉬어가기 좋다.
소망보육원으로 향하는 오르막길에서 뒤돌아 본 풍경. 죽도 주위로 물이 빠져 뻘이 드러나고 있다. 부지런한 마을 주민은 밭 갈기가 한창이다
[왼쪽]6·25전쟁 당시 전사한 이들의 충혼비. 전쟁의 상처는 어느 섬도 피해갈 수 없었다
[오른쪽]구불구불 재를 넘어 만나는 풍경. 소망보육원 전에 바라보았던 풍경이 연대봉에 가까워지면서 다른 표정을 드러낸다
얼마나 걸었을까. 어음포·지양곡·선창 방면으로 갈라지는 어음포 초소에 닿는다. 화장실과 안내지도가 반긴다. 지도에서 얼마만큼 왔는지 확인해보자. 갈 길이 멀다. 목을 살짝 축이고 본격적인 오르막, 가덕도 최고봉인 연대봉(459m)으로 향한다. 오르막에 호흡이 가빠지는데 이성근 사무처장은 야생화 소개에 여념이 없다. “3월이면 노루귀·얼레지·현호색·꿩의 바람꽃·개별꽃이 피어난다”며 “발 밑을 조심하라”고 당부한다. 그들의 존재를 알게 된 걸음이 느려진다. 느려진 걸음에 그동안 보이지 않던 꽃들이 고개를 내민다. 이름도 예쁜 바람꽃·현호색·노루귀와 처음 마주한다.
연대봉에서 부산의 속살을 엿보다
연대봉을 조금 못가서 만나는 낙동강 하구와 남해의 풍경. 진우도와 신자도 장자도 맹금머리등 뒤로 신호대교와 을숙도가 그리고 부산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펼쳐진다
산길 곳곳에 자리한 야생화에 취해 연대봉으로 향하는 길. 탁 트인 전망대에서 남해와 닿는다. 연대봉을 코앞에 두고 물에서는 낙동강 끝자락과 남해바다가 더해진다. 낙동강 하구에 자리한 모래섬 진우도와 신자도·장자도·맹금머리등 뒤로 신호대교와 을숙도도 펼쳐진다. 나지막한 산자락에 안긴 모습에 부산(釜山)이라는 지명이 제법 잘 어울린다. 낙동강 하구와 남해바다를 앞에 두고 바라보는 부산의 표정이 색다르다.
[왼쪽]연대봉에서 바라본 천성말과 거가대교. 해저로 몸을 숨겼다 대죽도를 만나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는 거가대교가 보인다
[오른쪽]연대봉에서 바라본 가덕도 최남단. 지양곡을 지나 대항으로 향하는 앞으로 걸을 길을 미리 살필 수 있다
연대봉(459m)은 조선시대 연안의 방비를 담당하던 봉수대 덕분에 이름 붙었다. 가덕도 최고봉이다. 주변 해안의 조망이 한눈에 들어온다. 낮에는 연기를, 밤에는 불을 피워 위급한 상황을 알렸던 이곳에서 남쪽으로 대마도, 서쪽으로 거제를 품은 다도해가 평화롭게 펼쳐진다. 연대봉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지양곡으로 향한다. 거가대교를 바라보며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지양곡에서 차도를 따라 대항으로 간다. 차도와 인도가 분리되지 않아 조심해야 한다.
대항으로 들어서는 길, 새 아스팔트가 곱게 깔려있다. 봄이면 몰려드는 숭어떼로 이름을 알리던 대항은 거가대교를 타고 몰려드는 외지인들의 발길이 잦은 편이다. 식당과 민박집을 갖춘 이유다. 동선을 짤 때 대항마을에서 식사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두면 도움이 된다. 대항의 숭어잡이 ‘육수장망’도 알아두자. 여섯척의 배가 진을 치듯 타원형으로 그물을 바닥에 깔아놓고 기다리다가 숭어떼가 그물 속으로 들어오면 구령에 맞춰 동시에 그물을 끌어 올리는 어로법이다. ‘숭어들이’라고도 한다.
가덕도 오른쪽 해안을 따라, 새바지 트레킹
오른쪽으로 펼쳐진 짧은 몽돌해안을 바라보며 대항새바지로 향한다. 대항새바지에서 동선새바지까지는 약 6km. 이제 가덕도의 오른쪽 해안을 따라 부지런히 걸어야 한다. 오르막 내리막 이어지는 산길은 옛길의 고즈넉함을 오롯이 품고 있다. 가만, 새바지는 무슨 뜻일까. 억새가 무성한 새밭이 아닐가 싶은데 이성근 사무처장은 “새바지란 샛바람에서 나온 말”이라며 설명을 보탠다.
