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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호] 소목장 (小木匠) | 중요 무형 문화제

문성식 2012. 3. 27. 0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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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 목 중요무형문화재 55호
명 칭 소목장 (小木匠)
분 류 공예기술
지정일 1975.01.29
소재지 전국



※ 본문설명

소목장은 건물의 창호라든가 장롱·궤·경대·책상·문갑 등 목가구를 제작하는 목수를 말한다. 기록상으로 보면 목수는 신라때부터 있었고, 소목장이라는 명칭은 고려때부터 불리웠다. 조선 전기까지는 목가구가 주로 왕실과 상류계층을 위해 만들어졌으나, 조선 후기에는 민간에 널리 보급되어 자급자족에 따른 지역적 특성이 나타나게 되었다.

장롱은 재료에 따라 귀목장롱·솔장롱·오동장롱이 있고 칠을 안한 백골 장롱, 칠을 한 칠장롱, 무늬가 없는 민장롱, 들기름을 먹인 종이를 바른 발림장롱으로 분류된다. 즐겨 사용하는 무늬는 삼호장·성티무늬·뇌문(번개무늬)·겹귀무늬·홑귀무늬 등이 있고 제작도구로는 톱 종류와 대패·등밀이·장도리·송곳·놋줄 등이 사용된다.

소목장은 무늬가 있는 나무로 자연스러운 미를 최대한 살린 한국 전통 목공예 기법으로 자연환경과 주택구조 등을 고려하여 한국적인 독특한 조형양식을 만들어 낸 민속공예사적 가치가 높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설석철이 기능보유자로 인정되어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 보충설명

대목(大木)이 궁궐이나 불전(佛殿) 또는 가옥과 같은 큰 목조건물을 짓는 목수를 이르는 말인데 반해서, 소목은 장(欌), 농(籠) 사방탁자, 서안(書案), 연상(硯床), 소반 등과 같이 작은 가구 등을 만드는 목수를 말한다.

통영시는 나전칠기를 비롯하여 삿갓(입자(笠子)), 금속공예 할 것 없이 우리나라 전승공예가 밀집 전승되어오던 고장으로서 소목(小木)도 허다하나 천상원은 아버지 천철동(千喆同)의 기능을 이어 장 또는 농이나 기타의 목기(木器)를 만드는데 있어서 문목(文木)을 다루는 데 뛰어났으며 특히 목재로 문목의 바탕을 꾸미는 상감기법(象嵌技法)을 지닌 유일한 사람이다.

천상원이 즐겨 놓는 무늬로는 삼호장, 성퇴무늬, 뇌문, 겹귀무늬, 홑귀무늬 등이 있다. 무늬를 놓는 재료로는 괴목, 먹감나무, 은행나무, 개옻나무를 쓰며 그것을 붙이는 데는 부레풀과 대못을 쓴다. 도구로 도래톱, 자르는톱, 내림톱, 부판내림톱이 있고 대패에 홑날대패, 겹날대패, 닦음대패, 혹대패, 홑날닦음대패, 등밀이가 있고, 변탕에 칠(七)문변탕, 사(四)문변탕, 푼변탕, 닦음변탕의 종류가 있고 골밀이로 둥근밀이, 외골밀이, 쌍골밀이, 삼(三)푼골밀이, 사푼골밀이, 오푼골밀이, 찬알개탕, 도랭이개탕이 있다. 이밖에 끌, 끌방망이, 장도리, 짜구, 송곳, 활비비, 한 솟김칼, 홀개, 끄개, 양판널, 무나, 무고, 동대, 조음틀, 탕개, 놋줄, 줄감개, 풀귀알, 물도가니 등의 많은 연장들을 두루 갖추어야 한다. 이렇듯 연장의 종류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공정이 까다롭고 어렵다는 이야기가 된다.

무늬를 만드는 나무의 넓이는 4cm이다. 이를 얇게 톱으로 4∼5겹으로 켜서 앞판에 붙이게 된다. 삼호장은 안으로부터 폭 1mm의 은행이나, 개옻나무에다 폭 1mm의 먹감나무를 받치고 마지막으로 폭 3mm의 은행나무를 더한다. 성회뇌문은 폭 3mm의 은행나무에 폭 1mm의 먹감나무와 다음으로 폭 1. 5mm의 은행나무를 대어서 흑(黑), 황(黃), 흑, 황, 흑의 다섯 줄이 겹치도록 붙혀서 그것을 일정한 크기로 잘라내어 안팎을 엇바꾸며 세 줄씩 떼어내어 아교로 붙혀 끼워 습문(習文)을 만든다. 홑귀뇌문은 폭 2mm의 괴목의 양면에 각각 폭 1mm의 먹감나무와 폭 1mm의 은행나무를 붙인다. 그러면 황(黃), 흑(黑), 갈(褐), 흑, 황의 다섯 줄이 된다. 이것을 겹으로 붙이면 황-흑-갈-흑-갈-흑-갈-황의 여덟 줄이 된다. 이 여덟 줄을 가로로 놓았다면 모서리에서 2cm 간격으로 두고 밖에서 흑-황-갈-황-흑의 다섯 줄을 세로로 떼내어 그 사이에 앞의 황-흑-갈-흑-갈의 다섯 줄을 넣은 것으로 귀로 삼고 사방 귀 사이의 빈 데는 흑-황의 두 줄을 붙여 메운다. 그 다음에 3mm의 은행나무를 두른다. 귀를 따서 겹귀로 하면 겹귀뇌문이 된다. 겹귀뇌문의 겹귀부분을 연기라 부르기도 한다.

1926. 9. 15~2001. 3. 13 | 보유자 인정: 1975년 1월 29일

 

“사방탁자나 책장 같은 조선조 목기를 바라보고 있으면, 그 기막히게 어정쩡한 작품성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이건 무르익는 모순덩어리라고 해야 하나? (…) 조선조 목기는 언제까지나 위로와 아래로가 중간에서 편안하게 겨루고 있지 않은가. 이루려는 의지와 사그라지려는 체념의 양념성이 어울려 있는 셈이다.” - 화가 이우환

 

소목장-맞춤의 미학, 무르익는 모순덩어리

 

소목장은 나무로 전통생활가구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장인이다. 주로 궁궐, 사찰, 주택 등 큰 건축물을 짓는 장인은 대목장이라 한다. 소목장은 기후 자연환경 목재의 채취에 따라 살림공간과 가옥구조에 알맞게 생활가구를 제작한다. 소목가구들은 옷가지를 넣는 농과 옷걸이장, 책을 쌓아두는 책장, 선비들이 공부하는데 사용되는 문방구류, 의식주에 필요한 생활품 등이다.

 

우리나라에서 최초의 생활가구 기록은 고구려 고분벽화인 무용총(舞踊塚)과 안악고분(安岳古墳) 등에서 나타난다. 백제시대 때는 무녕왕릉에서 발굴된 두침과족좌 등이 있으며, 신라시대는 경주 안압지에서 출토된 생활용품의 목각 등이 있다. 고려시대에는 [고려사] 식화지(食貨志) 중상서(中尙書) 조를 보면 소목장 나전장 등의 명장이 있어 이미 전업으로 국가기관에서도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에는 사대부 귀족들의 사랑방 꾸미기로 기품 있는 생활가구가 이들의 전횡물이 되면서 가구공예는 크게 발달했으나 이를 만드는 장인들은 천대하는 경향이 있었다.

 

조선시대 목공예들은 주로 서울과 호남평야지대, 평양지방에서 발달했으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에는 경남 충무지방에서 소목장 기술이 발달되어 지금까지 ‘충무 민장롱’이라 하며 널리 이름이 나게 된다.

 

아버지 천철동에게 배워 일가를 이룸

 

고 천상원 일가는 충무에서 여러 대를 이어 소목장으로 일해 자연스레 ‘장인 대가’를 이뤘다. 1975년에 중요무형문화재 제55호 소목장으로 지정된 천상원 선생은 집안 내림에 따라 이 길로 접어든다. 경남 통영시 문화동에 있는 수십 년째 살아온 누옥에서 천 선생은 소학교 시절 열 살 때 처음 소목일을 접한다. 아버지 천철동에게 어깨너머로 보면서 톱과 대패를 잡기 시작해 열네 살 되던 해 공방에 눌러 앉았다. 선친 밑에서 10여 년 간 소목장으로 성장해 가던 대에 태평양전쟁이 터져 징용을 피할 겸 목수일도 더 배울겸 경남 진해에 있던 군수용 목공장 공원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그 곳 생활은 예술의지나 장인정신을 확장하는 장인의 길이 아니라 표준화된 군용 책상 따위나 만드는, 매너리즘에 빠질 수밖에 없는 기능공으로서 직장일 뿐이었다. 정교하면서도 우아한 조형성을 갖춘 조선목가구를 만들겠다는 장인의 뜻을 펼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다. 그런 감옥 같은 공원생활도 ‘8․15 해방’과 함께 해방되었다. 그러나 곧이어 터진 한국전쟁과 휴전 뒤 불어 닥친 산업화 물결은 그에겐 진정한 해방이 아니었다. 주린 배를 채우기 어려운 시절, 고가의 목가구를 찾는 사람은 없었다. 전승기반이 무너져 가는 흐름이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전통공예전승을 위한 정부정책이 세워지고 전통공예에 대한 관심이 고개를 들면서 전국전승공예전에서 만들어지고, 1969년 부친이 큰 상을 받으면서 이 일에만 매달려 아버지가 작고한 1975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5호 소목장 기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천 선생이 장기를 보인 작품은 좌경 문갑 사방탁자 이층장 삼층장이었다. 그의 특기는 먹감나무 은행나무 개옻나무 등 무늬결이 아름다운 판재에 뇌문을 박은 다음 얇게 켜서 붙이는 것이다. 이렇게 뇌문 박은 통영 목가구 전통은 그의 제자 김금철이 배우기 시작하여 1977년 전수장학생, 1982년 소목장 전수교육조교로 지정되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주요작품