외지인들에게 제법 알려진 대항. 민박과 음식점들을 갖추고 있다
부산 가덕신공항 전망대에서 바라본 대항새바지. 동선새바지까지 약 6km. 가덕도의 오른쪽 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산길이 펼쳐진다
[왼쪽]어업생산기지 ‘어음포’에는 특이하게도 작은 계곡이 있다. 한때 이 계곡 주변에 사람들이 살았으나 지금은 모두 떠났다
[오른쪽]작은 선착장을 품은 누릉령. 해안가의 바위나 모래가 누런빛을 보인다
대항새바지에서 어음포까지 2.5km. 부지런히 걷기로 한다. 어음포(魚音浦), ‘물고기 소리가 많이 나는 포구’라. 물고기가 무슨 소리라도 내는 것일까. 안내판은 어업생산기지라고 설명한다. 그만큼 물고기가 풍부하다는 뜻이리라. 어음포에는 특이하게도 작은 계곡이 있다. 가만히 살피니 집터도 보인다. 1970년대까지 어음포 계곡 중턱에 집들이 있었단다. 사람과 집이 빠져나간 자리는 집터와 감나무만이 지키고 있다.
‘누런빛을 띄는 바위를 깨보면 혈관처럼 빨간 나이테가 보인다’고 해 붙여진 누릉령과 닿는다. 정말 해안가의 바위 색이 누렇고 붉은 빛을 품고 있다. 이곳에는 매봉에서 채취한 갈석을 싣던 작은 선착장이 있다. 바람 막아줄 바위도 있겠다 바다도 코앞에 있겠다, 잠시 쉬어가기 좋다. 바다 건너 펼쳐진 아파트 단지가 신기루 같다. 누릉령에서 기도원으로 향한다. 기도원을 지나면 바다를 오른편에 끼고 평지가 이어진다. 해안 산책길이다. 왼편으로 솟은 기암 덕분에 심심하지 않다.
기도원에서 동선항으로 향하는 길 해가 서서히 저문다
[왼쪽/오른쪽]정거마을에서 바라본 진우도. 조만간 진우도 생태체험이 진행될 예정이다 / 거가대교의 야경
눌차만에 붉은 해가 스며들기 시작한다. 가덕도에 딸린 섬(이던) 눌차도로 향한다. 국수당을 지나 정거마을로 들어서자 날이 어두워진다. 정거마을에서 진우도는 손을 뻗으면 닿을 것처럼 가깝다. 갈맷길의 거점이자 생태관광 마을로 변화중인 정거마을에서 가덕 눌차도의 특산품 굴을 만날 수 있다. 사방이 굴밭이다. 마을을 걷다보면 굴껍질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정거마을에서 민박을 할 경우 미리 부탁하면 굴요리를 맛볼 수 있다. 거가대교의 야경이 가덕도의 밤을 밝힌다.
TIP
: 선창~천가초교~소망보육원~어음포 초소~연대봉~지양곡~대항~대항새바지~어음포~누릉령~가덕도 기도원~동선항~내눌입구~국수당~정거마을~항월고개~선창, 총 20.1km, 6~7시간 소요
가덕도 섬의 가운데를 관통해서 오른쪽 해안을 따라 올라오는 총 20km의 섬 트레킹 코스다. 산길 같은 숲길과 바다풍광이 더해져 걷기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딱'이다. 넉넉하게 7시간 정도 잡는 편이 좋다.
<지도제공 부산광역시청>
1. 찾아가는길
* 자가용
남해제2고속도로지선→가락IC→가락대로(부산신항역 방면)→가덕대교→눌차대교→성북IC
* 대중교통
부산 지하철 1호선 하단역에서 58번 버스 이용
부산역에서 520번 버스 이용
김해공항에서 급행 1009번 이용
2. 음식점
장춘반점: 051-972-2250
소희네집: 051-971-8886(월요일 휴무)
왕바지식당: 051-971-5477
대항회식당: 051-972-9380
3.숙소
정거마을 이철희 통장: 010-3858-6270
천성중앙민박: 051-2554-8685
가덕도펜션: 051-971-0065(주간), 051-971-6347(야간)
대항민박: 051-971-9348
왕바지: 051-971-5477
글, 사진: 한국관광공사 국내스마트관광팀 이소원 취재기자(msommer@naver.com)
※ 위 정보는 2012년 4월에 작성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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