머릿장, 천상원, 55.5×35×58.5㎝

머릿장(Bedside Chest)
머릿장은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는 물건을 쉽게 찾아 쓸 수 있도록 머리맡에 놓고 쓴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장의 일종이다. 주로 여성들이 안방에서 사용하던 자잘한 소품을 수장하기 편리하다. 나지막하고 앙증스럽게 어여쁘다고 하여 애기장이라고도 부른다. 천상원 소목장이 만든 머릿장은 쥐벽칸(문 양 측면에 마련한 칸)이나, 마름칸(문 아래쪽에 마련한 칸), 서랍칸 등 칸칸마다뇌문(번개무늬 또는 돌림무늬)을 이어 붙인 호장테상감으로 마감한 데서 찾을 수 있다. 여기에 깔끔한 백통장석이 머릿장의 조형적 아름다움을 배가시키고, 수납을 위해 중앙에는 여닫이문을, 그 아래쪽에는 서랍을 배치하고 있다.

먹감 이층농, 천상원, 68×38×110㎝

먹감 이층농(Tow-tier Chest)
장(欌)은 수납용 가구를 통칭하는 용어이지만, 원래는 아래위층이 분리되지 않은 것을 장이라 부르고, 분리되는 것은 농(籠)이라 부른다. 이층농은 아래위층의 천판(개판)이 분리되어 있으며, 옆널에는 손잡이가 붙어 있다. 이 먹감이층농은 나무결이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먹감나무를 재료로 사용하여 먹감나무의 목리를 좌우대칭이 되도록 켜내는 기술이 뛰어나야 만들 수 있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형태미, 자연스러운 나무결, 그것을 돋보이게 하는 백통장석으로 장식되어 있다.

 

이층장, 천상원, 76.5×40×120㎝

이층장(Korea Sock Chest)
이층장은 천판으로 위아래가 분리되지 않는다. 소목장은 나무를 고르는데 탁월한 안목을 발휘해야 한다. 결이 좋고 튼튼한 나무를 보는 안목이 있어야 ‘명장’이 될 수 있다. 가구는 일평생 곁에 두고 살면서 보고 또 보고 만지고 또 만져야 하는 것인 만큼, 그 것을 만들 때에도 장인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세한 구석까지 섬세한 손길로 깎고 다듬어야 한다. 이 이층장 또한 어느 곳 하나 소홀히 하지 않는 소목장 천상원만의 솜씨가 발휘되었다고 할 수 있다.

경대. 천상원, 27.5×33.5×22.5㎝

경대(Frame)
경대는 빗접과 마찬가지로 여성의 화장용 가구이다. 빗접은 빗, 빗솔, 빗치게, 가르마꼬챙이, 뒤꽂이, 동곳 등을 수납하는데 비해, 경대는 빗접 위에 거울이 하나 더 달린 구조라 할 수 있다. 크기는 작지만 형태와 구조가 복잡하여 웬만한 솜씨로는 좋은 작품을 만들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경대의 구조도 오밀조밀하여 한국인의 미감이 잘 나타나 있는데, 작고 좁은 서랍에 조차 호장태상감을 붙인 데다가 경첩을 최소화하여 깔끔하면서도 튼실하게 만들어 낸 것은 장인의 빼어난 솜씨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하여 아무리 작은 소품이라도 그 작품을 보면 장인의 성품과 솜씨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제작도구

 

소목장은 가구 보는 안목이 빼어나야 하지만 손에 맞는 제작 공구를 고르고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일부 장인들은 자신의 손에 맞는 도구를 손수 만들어 쓴다. 소목장에게는 많은 제작도구가 필요하다. 구멍을 파거나 다듬는 데 사용하는 끌, 끌을 두드리는 골방망이, 삼끈, 구멍을 뚫을 때 쓰는 송곳, 찍어 깎을 때 쓰는 자귀, 낙동 할 때 쓰는 인두, 탕개질에 사용하는 삼끈, 삼끈을 감아두는 도래 등이 있다.

 

제작 도구들

 

톱: 나무를 자르거나 켜는 데 사용하며 용도와 형태에 따라 여러 명칭으로 부른다. 톱은 톱날에 의해 내림톱(켜는 날), 끈치톱(자르는 날), 일반톱으로 구분된다.

대패: 목재의 면을 다듬어 매끄럽게 하는 대패에는 평대패턱대패(변탕), 홈대패, 배꼽대패, 내환대패, 왼한대패, 모접기대패. 홅치기, 박쥐모대패가 있다.
나무방망이: 나무로 만들어 끌을 두드리는 방망이는 장도리메라고도 하며, 사개를 물릴 때에도 사용한다.
그므개: 직선의 목재에 치수를 표시하거나 일정한 폭의 평행선을 긋는 데 사용한다.
조임쇠: 나무를 붙이거나 톱질할 때 양쪽에서 한번에 여러 개를 물려 고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칼: 칼은 대패질을 할 수 없는 부분을 파내거나 다듬을 때 사용한다. 호비칼, 삐딱칼, 조각도 등 다양하다.
먹통: 먹통은 나무를 마름질하기 위해 먹선을 그을 때 사용한다.

 

약력

1926년 9월
출생
1943년 9월
통영칠기사 목공부 근무
1975년
중요무형문화재 소목장 기능보유자 인정
1977~2000년
보유자 작품전 출품
2001년 3월
지병으로 별세

한국문화재보호재단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은 문화재보호법 제9조에 근거하여 우리 전통문화를 널리 보전, 선양함을 목적으로 설립된 공공기관입니다.

 

공식블로그 : http://blog.naver.com/fpcp2010

 

사진 서헌강(문화재전문 사진작가)

1950. 6. 12. ~ | 보유자 인정: 2010년 4월 22일

 

우리 할매 마지막 삶이 끈질기게 붙잡고 있던 반닫이 장롱

할매는 그 속에 사무친 무엇을 담아 두었을까, 나는 생각한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롯이 반닫이 장롱으로 남을 수 있을까.

 

- 미학 부산을 거닐다(임성원 저, 산지니, 2008년) 중에서

 

자연과 순수의 미(美)를 추구하는 전통목가구

 

소목장(小木匠)은 장롱·궤·경대·책상·문갑 등의 목가구를 제작하는 목수를 말한다. 나무를 다루는 장인을 목수라고 하는데, 목수에는 대목(大木)과 소목(小木)이 있다. 대목은 건축물의 가구(架構)를 짜는 공정을 담당하고, 소목은 목조가구(木造家具)나 목조기물(木造器物) 등을 담당한다. 이러한 대목과 소목의 분류는 중국 송나라의 이계가 1103년에 편찬한 『영조법식(營造法式)』에 따른 것이다. 소목장은 나무의 무늬결을 살려 자연스러운 미를 추구한 한국 전통 목공예기법으로 우리의 자연환경과 주택구조 등을 고려하여 한국적인 독특한 조형미와 실용성을 살린 가구를 만드는 장인이다. 우리나라에서 목공예품이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 그 명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문헌 기록과 출토 유물로 미루어 적어도 2,0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볼 수 있다. 한국적인 아름다움이 가장 잘 표현된 한국미술품 중 목가구는 자연재료로 극히 단순하고 소박한 자연미를 느끼게 하면서도 개성이 강하며 건강한 조형미를 갖고 있다. 이러한 목가구는 한국의 자연환경과 사회적 규범 그리고 생활양식의 특성을 잘 반영하고 있다.

 

목재와 가구

 

가구재로 많이 사용된 것 중 용도별로 살펴보면, 느티나무·감나무·단풍나무·음나무·오동나무·물푸레나무 등은 결이 아름다워 주로 판재로 쓰엿다. 그 가운데서도 자연적으로 먹이 들어 있는 먹감나무는 독특한 목리(木理)를 살려 장롱이나 문갑 연상 등에 이용되어 추상적인 아름다움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자연적인 나무결을 좌우대칭으로 구성하여 안정감을 갖도록 하였다. 은행나무·가래나무·호도나무·피나무는 비교적 넓은 판재를 구할 수 있으며 얇은 판재를 사용하여도 터지거나 휘지 않아 소반의 판재로 많이 쓰였다. 오동나무는 가볍고 얇게 켜도 터지지 않으며 건습 조절이 용이하여 의복, 책, 서류 등을 보관하는 가구에 많이 이용되었다. 소나무와 잣나무는 어느 곳에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수종으로 기름기가 많고 결이 곱고 단단하여 골재와 판재로 폭넓게 사용되었다. 사랑방가구에서는 단순하고 검소하게 보이는 소나무와 오동나무가 주로 사용되었고, 안방용은 아름다운 목리의 느티나무·물푸레나무·먹감나무가 이용되었다. 조선조 목가구는 이렇게 다양한 수종을 이용하고 또 자연적인 목리의 아름다운 판재를 좌우대칭으로 구성하여 화려한 칠(漆)과 장식을 대신하였는데 이는 자연과 순수의 미(美)를 추구하는 한국적인 미의식을 잘 나타내고 있다 하겠다.

 

선과 면의 분할, 짜임과 이음

 

조선조 가구의 선과 면의 배분은 한국적인 독특한 비례감각으로 발달하여 가구에서뿐만 아니라 실내공간에도 적용되어 어떠한 공간이나 주택양식에도 잘 어울리는 미적 감각으로 발전하여 오늘날까지도 높이 평가되고 있다. 골재가 주축을 이루거나 탁자(卓子)처럼 골재와 층널로 구성되는 간결한 가구는 내적으로는 견고하고 외적으로는 부담을 주지 않는 단순한 결구, 즉 짜임새와 이음새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특히 쇠못을 사용하지 않고 불가피한 부위에만 접착제와 대나무못을 사용할 경우 결구는 더욱 중요하다. 한국의 목가구는 특히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에 이르기까지 아주 견실한 구조로 짜여져 있으며, 그 짜임과 이음의 기법은 매우 치밀하다. 이러한 짜임과 이음은 간결한 선과 면분할로 이루어진 조선조 목가구에는 필수적인 것으로 용도와 재질, 그리고 부위의 응력에 따라 구조와 역학은 물론 시각적인 효과를 감안한 격조 높은 기법으로 발전하였다.

 

주택양식에 의한 한국 목가구의 특징

 

서구나 중국의 의자생활은 넓고 높은 실내공간을 형성하여 자연히 가구들도 크고 육중하고 장식적인 면이 매우 강하다. 그러나 한국은 온돌양식인 평좌생활의 영향으로 천정이 낮고 실내도 비교적 좁아 가구들은 시각적인 부담을 줄이고 보다 넓은 생활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작고 낮으며 간결하게 제작되었다. 또 다른 특성은 남녀유별(男女有別)의 관념에 의하여 남성과 여성의 생활공간이 각각 나뉘어져 있는 점이다. 남성들은 주로 사랑채에서, 여성들은 안채에서 생활하였고 사랑방과 안방의 가구들도 용도와 취향에 따라 형태, 비례, 수종에서 뚜렷한 개성을 갖게 되었다.

사방탁자가 선비의 청풍 같은 기개와 청빈을 뜻하는 형이상학적 가구이고 문갑이 단아하고 정갈한 사랑채의 품위를 상징하는 가구라면 반닫이는 소박하고 순수하고 실용적이고 다목적인 우리네 여인들을 대표하는 가구이다.

- 옛 것에 대한 그리움 (김종태 저, 휘닉스드림, 2010년) 중에서

 

사랑방은 주인의 대부분이 학문을 중요시하는 선비였기 때문에 깊은 사색에 잠기거나 그림과 시를 즐기며 후학을 기르는 학문의 온상인 동시에 손님을 맞아 인생과 정치를 논하는 사교의 장소였기에 내부공간이 화려하고 복잡한 것보다 검소하고 안정된 분위기에 적합하도록 단순한 구조, 쾌적한 비례, 간결한 선을 지닌 목가구가 필요하게 되었고, 여성들이 거처하는 안방의 가구는 사랑방가구의 검소한 분위기와는 달리 여성 취향이 반영된 곱고 밝고 따뜻하며 화사한 것이 특징이다.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은 계절에 따른 많은 의복과 솜·천·버선 등을 보관하기 위하여 이·삼층장과 농이 큰 비중을 차지하였으며 그 외에 솜장·선장·의걸이장·원앙장·머릿장·함·상자 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

장롱의 밑바닥에는 가장 오래된 시간, 망각된 시간들이 있기 때문에 이미 잊혀졌던 물건들이 놀라움 속에서 나타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의 장롱은 그 종류나 크기에 관계없이 심층구조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 버선장은 큰 장롱을 줄여놓은 미니어처로 장난감처럼 보이지만 그것 역시 제일 밑바닥에는 우물 속처럼 깊은 심연을 갖고 있다.

- 우리문화박물지(이어령 저, 2007년, 디자인하우스 발행)

 

부엌가구로는 소반·찬탁·찬장·뒤주 등과 기타 소품이 있는데, 찬탁은 식기류를 얹어 놓는 가구로 그릇의 대부분이 무거운 유기나 자기로 되어 있고 또 많은 양을 쌓아두고 사용하므로 굵은 기둥과 두꺼운 판재 그리고 이점을 고려한 짜임과 이음새가 필수적이었다. 찬장은 그릇을 넣거나 음식을 담아 보관하는 가구로 그룻의 무게를 고려하여 튼튼한 짜임새가 요구되어 굵은 소나무 골재에 목리가 좋은 느티나무를 이용하였고 견고한 무쇠장식을 달았다. 이밖에 쌀이나 곡물을 보관하는 뒤주가 있다.

 

나무의 아름다움을 장인의 예술품으로 승화시키는 박명배 선생

 

충남 홍성에서 3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박명배 선생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기술을 익히는 게 좋겠다는 부모님의 권유에 따라 서울로 상경하고, 친척 형의 소개로 18세 되던 1968년 서라벌 예술대(현 중앙대) 공예과 최회권 교수가 운영하는 공예미술연구소에 취직을 하면서부터 소목일을 접하기 시작했다. 이때 스케치나 데생 같은 미대 교육과정을 자연스럽게 익히기 시작했다. 최교수가 학교에 강의하려 가면 공방에서 여려 명이 목공작업을 했는데 당시 박명배 선생이 제일 막내였다고 한다. 당시 힘들고 어려운 일도 있었지만 적성에 맞아 즐거운 마음으로 일할 수 있었다고 한다. 1971년 최교수가 캐나다로 이민을 가자 허기행 선생에게 전통 가구의 짜맞춤 기법을 배우게 된다. 이후 소목 일에 발을 들인지 13년 만인 1981년 독립하여 개인 공방을 차려 운영하기 시작하였다.

“40년이 넘는 시간동안 전통공예를 해왔다는 건 적성에 맞았다는 이야기고, 그건 곧 소질이 있다는 얘기겠죠. 정말 밤을 새서 일을 해도 힘든 줄을 몰랐어요. 그런데 머릿속에 든 게 없었어요. 그래서 최순우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찾아가 지도를 받았습니다. 수많은 유물을 접하면서 우리 전통가구가 건축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는 것, 좌우대칭과 면 분할의 비례미가 특징이라는 것 등을 배웠지요.”

 

명품 재료에서 명품이 나온다. 어떤 일이든 기초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선생은 목가구를 만드는 데 가장 기초가 되는 재료인 나무의 선택과 가공에 제일 많이 공을 들인다.

“좋은 전통가구를 만들려면 무엇보다 나무가 좋아야 합니다. 목가구의 아름다움을 살리려면 나무 본연의 아름다움을 활용하는 게 제일 좋지요. 갈라지지 않고 고유의 문양이 잘 나타난 게 좋은 나무입니다.”

 

그러나 좋은 나무 만나는 건 좋은 배필 만나는 일만큼이나 어렵다.

“알판 나무 찾기 위해서 전국을 다 다녀요. 다니다 보니 ‘어디는 뭐가 좋다’ 정도는 알게 되지요. 전라도는 느티나무가 좋다, 강원도는 피나무가 좋다, 경상도는 참죽나무가 좋다... 그렇지만 좋은 나무를 손에 넣는 건 여전히 어렵습니다.”

전통 목가구를 만들기 위해선 300~500년 된 나무를 써야 한다. 값이 비싼 건 당연하다. 어렵게 구한 나무를 곧바로 목가구로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갑자기 수분이 빠져 뒤틀리고 갈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겨울에 나무를 베어 잘린 면에 풀이나 기름 같은 것을 발라 2년 정도 숙성시킨다. 그리고 실외에서 3년, 실내에서 2년 정도 더 놓아둔 후에야 비로소 가구가 될 수 있는 자격이 갖춰진다. 이처럼 가구 만드는 기초 재료가 되는 데만도 무려 7년여의 긴 시간이 필요하다. 그 다음엔 더 중요한 일이 남아 있다. 나뭇결을 살리는 일이다. 선생의 경우 낙송기법을 통해 결을 키운다. 1992년 전승공예대전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것도 이 기법 덕분이라고 한다. 낙동, 낙송 모두 인두로 나무판을 지지는 것을 말한다. 그간 이 기법을 사용한 명장이 드문 건 제작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가구는 비례와 목리(나무가 가진 천연의 무늬결)에서 오는 것

 

나무는 수백년을 거쳐 자라기 때문에 무늬(선)가 다양하다. “다양한 무늬 속에는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문양이 숨어 있습니다. 좋은 무늬를 가진 나무는 흔하지 않고 좋은 무늬를 가진 하나의 나무로는 하나의 작품만 제작됩니다. 그래서 선생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가구를 탄생시키기 위해 온갖 정성과 심혈을 기울이게 된다고 말한다. 이 같은 장인정신과 그 기능이 널리 알려져 선생의 작품은 청와대 영부인실 및 운현궁 등 내노라 하는 곳에 그의 작품이 놓이게 되었고 로마교황청박물관 내 한국관 가구뿐 아니라 LA한국문화원, 워싱턴한국문화원, 베를린한국문화원 등에 있는 전통가구도 만들게 되었다.

 

요즘 선생은 작품을 만드는 일 이외에 제자들을 가르치느라 바쁘다. 용인대 문화재보존학과, 한국전통문화학교 소목학과에서 강의하는 등 후진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특히 1994년부터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운영하는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소목반을 맡아 매년 50여명의 제자를 배출하고 있다. 20대부터 60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과 교사, 출판인, 대학교수, 주부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배우고 있는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수강생들은 선생에게 전통목가구 제작 기능을 배운 것을 인연으로 국내 유일의 아마추어 목공예 모임인 “목야회”를 만들어 박명배 선생이 용인으로 이사하자 선생의 공방 옆에 나란히 공방을 내어 운영하고 박명배 선생과 함께 전시를 갖기도 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들은 전승공예대전에 출품하여 입상할 정도로 수준급의 실력을 자랑하는 이들도 있다. 현재 박명배 선생은 후학 양성을 위해 강의를 하는 것 외에 개인 작업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12년 11월 4일부터 16일까지 예술의전당 V갤러리에서 열리는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다. <藝作> ‘자연이 만든 예술품, 장인이 만든 작품’이라는 주제로 미공개 작품 40여점을 전시할 계획이다.

 

“우리의 전통가구는 원래 밝아요. 현존하는 전통가구가 어두운 색을 띠는 건 세월의 때가 묻어 변색됐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기교가 아닌 자연 그대로가 담긴 가구, 그게 바로 한국 가구입니다.”

 

 

작품

문갑 / 69×44×139cm
문갑은 문서(文書)나 문구(文具)를 넣어 두는 긴 궤로 서랍이 여러 개 있거나 문짝이 달려 있고 흔히 두 짝을 포개어 놓게 되어 있다. 몸체는 느티나무를 사용하여 주먹장 울림 기법으로 제작했고 전면 서랍 부분은 먹감나무와 오동나무로 제작했다.

서안 /81X31.5X32cm
일반적으로 서안은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데 사용하고, 간단한 소품 등을 수납할 수 있는 공간을 가진 사랑방 중심에 놓이는 가구이다.

 

머릿장 / 78×41.5×76cm
머릿장은 머리맡에 두고 작은 소품이나 중요한 서류 등을 보관하는 기능을 가진 사랑방 가구와 안방에 놓여 버선이나 간단한 옷가지를 수납하던 여성용 가구가 있다.

이층장 / 157X108.5X41.5cm
우리 전통가구는 사계절이 분명한 기후특성상 목재의 수축팽창으로 인한 변형과 파손을 막기 위해 가구의 전면을 기둥과 쇠목을 면분할을 하는 독특한 특징이 있다. 이러한 기능적인 면분할이었지만 고유의 비례감을 통해 아름다운 조형미를 더하는 장인의 감각도 놓칠 수 없는 특징이다.

 

반닫이 / 95X81.5X51.5cm
반닫이는 반쪽이 열린다고 해서 반닫이 혹은 앞쪽이 열린다고 해서 앞닫이라고 불리우기도 한다. 반닫이는 빈부에 상관없이 가구마다 하나씩은 가지고 있었던 필수품이었고 각 지방별로 지역 특색이 가장 강하게 나타나는 가구 중 하나다.

고비 / 19X82X7cm
간찰(簡札)이나 편지 같은 것을 꽂아 두는 가구이다.

 

제작공구

 

가구를 제작하는 데에는 많은 공구가 사용된다. 나무의 치수를 재는데 사용하는 자, 나무를 켜거나 자르는데 사용하는 톱, 나무의 면을 매끄럽게 다듬는 대패, 구멍을 파거나 다듬는데 사용하는 끌, 끌을 두드리는 끌방망이, 치수를 표시하거나 평행선을 긋는데 사용하는 그므개, 부재를 붙이거나 조립할 때 고정시키는 조임쇠와 삼끈, 구멍을 뚫을 때 사용하는 송곳, 깎아내고 파낼 때 사용하는 칼, 찍어 깎을 때 사용하는 자귀, 낙동할 때 사용하는 인두, 작업할 때 사용하는 말, 양판 등의 작업대, 탕개질에 사용하는 삼끈, 삼끈을 감아두는 도래 등이 있다.

 

서안 제작과정

서안(書案)과 경상(經床)은 사랑방 가구로서 앉아서 사용하는 책상과 같다. 서안은 널로 구성되어 있고 판재의 물림 방식을 취하고 있으며, 경상은 호족기둥이 있는 각재의 짜임으로 되어 있다. 천판의 양쪽에 두루마리 형식으로 올라가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제작에 앞서 나무 고르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나무의 선별이 잘못되면 완성되어 사용 중에 뒤틀리거나 터지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나무선별이 끝나면 제작도면을 그리고 재료를 넓이, 무늬, 색상 등을 선별하여 천판, 옆널, 층널 순으로 재단한다.

 

재단한 부재들은 대패로 다듬고 부재의 직선이 곧고 바르게 다듬어 졌는지를 살핀다. 이후 금긋기 그므개를 이용하여 옆널, 지판, 천판 등의 외형선을 기준으로 긋는다. 장부 켜기를 하고 제비초리 자르기를 한다. 이후 끌질로 장부구멍을 만들고 제비초리 촉을 따낸다. 실톱으로 풍혈선을 오리고 조각도로 양쪽을 조각한다. 널 모접이, 천판 귀접이, 홈파기를 한 이후 실톱 자국을 사포로 곱게 갈아내고 뒷널을 넣어 가조립하여 상태를 점검하여 맞지 않는 부분을 수정하고 조립한다. 서랍의 앞쪽은 반닫이 주먹장으로 짜고 뒤쪽은 내다지 주먹장으로 짠다. 서랍 맞추는 순서는 먼저 높이를 깎아 맞추고 옆면을 깎아 뒤쪽부터 맞추며 이후 앞면을 맞춘다. 장부에 촉이 나온 부분과 다리의 수평을 마무리 대패질하고 사포질한다. 이후 칠을 하고 장석을 달아 완성한다.

 

대패로 다음기

대패질하기

대패질하기2

 

재료 마름질

암사캐 따내기

항시 공구의 상태를 점검하는 일이 중요하다

약력
1950년
출생
1971년
전국 기능대회 목공예부문 1위
1980년
영산공방 설립
1984년
청와대 영빈관 영부인 접견실 전통가구 일습 제작
1985년
로마 교황청박물관 한국관 가구 일습 제작
1987년
전승공예대전 특별상 수상, 스웨덴·오스트리아 한국문화원 가구 일습 제작
1989년
동아공예대전 대상 수상
1992년
제17회 전승공예대전 대통령상 수상
1997년
독일 베를린 및 미국 워싱턴 한국문화원 사랑방가구 일습 제작
1988년
대한민국 목공예 명장 지정, 대통령 표창
1999년
오사카 한국문화원 사랑방 가구 제작
2001년
전통문화사랑특별전 (서울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2002년
우리목가구의 멋과 아름다움전(청주 한국공예관, 서울 경인미술관)
2003년
용인대 문화재보존학과 출강,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출강
2004년
전국기능대회 목공예부문 심사위원
2010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5호 소목장 기능보유자 인정
1994년 ~ 현재
한국문화재보호재단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소목반 지도

 

이치헌/한국문화재보호재단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은 문화재보호법 제9조에 근거하여 우리 전통문화를 널리 보전, 선양함을 목적으로 설립된 공공기관입니다.

 

공식블로그 : http://blog.naver.com/fpcp2010

 

사진 서헌강(문화재전문 사진작가)